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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문화유산을 찾아서 - 최여겸(마티아) 순교지(공음 개갑장터)

천주교 성지로 역사 문화적 특징 잘 보여줘

2009년 10월 22일(목) 10:08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 성지순례

ⓒ (주)고창신문


고창성당, 공음 개갑장터 가톨릭 성지 조성 표명
최여겸 순교자 시복시성 도보 성지순례

지난 18일 천주교 전주교구 고창성당(주임신부 김병희 요셉)에서 고창지방 최초의 순교자인 최여겸(마티아)의 거룩한 삶과 고귀한 순교정신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지향기도 및 도보 성지순례를 가졌다. 개갑장터까지 가는 본격적인 도보 성지순례를 앞두고 이강수 고창군수, 한웅재 부군수, 김춘진 국회의원, 고석원 도의원, 박래환 자치행정위원장, 김범진 군의회의원 등이 함께 참석하여 신자들을 격려했다. 고창성당에서 순교지(구 공음 개갑장터)까지 24㎞의 거리를 약 5백여명의 신자들이 긴 꼬리를 물으며 걷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신자들은 고창성당→공음 순교지, 무장관아와 읍성→공음 순교지, 공음초→공음 순교지까지 3가지 코스로 구분하여 도보 성지순례에 참가, 거룩한 순교지에서 최여겸 순교자 시복시성 및 성지개발에 대한 지향기도의 미사를 드렸다. 고창군 개갑장터는 고창지역 최초 순교자 최여겸이 참수된 곳이다. 무장고을과 법성포 구를 연결하는 중간지점에 위치한 개갑장터(현 고창군 공음면 석교리 갑촌)는 조선시대 각종 산물의 집산지로 매우 번창했던 장터로 한일합방 후 구한말 의병들의 보급소와 연락처로 활용되면서 일본인들의 미움을 사 중앙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폐쇄되었다. 이곳은 1801년 신유박해 때 고창 최초의 천주고 순교자 최여겸(마티아, 1762~1801)이 처형된 장소로 천주교 순교의 남방 한계선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시 전라도 무장현 동음치면의 ‘개갑장터’(달레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는 전국에서 유명한 우시장이었다. 최여겸(마티아)는 현재 ‘순교자 124위와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 대상자로 선정되어 영광스럽게도 로마 교황청에 청원되어 있는 상태이다. 고창군에서도 이곳 순교지(개갑장터)를 2002년 ‘고창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하였다. 특히, 인터넷 가톨릭 사이트 ‘한국의 성지’에 고창군 개갑장터 성지가 알려지면서 순례객들이 문의하며 찾아오고는 있으나 기반정비, 안내판, 순교탑 등 기본적인 기반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 방문하는 순례객들을 맞이하기에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에 고창성당에서는 2014년까지 이곳을 가톨릭 성지로 조성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고창성당에 따르면 한국천주교 신자는 2007년 12월 31일 현재 487만 3천명(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통계)으로 조사되었으며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결과 설문응답자 73%가 연 1회 이상 성지를 순례한다고 응답했다. 최소 350만명 이상이 성지를 찾아 순례를 하고 있는바, 만일 개갑장터가 새로운 순교성지로 조성될 경우 전국적인 성지 및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되고 있다. 또한 주변 관광지인 무장현 관아와 읍성, 동학농민혁명 발상지 및 청보리밭을 연계한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개발하여 지역주민의 소득증대에 기여한다는 방침이다.

순교자 최여겸(崔汝謙) 마티아(1763~1801)

신유박해 순교자, 전라도 무장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윤지충(바오로)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웠다. 또 결혼한 뒤에는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을 만나 다시 교리를 배우고 아주 열심한 신자가 되었다. 당시 그의 처가는 충청도 한산에 있었는데, 그가 이존창을 만난 것도 바로 이곳이었다. 이후 무장으로 돌아온 마티아는 교리를 실천하는 데 열중하였다. 또 자신이 깨달은 신앙의 진리를 이웃에게 전파하는 데 노력하여 많은 사람들을 입교시켰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마티아는 일단 한산 처가로 피신하였다. 이때 무장에서는 그가 입교시킨 신자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신자들이 체포되었으며, 그들을 문초하는 과정에서 그의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 결과 마티아는 1801년 4월 13일 한산관아에서 체포되어 일단 그곳에서 문초를 받고, 감사의 명에 따라 무장으로 이송되었다. 최여겸 마티아가 무장 관아에 이르자, 관장은 즉시 그에게 형벌을 가하면서 문초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어떠한 형벌로도 그의 신앙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그를 다시 전주 감영으로 이송하도록 하였다. 이곳에서도 마티아는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옥중에서 열심한 신자 한정흠(스타니슬라오)과 김천애(안드레아)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마티아와 동료들은 그 후 한양으로 압송되어 포도청과 형조에서 문초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고, 형조에서는 1801년 8월 21일 그들에게 사형을 선고함과 동시에 각각 고향으로 보내 처형하도록 명하였다. 이에 따라 마티아는 고향인 무장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곳 개갑장터(현 전북 고창군 공음면 갑촌)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그때가 1801년 8월 27일(음력 7월 19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39세였다. 형조에서 최여겸 마티아에게 내린 사형 선고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최여겸은 처음 윤지충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웠으며, 이후로는 이존창을 따르면서 교리를 독실이 믿고 익혔다. 또 그 교리로 남들을 속여 미혹시키고, 널리 사람들을 가르침으로써 자신도 망치고 남들도 망치게 하였으니 만 번 죽여도 아깝지 않다.”라고 말이다.

개갑장터
조선조에 무장고을과 법성창을 연결하는 중간지점에 개를 낀 창촌이 있고 그 동남간에 당시에 크게 번성했던 개갑장터가 있었다. 그때 이 고장의 출전지효로 이름나 있는 영모당 김 질은 안동 김씨이며 1496년에 공음면 개가리에서 출생한 분으로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상과 조부모의 승증상 도합 12년간을 시묘살이를 한 분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꿩고기를 몹시 좋아했기에 그는 매년 12월 제삿날에는 짚신을 삼아 그곳에서 8㎞나 되는 안자시장에 가서 짚신을 팔아 꿩을 사서 제물로 쓰곤 하였다. 어느 해 눈이 많이 내려 시장이 서지 않아 제물을 구할 수가 없어서 크게 걱정하면서 그는 그의 불효로 인하여 하늘이 내린 벌로 제삿날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눈이 많이 내린 그날 석양 무렵에 갑자기 꿩 한 마리가 부엌으로 날아 들어와 벽에 부딪혀 떨어졌다. 김 질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그 꿩으로 제물을 삼아 제사를 모셨다. 그 다음 해에도 짚신을 등에 지고 눈길을 헤쳐 제물을 구하기 위하여 해리사장에 가는 도중 때마침 무장원님이 그곳을 행차하다가 김 질의 모습을 보고 이 추운 날씨에 무엇하러 가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원님은 김 질의 효성이 지극함을 극찬하고는 그를 위하여 개가리에 장을 세워 평생동안 눈길에 저자를 보러 가는 고생을 덜게 되었다. 그 뒤로 퍽 성해 오던 개가리 장터는 한일합방 후 구한말의 의병활동을 위한 보급소와연락처로 낙인이 찍혀 일본 사람들이 중앙지가 아니라는 이유를 내세워 끝내 폐쇄하여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김희정 기자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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