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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 용산마을 표을종씨.

그가 남긴 용산의 발자취, 역사는 알리라

2009년 11월 24일(화) 10:05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 공음면 용산

ⓒ (주)고창신문


역사가 없는 민족은 민족의 뿌리가 없고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민족의 정체성이 없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란 말이 있듯이 과거는 단순한 과거로만 있는 것이 아닌 현실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역사바로세우기와 역사정체성 찾기는 우리의 과거의 역사부터 올바로 배우고 익혀야 하며 역사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계승발전 시켜야 한다.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사랑하고 아끼며 가르치지 않으면 그 어느 나라도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해 가면서 '나는 누구인지, 어디서부터 왔는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생각해 볼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현대인들이다. 하루하루를 바삐 움직이며 생활하는 현 세대와 후손들에게 자신이 나고 자란 마을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 30여년 간 불철주야 연구해오신 분이 계시다. 바로 고창군 공음면 용산에 표을종(69)씨이다. 표을종씨는 마을 역사 발굴에 대한 끊임없는 집념으로 몇 년 전 TV와 신문, 잡지 등에도 여러번 실린 인물이다. 어렸을 때 마을 어르신들에게 "용산에는 인공동굴이 많이 만들어 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던 그는 군 제대 후 30여년 간 인공동굴 발굴과 자신이 나고 자란 용산마을의 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한손에는 비디오 카메라를 다른 한손에는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풀섶을 헤치고 눈밭을 헤매고 다니면서 역사적 근거 자료를 남기는데 여념이 없었다. 용산마을은 조그만 마을이지만 옛부터 많은 전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마을안에는 년도를 추정할 수 없는 미륵불상과 수령 약 500년으로 추정되는 여당산(일명 할머니 당산)이 고창군 보호수 괴목으로 지정되어 있다. 뒤돌아서 무장 쪽으로 가다보면 달터고개에 이른다. 고개 좌측편 등산로 입구에 등산안내도가 있다. 2004년 4월에 등산로를 개발했으며 그가 발굴한 동굴 21개도 발견할 수 있다. 일본군이 1939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전시벙커 및 주위정찰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땅굴을 설치한 것이다. 특히 벙커와 땅굴의 입구는 도로와 바다를 겨냥해서 뚫려져 있다. 이곳이 일본군 1대대가 주둔한 곳이다. 용산은 공음면 칠암리, 용수리, 신대리, 구암리, 석교리 등 5개리 땅과 6개군의 땅을 한 자리에서 바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용산에서 동쪽으로는 정읍, 서남쪽으로는 영광, 장성, 북쪽으로는 부안군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군사요충지로도 유명하다. 1896년 동학혁명 봉기초기 동학혁명군의 훈련장과 휴식처가 있다. 휴식처에는 윷판이 그려져 있는 바위(윷판바위)와 식수로 사용햇던 터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그곳을 이 지역에서는 윷판두재라 부르며 정상은 파수봉, 할림봉이라 하고 봉화를 올리던 봉화대이기도 하다. 얼마전 아산 봉덕리고분에서 금동신발 등이 출토되어 역사적으로 큰 조명을 받고 있지만 용산마을 어귀 야산에서도 연대를 알 수 없는 고분(삼국시대 중 백제고분으로 추정)이 전방후원문 장구형 묘의 형태로 되어 있어 해마다 일본의 대학교수와 학생들이 찾아 와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그는 보고 있다. 이처럼 무궁무진하게 쏟아져 나오는 역사적인 사실들이 발굴 복원되었으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세월속에서 묻혀져버리는 역사이기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는 아직도 공음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역사책이 발간됐으면 하는 것과 봉화대에 팔각정 등을 설치하여 역사의식과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다. 공음의 무구한 역사가, 용산이라는 곳에서 담겨져 있는 역사를 보고 있노라면 하나라도 더 발굴하고 기록하고 싶지만 이제 칠십을 바라보는 그로써는 더이상 전진할 힘이 없다. 하지만 자신이 외로운 길을 가는데 보탬이 되준 공음가로등회와 공음면청년회, 고 신학봉면장과 마을 친구들 그리고 이강수 군수와 오명숙 공음면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빠뜨리지 않았다. 그의 땀과 열정이 담긴 기록물들이 현재로서는 빛을 보고 있지는 않지만 후세에는 반드시 그가 남긴 발자취가 공음과 용산의 역사를 재조명하는데 반드시 귀중한 자료가 되리라 굳게 믿고 싶다.
김희정 기자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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