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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 살아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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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강 환(현 방송통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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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2일(목) 10:12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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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평생 부단히 자유인이 되고 싶었다. 나 자신은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자유주의는 사회발전을 위하여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이에 대한 국가나 기관의 간섭을 배제하려는 사상이다. 물론 거기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내 경우도 책임과 의무를 중시하다보니 자유주의는 내적 격정(激情)으로 그치기 일쑤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어려서부터 낭만주의, 허무주의, 고전주의에 빠져 있었으며 신문사에 입사해서부터는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자기중심주의(Egotism) 이타주의(Altruism) 사이에서 번민했다. 나의 정신적 고뇌는 내 자신이 이기주의자(Egoist)는 아니더라도 자기중심주의자(Egotist)라는 데는 스스로 부정하기가 어렵다는데 있었다. 그래서 이타적(利他的) 자세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살아오면서 이타정신이 투철한 수많은 선배나 후배들을 접촉했다. 나는 그들의 언행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각성하고 채찍질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로타리클럽에 그토록 애착을 갖는 것도 봉사의 이상을 나름대로 실천해보려고 고심한데서 비롯됐다.
오직 제 이익만 챙기고 이웃에 대한 배려는 하지 않는 탐욕적 이기주의, 이기주의란 원래 그 속성이 항상 만족에 도달하지 못하고 무한한 욕심속에서 자신을 탕진하고 만다. 그러다가는 종내는 자신이 가진 것의 노예가 되어 평생 하찮은 소유물만 섬기다가 가장 마음이 가난한 채로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이기심은 진실한 행복과 가까이 있을 수 없다. 이기주의자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친구가 없고 편들어줄 사람도 없다. 동시에 편들어주고 싶은 상대도 찾지 못한다. 사리사욕의 이기주의에서 깨어나 이웃을 생각하는 이타주의에 대한 굳은 신념, 애타정신(愛他精神)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천성으로 그렇게 태어났다면 더 할 나위가 없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배우면서 관심을 갖고 정성을 쏟아야 한다.
애타정신과 함께 내가 항상 관심을 갖는 명제가 있다. 그것은 인간성 회복이다. 나는 고창에서 태어나 서울로 진학해 그곳에서 50여년 살았다. 도시생활은 항상 바쁘고 분주하다. 거기에 직업까지 시간을 다투며 경쟁사와 ‘혈투’를 벌이면서 경쟁을 먹고사는 기자여서 더욱 정신이 없었다. 사람이 매일 마감시간에 쫒기면서 기계처럼 굴러가다보니 자주적이고 개성적인 사고와 정서가 메말라갔다. 그저 동물처럼 자극에 반응할 뿐 인간다운 면모나 여유는 상실해 갔다. 매일 아침 정신없이 일어나 조간신문을 들춰보면서, 옷 입으면서, 밥 먹으면서 출근하고 회사에서는 톱니바퀴 같은 업무 메커니즘에 끼어 시키는 대로, 또는 하도록 되어있는 코스를 따라 굴러갔다. 기사 작성은 말할 것도 없고 사설이나 칼럼을 쓸 때도 그 짧은 시간에 머리를 쥐어짜고 자료를 끼어 넣어 ‘비빔밥’이나 ‘맞춤복’을 만들어 내놓았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나면 술자리 기웃거리고 되지도 않는 소리 듣고 지껄이면서 떠들어대고, 집에 와서는 TV앞에 앉아 영화나 보다가 고꾸라진다. 여유시간이 예상되면 바둑, 골프 칠 기회 노리고 누가 무슨 재테크 정보라도 흘리면 집 평수 늘려가는 일에 솔깃해 하기도 한다. 그래서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상실하여 인간답지 않다면 어찌 되겠는가. 사람들은 그래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식은 사람들에게 많은 혜택을 안겨주었다. 지식과 기술은 오늘날의 위대한 문명을 이룩했고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본질, 사랑하고 베풀고 더 나아가 정직, 협동, 인내, 용기, 보답 등 존귀한 마음가짐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일 사람이 많은 지식을 갖고 있긴 하지만 사랑할 줄 모르고 정직하지 않고 협동할 줄 모르고 참지 못하며 용기가 없다면 어찌 되겠는가.
공자나 석가나 예수나 소크라테스나 태양이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자전하면서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는 기초 상식도 몰랐다. 지금은 이런 정도는 초등학생도 다 아는 지식이다. 그런데도 인류역사상 그분들보다 더 위대한 스승, 성인, 철학자가 있었는가. 아무리 지식이나 기술이 편리하고 유익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활용의 대상이다.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사람이 사랑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알고 은혜를 아는 사람다움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사람답게 살아온 것인가. 돌이켜보면 잘못한 것이 너무나도 많게 느껴진다. 그 많은 잘못을 조금이라도 줄여가면서 살아야 했는데 그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나마라도 어렴풋이 깨닫게 되는 것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아닐까. 그 정도라도 깨닫는 것이 내게는 아주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금년에 고희(古稀)를 맞았다. 사람의 일생은 만나서 알고 사랑하고 기뻐하고 미워하고 슬퍼하고 헤어지는 기쁜 이야기이면서 슬픈 이야기다. 참으로 짧은 이야기인 것 같다. 나는 무수히 혜택만 입고 베푼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살아온 것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만약 내 정신에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것이 담겨있다면 그것이라도 내놓고 가야 할텐데 무언가를 내놓으려고 보니 하찮기 그지없다.
돌이켜보면 내 일생이 어린애의 장난에 지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는가. 비굴한 복종과 온갖 야유 속에 노예적 편익만을 추구하지는 않았는가. 쾌락과 야심을 충족시키는데 연연하지는 않았는가. 일생이 번민과 고통은 아니었는가. 정직과 인내, 사랑과 용기를 잃지는 않았는가. 기쁨과 슬픔으로 무늬 놓아 짜낸 한 필의 고은 비단은 아니었는가.
나는 잘했든 못했던 동아일보사에서 30여년을 글쟁이로 살아왔다. 논객이라고 자부하기도 했다. 뒤척이면서 잠 못 이루던 날 밤 일생을 그대로 적어 자식들에게 전해주기로 결심했다. 긴 편지를 써 남기기로 했다. 사람의 일생은 제각기 다르다. 인생은 매우 복잡한 인과응보의 구도 속에서 변화무쌍하게 전개된다. 한사람의 행적이 사실 그대로 기술되어있는 내용은 다른 많은 사람들의 자녀에게도 유익한 교훈이 될 수 있고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될 수도 있다.
내 삶은 평생 외롭게 기다려온 삶, 욕망과 패배의 삶, 진실추구와 희망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 나름대로는 정성을 모아 애썼던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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