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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필 - 친정아부지를 보내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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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순 희(아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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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03일(화) 09:56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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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부지는 키가 너울너울 크시고 풍채가 돋보이시는 미남이셨다. 옷 테도 잘 나셨고, 칠십이 넘어서 쓰시던 검정 모자에 지팡이가 꽤나 어울리는 멋쟁이이셨다. 아버지는 남에게 싫은 소리 잘 안하시는 온순하신 분이셨고, 먼 들판의 어르신들까지 불러 술 한 잔 나눠먹으려 애를 쓰시던 분이셨다.
아버지는 5대독자셨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자식을 많이 두셨다. 6남 3녀..그중에 막내인 나는 또래 친구들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으심이 과히 좋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한량이셨다. 판소리를 좋아하셨고, 대회에 나가셔서 상도 받아오셨다. 물론 군민대회였지만...한량을 만난 급한 성격의 엄마는 없는 살림에 자식들 맥여 살리시느라고 고생 많이 하시다가 내가 스물두 살 때 쓰러지신 뒤 엄마를 간호하기위해 내려온 나와 아버지의 정성스런 병간에도 불구하고 한복 곱게 차려입고 환갑도 지내지 못하고 영영 먼 길을 떠나시고 말았다.
아버지는 환갑을 겨우 지내시고 홀아비가 되었고, 막내오빠와 그렇게 셋이서 엄마 잃은, 마누라 잃은 슬픔에 젖어 어두운 터널 같은 세월을 처량하게 견디어 나갔다. 나는 영락없는 산골처녀였다.
엄마 첫제사에 올릴 생선을 다듬던 아버지는 그만 생선 한마리를 고양이에게 빼앗기고 말았는데
고양이 잡으러 뒤 쫒다가 그만 아버지가 왈칵 눈물을 보이시고 말았다. 그때 나는 구부정한 허리로 벌써 달아난 고양이를 향해 달리시는 아버지 모습이 우스워 철이 없어서 웃었었다.
아버지는 막내딸인 내게도 당신의 속옷을 잘 내어주지 않았다. 나중에 찾아보면 여기저기에서 꼭딱꼭딱 말아진 누런 속옷이 부끄럽게 튀어나왔다.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막 함부로 말을 했다.
막내딸은 아버지가 만만했었나보다. 아버지는 어느 날, 혼자서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신 적이 있었다.
당신의 속옷을 손수 빨아 빨래 줄에 양말짝처럼 널었는데 물이 뚝뚝 떨어지는걸 보고 내가 다시 꼭 짜서 빨래 줄에 반듯하게 널었다. 그제서야 아버지의 사르마다 같았다. 아버지는 속옷을 “사르마다”라고 불렀다. 이걸 그렇게 딸년한테도 내어주기 싫을까....
나는 다시 도시로 빨리 나가고 싶었다. 궁리 끝에 면사무소 호적계장님을 찾아갔다.
"혼자되신 홀 할머니 있으면 좋으신 분 찾아서 저희 아버지를 새장가 보내 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소문이 이상하게 났다. 누구누구 딸이 있는데...세상에 심청이가 따로 없당게...시상으나 혼자되신 아버지 새장가 보내려고 하다니...효심이 지극하다네.."
난 아버지 새장가 보내드리고 도시로 내뺄려고 했는데 소문이 엉뚱하게 났고, 생각처럼 빨리 도시로 나갈 수 없었고, 아버지랑 티격태격 싸우면서 5년 동안 그렇게 같이 지내다가 드디어 막내오빠 결혼과 동시에 배구공처럼 도시로 튀어나갔다.
나는 세월이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였다. 시댁은 뜻밖에도 친정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곳.
아버지는 막내오빠랑 손자·손녀들이랑 며느리가 해주는 따신 밥묵고, 깨끗하게 빨아진 옷입고,...자전거 타면서 깐닥깐닥 노인당으로 출퇴근하셨다. 아버지는 그만하면 신간이 편해 보이셨다. 그때는 왜 혼자되신 아버지의 말 못할 속사정을 헤아리지 못했을까. 나는 친정엄마한테서 받을 수 없는 사랑을 시어머님께 듬뿍 받으면서 솔직히 아버지보다는 어머님을 더 생각하게 되면서 아버지에겐 그만 무심한 딸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나는 뭐..출가외인인데...아빠는 오빠랑 같이 계시니까, 걱정 없어. 어무님은 혼자계시잖아.
아파도 말씀도 없이 혼자 병원에 입원하시고...아빠는 당신밖에 모르잖아. 당신만 편하면 되잖아.
아버지 곁에는 오빠내외가 있으니까..그렇게 아부지를 잊고 살 때가 더 많았다.
팔순을 겨우 지내시면서 병원을 제집처럼 다시시던 아버지가 그래도 오래오래 계실거라고만 생각했다. 위독한 상태의 아버지는 (장성)요양원에서 6남3녀 자식들을 추석에 모두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만남이 마지막이 될 줄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꺼져 가시는 아버지를 보면서도 이렇게 더 몇 달을 계셔 주실 줄로만 철썩 같이 믿었다.
나는 추석이 지나고 아버지를 고창으로 모시려 하였다. 직장에 사표를 내고 아버지를 한 달 간이라도 병간하여 드리려고 맘먹고 그리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상태가 좋아지시던 아버지는 고창으로 오시기로 하신 날...추석연휴가 끝나고 모두 지쳐있는 시간에..너무나 갑작스럽게 막내올케만이 임종을 지키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고 마셨다. 올해 여든하나....
삼우제를 지내고 바보 같은 딸년은 아버지 차가운 산에 두고 오면서도 실감도 못 느끼다가 그제서야 돌아오지 못하는 아버지의 빈자리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잠이 오질 않아 이리 뒤척 저리 뒤척...시댁에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제 친정에 가도 아버지가 아니 계시구나....가슴을 쳤다. 아~~이제 정말 아니 계시구나~만만하게 말대꾸해도 받아주실 분이 이젠 영영 아니 계시구나~
친정집 새로 지을 때 우리 집에 두 달 동안 계시면서 어린 손주들과 채널다툼을 하시던 모습.
수말스런 아이들 때문에 화장실에 다섯시간이나 갇혀 계시다가 딸년 들어오는 인기척에 그 새벽에 반가움에 쩌렁쩌렁 울리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거린다.
"어쩌 안자냐?"
"어머님, 너무너무 속이 상해요."
"원래 그런 것이어야, 못해 드린 것만 생각나고 그런 것이어야." 어머님이랑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어도 날은 금세 밝아지지 않았다. 엄마는 내 가슴에 묻었기 때문에 산소가 떠오르진 않았는데...아버지는 정말 차가운 그곳에 두고 온 미안함. 당신이 혼자 삭혔을 속내를 제대로 헤아려드리지 못한 죄스러움. 홀아버지로 20년 동안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하는 외로움도 있었을텐데...며느리나..자식들에게 누가 될까봐 혼자서 삭히는 것이 많이 있었을 텐데...충분히 헤아려 드리지 못한 바보 딸년..
아~왜 이제야 아버지의 말 못할 속사정을 이제사 알 수 있는 것일까!
그보다 더 알 수없는 것은 나의 마음.
혼자되신 아버지에 대한 연민보다는 세파에 시달리는 오빠들과 그 오빠들에게 시집온 올케들에 대한 연민이 더 컸기에 아버지의 빈자리가 내게 이렇게 크게 다가올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고막이 터질 듯 크셨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렇게 듣고 싶어질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아버지마음을 좀 더 헤아려 드리지 못했구나.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아버지를 좀 더 챙기지 못했구나.
(이렇게 못내 사무치고 아부지의 모습이 그리워질 거라고 수도 없이 들려주었던 바람이 전하던 소리에 나는 이제야 귀를 기울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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