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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역사적 성격과 의의 드러난 무장 기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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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역사 향한 동학농민혁명의 횃불을 다시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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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04일(목) 10:48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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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고창신문 | |
오는 5일 고창동학농민혁명 기념제 및 무장읍성 축제가 무장현관아와 읍성일원에서 열린다.
‘동학농민혁명은 무장기포지로부터, 4월 25일의 함성은 전국적인 봉기로’를 주제로 개최되는 이번 축제는 전국적인 봉기의 시발점인 무장기포의 의미를 되새김과 동시에 인지도를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고창군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정립하게 된다.
고창은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했던 전봉준장군의 출생지이며, 동학의 대접주 손화중포의 활동무대이다. 또 고창군 공음면 구수마을은 1894년 3월 20일 무장포고문을 선포함으로써 동학농민혁명이 지역봉기에서 벗어나 전국적인 봉기로 출발한 시발지로써 역사적 의미가 있다. 또한 고창은 선운사 도솔암마애불, 왕제산, 손화중 도소 및 피체지, 영학당 전투지, 무장현 관아와 읍성, 고창읍성, 동학농민군로 등 동학농민혁명사에 길이 남을 많은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이에 고창신문은 고창동학농민혁명 기념제 및 무장읍성 축제 개최를 기념하고 무장기포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부각하기 위한 기획특집을 마련했다.
▲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무장기포의 날' 의결
동학농민혁명유족회 대의원 총회서…
지난 9월 4일 동학농민혁명유족회(회장 김성황)는 정기 대의원 총회를 열고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을 최초 창의문을 발포한 고창 무장 1차기포일인 양력 4월 25일(음력 3월 20일)로 정한다고 선언했다.
유족회는 이날 채택한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에 대한 유족회의 입장’이라는 결의안에서 내년부터 4월 25일에 유족회가 주도하는 기념행사를 서울에서 개최하고 뜻을 같이하는 기관·단체와 연대하여 국가기념일로 제정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동학농민혁명 유족회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을 둘러싼 논의가 7년째 표류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하였으며 임시적 조치로 기념일을 정하여 기념행사를 추진할 것임을 밝힌 것이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은 동학농민혁명 특별법의 목적을 실현하는 중대한 사업임에도 최근에 이르러 기념일을 정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체념어린 발언까지 나오고 있었다.
따라서 유족회로서는 부득이 기념일 제정을 위한 1·2·3차 토론회에서 드러난 다수의견을 존중하여 무장 1차기포일인 양력 4월 25일(음력 3월 20일)을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로 받아들이는 게 합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 역사적 성격과 의의 드러난 무장 기포일(음력 3월 20일, 양력 4월 25일)
무장에서 시작된 동학농민혁명 단계별 발전, 전국적 전개
1894년 1월 고부봉기에서 실패한 전봉준은 3월 20일 전라북도 무장에서 손화중 등과 연합해 동학농민혁명을 알리는 선언서를 곳곳에 반포한 뒤 혁명의 깃발을 올리면서 고부로 향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1년에 걸친 혁명은 시작되었다.
무장 기포는 창의문에도 명확히 제시되어 있듯이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성격과 의의가 잘 드러나 있을 뿐 아니라, 창의문이 전국 곳곳에 반포되어 실제 동학도들이 혁명에 참여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혁명 시작을 알리는 창의문에서 제시된 반봉건 반침략 슬로건은 혁명 내내 관철되었고, 혁명 이후에도 그 정신이 계승·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무장 기포일을 기념일로 제정해야 하는 이유는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일이란 점이다. 다른 역사적인 사건의 기념일 역시 시작일로 정하는 것이 세계적인 관례이다. 5·18이나 4·19에서 보듯이,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기념일 역시 시작일을 기념일로 설정하고 있다. 문제는 무장 기포일의 대중적 인지도가 낮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국사교육에 있다. 지금까지 국사교과서는 실질적으로 고부 백산대회를 혁명의 시작으로 서술하고 있다. 심지어 7차 교육 과정에 따라 개편된 교과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중학교 국사교과서는 고부 백산에서 농민군이 조직된 것으로, 고등학교 교과서는 고부에서 봉기한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무장 기포나 창의문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다. 심지어 현재 간행된 4종의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 역시 무장 기포에 대한 서술이 없는 실정이다. 이는 최근의 연구 성과가 전현 반영되지 않은 채 기존의 통념에 따른 결과이다. 그 때문에 무장 기포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는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고부 백산대회는 실체가 불명확하다. 1894년에 써진 어느 기록에서도 백산대회를 뒷받침할 만한 명확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1894년 3월 26~29일 사이에 고부 백산을 중심으로 동학농민군이 크게 집결하고 조직을 재정비·재편성하면서 무장력을 강화한 것만은 사실이나, 오지영이 쓴 『동학사』에서 언급한 백산대회가 3월 25일에 있었던 것으로는 볼 수 없다. 고부 백산에 농민군이 집결한 것은 무장 기포의 연장선상에서 혁명이 한 단계 질적으로 발전하는 단계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동학농민혁명은 무장 기포→고부 백산대회→전주성 점령→전주회담→재기병→우금티전투라는 단계별 전개 과정을 밟았다. 그렇다면 혁명의 시작일인 무장 기포일을 기념일로 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동학농민혁명의 지향점과 목표·이념이 명확히 제시된 창의문이 곳곳에 반포되고 이를 계기로 혁명이 시작된 상징성은 기념일로 제정해도 손색이 없다. 문제는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은 점인데, 이는 진실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올바른 역사 교육과 홍보를 통해 극복 가능한 문제이다.
무장에서 시작된 동학농민혁명은 단계별로 발전하였을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그런 만큼 혁명 기념은 어느 특정한 날과 장소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적 축제의 날이 되어야 한다.
권샘물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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