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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최여겸과 개갑장터’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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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의 자랑스러운 역사 계승 방안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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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9월 07일(화) 09:56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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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고창 청소년수련관에서 사단법인 고창문화연구회(회장 백원철)가 주최하는 순교자 최여겸과 그의 순교지 개갑장터에 대한 학술 발표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고창문화연구회의 백원철 회장과 한웅재 고창부군수, 이만우 고창군의장, 이병호 천주교 전주교구장 주교, 김병희 고창성당 신부 등 약 300여명의 군민 및 관계자들이 모여 진행되었다.
백원철 회장은 “210년 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염원했던 최여겸이 온갖 형벌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 믿음을 지키며 목숨을 버린 그와 그의 순교지에 대해서 재조명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라며 학술 발표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한웅재 부군수의 격려사와 이병호 주교의 기념사에 이어 본격적인 학술대회가 시작됐다.
첫 번째 발제자로 ‘최여겸 순교자의 가계와 후손’을 발표한 백원철 교수는 “참수형을 당한 최여겸 후손의 존재여부는 지금까지 확인돼지 않았지만 이번 학술행사 준비 중에 직계후손임을 자칭하는 이가 나타났다. 필사된 그 분의 족보 등을 추적해 본 결과 최여겸의 후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새로운 사실을 제기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진소 신부는 ‘호남지역 천주교의 전파와 최여겸의 역할’을 발표했다. 특히, 김 신부는 순교자 최여겸에게 관심 있게 접근한 첫 연구자로, 호남지역과 고창지역 천주교 수용과 전교 과정, 최여겸의 천주교 수용과 전교, 문초 과정 등의 일생을 기존 연구에 덧붙여 보완·정리했다.
세 번째로 ‘순교지 개갑장터의 역사·지리적 조명’을 발표한 최영준 명예교수는, 개갑장터의 규모, 시장형성의 배경 등을 고찰한 뒤 폐쇄되는 과정을 고지도·문헌·지형 등을 통해 처음으로 밝혀냈다.
1910년대까지 흥성했던 개갑장터가 ‘구한말 의병들의 자금조달처, 보급소로 일본에 의해 폐쇄됐다’ 등 전해오는 설에 대해 영광 홍농, 법성포 쪽의 석교포 간척사업(1924년)이 이루어진 후 뱃길이 끊겨 시장기능이 약화되면서, 쇠퇴하고, 1925년경에는 명맥을 유지했고, 1930년경에는 없어지고 말았다는 것을 이번 발표를 통해 분명히 밝혔다.
마지막으로 ‘순교지 개갑장터의 개발과 고창지역 관광활성화 방안’을 발표한 나종우 교수는 순교지 개갑장터의 개발방향과, 기존 고창 관광지와 개갑장터를 연계한 관광벨트 구상 등을 제시했다.
한편, 고창군에서는 최여겸 순교지를 전국적인 성지로 개발하기 위하여 고창군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하였으며 순교지 개발에 대한 타당성 조사와 기본정비계획 수립을 완료했다. 또한, 본격적인 성지개발을 위한 실시계획을 수립, 금년도에는 대상지 토지매입이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탐방객들의 편익제공을 위한 주차장 조성, 화장실 신축 등 기반시설을 우선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천주교 측에서도 최여겸 마티아를 신유박해 순교자에 포함시켜 현재 로마 교황청에 시복시성(諡福諡聖)을 청원한 상태에 있다.
(※시복시성은 가톨릭에서 특별히 덕행이 뛰어났던 사람이 사망한 다음 그를 기리기 위해 복자(福者)나 성인으로 추대하는 것으로, 해당 교구가 신청하면 교황청의 전례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교황이 최종결정한다.)
권샘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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