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6-04-22 | 05:53 오후

로그인 회원가입 기자방 원격

    정치/지방자치 사회 교육 문화/생활 지역소식/정보 고창광장 독자위원회 전북도정 기타

 

전체기사

커뮤니티

독자투고

공지사항

개업 이전

편집회의실

뉴스 > 인물포커스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고창이 자랑하는 예술인 - 최초의 여류국창 ‘진채선’

목소리 성량 풍부하여 가창에 천부적인 소질 타고 나

2009년 11월 12일(목) 10:03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고창은 여자 소리꾼의 고장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소리꾼이었던 진채선, 경상도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고창에서 활동했던 허금파, 국가지정문화재여던 김여란과 김소희가 고창 출신의 여자 소리꾼이다. 이만하면 가히 여자 소리꾼의 고장이라고 이를 만하다. 김소희의 고향인 흥덕면 사포리는 예전에는 매우 큰 어항이었다. 특히 조기처에는 조기 파시가 열려 흥청거리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국악 공연단체들은 이곳을 빼놓지 않았다. 지금은 퇴락한 이곳에는 김토산이라는 소리꾼이 살았다. 김토산은 이날치의 소리를 배워 김성수에게 가르쳤다.
김성수는 다리를 저는 소리꾼으로 정읍과 김제를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널리 이름을 날리지는 못했지만, 판소리 애호가들 중에는 그의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 사포는 또 편재준의 고향이기도 하다. 편재준은 퉁애(단소보다 크고 퉁소보다 작은 악기)의 최고 명인으로 장님이었는데, 협률사 공연장에서 단소의 최고 명인 전추산을 만나 통애의 최고 명인이 되었다. 흥덕을 지나면 곧 선운사에 이른다. 선운사가 있는 선운리는 시인 서정주의 고향이기도 하다. 선운사 입구를 지나 4㎞즘 더 가다보면 이르는 곳이 심원이다. 심원면 소재지에 이르기 직전 바닷가 쪽으로 있는 동네가 월산리인데, 이곳 사등마을이 바로 진채선 출생지이다.
진채선은 이곳 무당의 딸로 태어났으며, 신재효에게 판소리를 배운 뒤 경회루 낙성연때 서울로 올라가 대원군 앞에서 소리를 하였다. 진채선의 소리를 들은 대원군은 진채선을 곁에 두고 사랑하였다고 한다. 서울에 올라간 진채선이 내려오지 않자 신재효는 진채선을 그리워하며 ‘도리화가’라는 노래를 짓기도 했다. 그러나 진채선은 끝애 신재효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곳 사등마을은 앞에서 말한 김성수가 어린 시절을 보내며 소리를 연마하던 곳이기도 하다. 사등마을 바로 앞이 검당마을이다. 검당마을은 지금은 동네라고 할 것도 없지만, 예전에는 큰 포구였다고 한다. 특히 이 포구는 소금의 생산지로 유명하였는데, 염전에서 햇볕에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든 것이 아니라, 가마솥으로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생산했다고 한다. 이곳이 이런 소금 생산지가 된 것은 옛날 백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선사가 선운산의 도적떼를 교화하여 이곳으로 옮긴 다음 생업으로 일러준 것이 바로 소금을 만드는 기술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오래 동안 선운사에 소금을 바치며 살았다고 한다. 소금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는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물건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소금을 국가에서 관리하기도 하였다. 소금이 많이 나게 되자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번화한 곳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진채선의 어머니도 무업에 종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진채선은 어떻게 진씨성을 가지게 되었을까. 진 씨는 중인이었지만, 대대로 고을 아전을 맡아하던 내로라 하는 집안이었기 때문에, 채선이 진씨 성을 갖게 된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몰락한 진씨 한 사람이 이곳으로 흘러들어 무당과 부부의 연을 맺고 살게 되면서 채선이를 낳았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곳 진채선의 생가 터에는 진채선의 생가 터라는 작은 표지만이 서 있을 뿐이다.
진채선과 동리 신재효 사이의 감정교류나 남녀 간의 애정문제를 지금 언급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진채선이 당시의 권력자요 고종의 부친이었던 흥선 대원군 이하응의 총애를 받았던 것만은 역사적 사실이고 진채선을 대원군에게 빼앗긴 동리 선생의 상심은 도리화가를 보더라도 미루어 짐작할 만한 일이다.

도리화가
스물네 번 바람 불어 만화방창 돌아오니 귀경가세 귀경가세 도리화 구경가세 도화는 곱게 붉고 흼도흴사 오얏꽃이 꽃가운데 꽃이 피니 그 꽃이 무슨 꽃고 웃음웃고 말을하니 수렴궁의 해어환가 해어화 거동보소 아리땁고 고을시고 현란하고 황홀하니 채색채자 분명하다 도세장연 기이한일 신선선자 그 아닌가… 강호의 호걸들이 왕래하며 하난말이 선낭의 고운얼굴 노래또한 명창이라… 이말 듣고 일어안자 어서밧비 보고지고 주야로 옹망하니 하로날이 삼추로다.

이렇게 진채선을 애절하게 그리는 동리선생의 마음이 대원군에게 전해져 뒷날 진채선은 고창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국부의 부친을 모시던 몸으로 중인의 모수발을 차마 들 수 없었던 진채선은 산중으로 들어가 여승이 되어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리고 진채선은 거처하던 승방은 벽과 친정을 온통 검은 종이로 도배를 함으로서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살아가기로 결심한 그녀의 마음을 나타냈다는 얘기가 구전되고 있다. 어쨌든 진채선을 필두로 우리 판소리계에는 여류명창들이 족족 나타나 그 계보를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15호 고창예술의 맥 중에서…>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 Copyrights ⓒ(주)고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고창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제46회 장애인의 날 기념 장애인 인식개선 공연..

봄의 기억, 길 위에 남다 고창 청보리밭 축제..

과거를 품고 내일로, 신재효판소리박물관 재개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고창군 예비후보자 현황..

회사소개 - 조직도 - 임직원 - 윤리강령 - 편집규약 - 광고문의 - 청소년보호정책 - 기자회원 약관 - 구독신청

 상호: (주)고창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404-81-20793 / 주소: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성산로48 (지적공사 옆) / 대표이사: 유석영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유석영
mail: gc6600@hanmail.net / Tel: 063-563-6600 / Fax : 063-564-8668
Copyright ⓒ (주)고창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