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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남매의 자랑스러운 아버지 김정남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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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이고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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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02일(금) 09:49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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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고창신문 | |
‘응애~응애~’ 우렁찬 아이의 울음소리와 ‘까르르르~’ 하고 천진난만하게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우리 농촌에서는 좀처럼 들리질 않는다.
갈수록 서민경제는 어려워지고 대학등록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니 농촌에서 아이 하나 낳고 기르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정부에서는 출산장려대책이니 뭐다 해서 출산율 높이기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그마저도 피부에 와 닿질 않는다.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만 하더라도 보통 한집에 7~8명은 북적북적 대며 살았다.
그보다 더 많은 집은 10명이 넘는 집도 있었으니 춥고 배고팠던 그 시절,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던 그때에는 어떻게 자식 낳고 살며 키웠는지 상상할 수가 없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자매, 형제들끼리 함께 부대끼며 그냥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손대면 깨질까, 불면 날아갈까’ 하는 사소한 걱정은 접어두고 당장 먹고 사는 일이 급선무였다. 넘어지면 넘어진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자식들은 스스로 강해지고 단단해져 지금의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되었다.
수많은 아버지 중 슬하에 9남매를 두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고창군청 농업진흥과 김정남(58) 과장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성송면 계당리에서 태어난 김 과장은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2대 독자로서 조부모님의 보호아래 성장하게 되었고 조부모님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던 규수가 맘에 들어 김 과장의 짝으로 이미 점찍어두었다.
그때 나이 19살,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 누나이자 옆집 누나였던 김순임(61)씨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20살에 첫 딸 미라(40)씨를 얻게 되었다. 조부모님을 30년간 봉양한 김 과장은 빨리 손자를 보고 싶으셨던 조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선미, 선화, 경신, 경미, 경복, 성, 민서씨 등 딸 여덟을 낳고 아홉째로 아들인 대수(22)씨를 낳아 현재 9남매의 아버지가 되었다. 특히 9남매의 어머니인 순임씨는 김 과장에게 가장 미안하고도 가장 고마운 사람이다.
군청에 다니기 전 농사를 짓고 살았던 그는 76년 1월 8일부터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고 아이들은 장학금을 받으며 제 몫을 충실히 해줘 키우는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9남매 중 딸 여섯은 결혼을 했고 둘째인 선미(고창군청)씨와 둘째사위인 이영윤(성송면 산업계장)씨, 셋째인 선화(고수면사무소)씨는 아버지와 함께 고창에서, 넷째인 경신씨와 다섯째인 경미씨는 성동구청과 서신동사무소에서 각자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다. 군복무중인 막내아들을 빼놓고는 8명의 자식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부모로서 자식 키운 보람을 느끼게끔 해준다.
김정남 과장은 “식구가 많다고 해서 못사는 것은 아니며 본인들 스스로 공부도 하고 수가 많다보니 이해심과 사교성 등 이익인 부분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키울 때는 힘들고 어렵더라도 그 시절이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이고 행복이다”며 “아이 낳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아이 키우는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양 명절과 집안 행사 때면 한꺼번에 모이는 자식들 때문에 40평의 집이라도 좁게 보이지만 문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웃음소리는 다른 이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다. 9남매의 아버지인 김정남 과장, 작금의 사회에서 본받아야 할 인물이며 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는 김정남 과장의 집안에 늘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바래본다.
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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