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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고창신문 창간호에 게재된 故 석전 황 욱 옹

한국 서예사를 대표하는 굵직한 서예가…

2010년 04월 28일(수) 10:02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창간 휘호)

지난 1990년 4월 16일 월요일 고창신문 창간호가 발행됐다. 이 신문에는 고창신문이 나아가야할 방향과 역할에 대한 기사와 더불어 당시 고창군수로 재직중이던 김완주 고창군수와 이기화 문화원장, 진기상 무장면장, 주부 임정숙씨, 대산면 새마을지도자 이상빈씨 등의 창간 축사가 게재되어 있다. 또한 2천 년대의 고창의 청사진을 제시하며 그 당시의 고창과 10년 후의 고창의 미래를 그려보는 특집 기사도 실렸다. 그와 더불어 생전의 석전 황욱 옹의 사진과 함께 그의 인터뷰 기사가 실려 창간 21주년이 된 지금 창간호에 실린 인물을 각색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에서 황효익의 5남 3녀 중 2남으로 태어나 외길로 걸어온 故 석전 황욱 옹(1898. 1. 12~19933 3. 22). 그의 가문은 15대를 내려온 문한세가(文翰世家)로 영조때 실학의 거장인 황윤석(1729-1791)의 종가(宗家) 7대손이다. 석전은 옛 선비들이 그러하듯 5살 때부터 한학과 서예를 익혔다. 그러다 1918년 근동에 살던 9살 위의 근촌 백관수의 권유로 서울 중앙고보에 입학, 신학문을 익힐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유가적 전통을 고집하던 부친의 엄명으로 자진 중퇴, 고향으로 내려와야 했다. 1920년 석전은 일제의 암울한 시대상을 눈뜨고 볼수 없는데다 끓어오르는 열정을 삭이기 위해 처숙(妻叔) 노병권(전 국회의원 노일환씨의 부친)과 함께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10년 세월을 돈도암(頓道菴)에 기거하며 오직 서예와 한학탐구에 전념했다. 이때 탄탄한 기초가 닦이고 훗날 당당한 석전체의 원형이 마련되었다. 당시 그는 송나라의 명필 조맹부(松雪)체를 비롯 왕희지, 구양순 체 등을 두루 섭렵했다. 나중에 석전이 “곱게 뵈려는 글씨 보다는 법필(法筆)을 섭렵하고 정심(正心)으로 써야 하고 욕심 없는 정자(正字)를 많이 써야 그 나름대로 자기의 창작서(創作書)가 된다”고 한 말은 자신이 기본에 얼마나 충실했는가를 말해준다. 또한 ‘如錐劃沙 如印印泥’ (송곳을 잡아 모래위에 획을 긋듯하고 머무를 때는 진흙위에 도장을 찍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한다) 는 주장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석전은 1930년 고향으로 돌아와 해방이 될 때까지 조선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 신위(申緯 1769-1845)를 사숙하며 옛 선비들이 갖추어야 할 六藝(禮·樂·射·御·書·數)를 더 깊숙이 익혔다. 말하자면 석전은 중원의 무림에서 고수들의 도를 터득한 후 한국적인 토양에 맞는 자신만의 필법을 찾아낸 것이다.
이때 석전은 고창과 정읍 등지에서 시주(詩酒)와 활쏘기, 가야금을 즐겼으며 율계회를 결성하여 정악(正樂)을 합동연주하기도 했다. 그의 필명은 가까이 사귀던 정인보(鄭寅普) 김성수(金性洙) 등으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으며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가까운 이웃의 비문과 선대의 묘비를 썼을 뿐 한번도 서예가로서 중앙무대를 기웃거리지 않았다. 이는 해방 이후에도 이어져 국전(國展)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초연하게 은자(隱者)로서의 품격을 그대로 지켜 나갔다. 그러나 회갑(1960년) 이후 석전에게는 서서히 크나큰 시련이 닥쳐왔다. 붓을 잡던 오른손에 수전증이 온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수전증이 오면 붓 잡는 일을 포기하는 게 상례다. 석전은 궁리 끝에 자신에게 맞는 악필법(握筆法)을 창안했다. 붓을 손바닥으로 거머쥐고 꼭지부분을 엄지로 꽉 눌러 붓을 고정시키는 방법이었다. 그 전까지 석전도 일반적인 운필법에 따라 엄지와 식지, 가운데 손가락으로 붓대를 잡고 쓰는 쌍구법(雙鉤法)으로,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 등을 즐겨 썼다. 이 무렵 석전은 첫 서예전을 가짐으로써 세상에 얼굴을 정식으로 드러냈다. 1973년 75살에 전주에서 유지들의 강권에 못 이겨 결혼 60주년 기념 서예전을 연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희수(喜壽)기념 전시회를 가져 중앙무대의 서예가들에게 깊은 인상과 감명을 남겼다. 이후 광주와 부산, 서울 현대화랑, 롯데미술관, 전북일보, 호암갤러리(중앙일보), 예술의 전당(동아일보) 등에서 초대전과 회고전 등을 거의 매년 가졌다. 1988년에는 구례 화엄사의 일주문 현판, 1991년에는 금산사 대적광전 현판휘호를 각각 남겼다. 그동안 석전 옹은 고창의 서예가로서 우리들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다. 1990년 그때 고창신문 노성시 기자는 창간과 더불어 석전 옹을 만나 근간의 소식과 여러 말씀을 듣기 위해 전주시 평화동에 있는 댁을 찾아가게 되었다. 아담한 정원에 소담스레 피어있던 목련꽃은 예술인의 집이라는 것을 자랑하듯 그 자태가 더욱 아름다웠고, 대청을 지나서 석전 옹이 거처하고 있는 곳은 근간에 계획하고 있는 전시회 준비로 써놓은 글들이 걸려져 있었다. “요즘엔 몸이 불편해서 외출을 삼가고 있지. 그래도 붓대 잡는 일만은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 자신의 필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물음에 “어떤 이는 악필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전혀 그렇지 않아. 나 자신은 우수(오른손으로 쓰는 것)보다는 좌수(왼손으로 쓰는 것)가 훨씬 힘이 넘치며, 더욱 섬세할 수 있다”면서 “글에는 힘이 넘쳐야 한다”고 강조하셨단다. 1990년 4월까지 10여 차례의 전시회중에서는 “88년도 서울에서 열었던 ‘망백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석전 옹은 수제자에 대한 물음에 “아직까지 제자로 키운 사람은 없어. 또 앞으로도 그럴 생각도 없다”고 했단다. 그 당시 만들어질 ‘고창의 인물’이란 책의 제목을 청탁받았다면서 “고창의 인물에 내가 낄 수 있다면 할아버지와 이미 작고하신 형님 황석우 옹이 빠진다면 나 또한 그럴 자격이 없을 것”이라며 절대 근신하고 지족하셨다는 형님을 회고하기도 했다. 고창인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말씀을 듣고자 했을 때는 “말하자면야 끝이 없지만 이 글로 대신하겠네”하면서 직접 휘호를 써주셨다. 휘호를 쓸 때는 왼손으로 붓을 감아쥐듯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붓의 끝을 눌러 마치 붓대에 온 몸의 기를 불어 놓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또, 한자 한자 써 내려 갈 때마다의 흥분과 긴장은 곁에 있는 사람으로선 예술의 극치를 보고 있다는 설레임보다는 오히려 두려움이 앞서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글을 쓸 때마다 오른손 손가락이 떨리고 있을 “옹이 말씀하신 힘이 있는 글씨”를 위한 혼신의 힘을 다 쏟고 있음이 역력했다고 한다. 고창사람이라면 누구나의 가슴에 남을 석전 황욱 옹은 그 당시 많이 연로했음을 느꼈다고 한다. 그분을 모시고 있던 황병근씨는 그리도 배우고, 또 모시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라며 효, 우, 근검하고 지족하라는 말씀과 ‘독지’라는 글귀가 고창인들에게 교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고창신문 창간 축하 휘호를 손수 써주셨고 3년이 지난 1993년 3월 22일 9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며 한국 서예사를 대표하는 굵직한 서예가로써 아직도 우리의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다.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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