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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산작전 고창중·고등학생 희생자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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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대신 총 들고 고귀한 생명 바친 여섯 용사 명복 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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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8월 26일(목) 09:51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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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고창신문 | |
지난 25일 고창고등학교 교정에서 ‘선운산작전 고창중·고등학생 희생자 추모식’이 열렸다. 1951년 8월 25일 학도병으로 참전해 선운산 계곡에서 빨치산을 쫓다 숨진 6명의 용사를 위로하는 자리였다.
이날 고창중·고총동창회 조병채회장 등 총동창회 임원과 기별회장 및 회원 그리고 유족 등 약 50여명이 참석했다.
‘선운산작전 고창중·고등학생 희생자 추모식’은 정택진·민병욱·이운교·김봉수·유종익·박금석 열사를 위해 마련된 것으로 어린나이에 펜 대신 총을 들고 고귀한 생명을 초개와 같이 바치신 그분들의 명복을 빌었다.
조병채 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나라사랑 정신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가치관이 엷어져가는 오늘날 나 아닌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선배님들과 열사분들께 최고의 찬사와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조 회장은 “우리는 이러한 님들의 사랑과 정신을, 실천의 정신으로 승화시켜 내 고장과 민족을 사랑하고 대의를 위해 소의를 바치는 희생정신으로 우리 모교와 고장, 나라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추도사를 마친 후 유족 및 회원들은 자유·평화·진리의 탑에서 분향하며 영령들의 넋을 기렸다. 자유·평화·진리의 탑은 자유와 향토수호를 위해 펜 대신 총을 들고 학도 의용군에 지원한 120명과 1951년 8월 25일 선운사 작전에 참여하였다가 전사한 6열사와 부상자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이 탑은 고창군민과 1만5천여 동문들의 뜻이 모아져 1999년 총동창회의 주관으로 건립을 추진하여 모교에 여섯 영령들의 보금자리인 자유·평화·진리의 탑을 세우고 매년 추모행사를 가지게 되었다.
선운산 작전의 참화는 다음과 같다. 1950년 9월 28일 수복이 되었음에도 고창지역은 산간오지였던 관계로 치안이 미치지 못하므로 남아있는 잔당들이 산속에 은신하고 게릴라전을 일상으로 준동하였으니 다른 지역보다 늦게 수복되었다. 고창지역은 광주 13연대 6중대가 들어와 수복하게 되고 고창중·고등학교 신관 교실을 차지하고 주둔하였다가 치안을 경찰에 넘기고 철수했다. 전투경찰대가 민생안전을 위해 작전을 수행하고 지역에서 한청특공대가 조직되어 도왔고 서남지구 전북사령부 예하 학도의용대 고창중학교 지대가 편성되어 치안확보에 늘 동원되었다. 순창 쌍치, 영광 불갑사, 선운사, 문수사, 방장산 600고지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학생이므로 전투훈련도 받은 바 없고 전투 경험도 없는 학생이 왕성한 혈기만 앞세우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으나 1951년 여름방학 중 우리 학교는 우리가 지킨다는 신념으로 학도호국단 자체적으로 전교생을 3기로 나누어 1주일간씩 합숙군사 훈련을 학교에서 실행하고 3주간의 훈련을 끝내던 그날 밤 공비 출몰로 학생들을 긴급 동원하여 경찰서에 가서 총기를 지급받아 120여명이 선운사 공비 작전에 투입되었다. 선운사 앞산에서 계곡을 따라 공비를 탐색하여 가던 중 무참하게 공격을 당하여 5명이 희생되고 1명이 행방불명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5명의 전우는 학생장으로 고창읍 덕산리 묘소에 안장하였다.
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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