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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의 민속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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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2월 16일(수) 17:47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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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의 민속문화
북으로는 부안, 동으로는 정읍, 남으로는 전남 장성 · 영광을 접하고 있고 서쪽으로는 바다로 이어지는 고창은 인촌 金成洙, 명창 金素姬, 미당 徐廷柱 등 각 분야의 뛰어난 인물을 비롯해 많은 義兵과 독립유공자들을 배출해 낸 인재의 고장이자 義鄕의 고장이다. 고창 사람들은 대체로 예절 바른 것을 생활신조로 삼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에는 매우 강인한 세태에의 비판이 뒷받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세도나 권력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온 전통에서 연유한다. 이러한 전통이 면면이 이어져 오늘에 이른 것이 현재의 고창이다.
민속은 살아있는 역사이고,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장이다. 그 가운데 공동체 삶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는 당산제는 벼농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금도 그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당산제의 모습을 살펴보기로 한다. 어르신들이 다 떠나고 그 흔적이 없어지기 전에 살아있는 전통문화를 정리하는 것은 무엇보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1. 마을 신앙의 이중구조
대부분의 마을은 기본적으로 여러 신령들을 모셔서 마을을 안정되게 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마을의 주산에 마을 최고신인 산신을 모시고, 마을 입구에 여러 거리신들을 위함으로써 마을은 사람뿐만 아니라 신령들도 함께 사는 공간을 조성한다. 신령들은 마을의 주산 내지는 진산에 모셔진 상당신과 마을 입구에 여러 거리신들을 모신 하당신으로 구분한다.
대부분의 상당신은 마을 뒷산에 존재하는 막연한 인격을 지닌 자연적인 모습의 산신이다. 아무런 형체도 없이 막연히 산에는 산신이 있어서 마을을 돌본다는 믿음이 있다. 그러나 때로는 상당신이 한 지역이나 마을과 구체적인 관계를 지닌 인격신으로 관념되는 경우도 많다. 마을을 처음으로 개척한 인물이나 그 지역과 역사적으로 관련된 어떤 인물을 상당신으로 모시기도 한다. 마을 입구에는 탑, 장승, 솟대, 수구맥이 선돌 등 여러 종류의 하당신을 모신다. 그리고 마을 입구는 대체적으로 서너 그루의 나무가 있든지 아니면 조그만 숲을 이루어 거리신들을 모셔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마을 입구를 숲거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2) 마을 입구
마을 입구는 신령의 보호를 받는 마을 안과 그렇지 않은 마을 밖을 연결하는 동시에 차단하는 장소가 된다. 문이 열리면 집 안과 집 밖의 세계가 연결되고, 문이 닫히면 두 세계가 단절되듯이 마을 입구도 그러하다. 문은 없지만 마음으로 문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마을 입구의 수구맥이 선돌을 '문돌' 또는 '문지기돌'이라 일컫는 데서 그러한 관념을 엿볼 수 있다.
대문이나 마을 입구는 두 개의 다른 세계, 곧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를 전제로 한다. 이들 다른 세계를 연결하고 차단하는 장소와 그 곳에 설치된 시설물은 대체로 종교적 의미를 강하게 띤다. 흔히 경계표시는 종교 숭배와 의례의 대상이 된다. 많은 민족지 자료들은 경계표가 하나의 원시 제단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서낭당은 한 마을과 마을을, 한 고을과 고을을 경계 짓는 고대적인 전통을 지닌 신앙대상물이다. 인간의 삶의 공간을 경계 짓는 실제적인 장치가 가장 간단하고 쉬운 돌무더기로 표현된 것이다. 경계표시로서의 역할이 강한 이 서낭당에서는 실제로 일정한 신앙 행위가 이루어진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비손을 하며 세 번 절하는 것은 물론, 왼발을 세 번 구르고, 침을 뱉으며, 지니고 있는 동전의 쇠붙이를 바치고 돌도 얹어 놓는 신앙행위를 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마을 입구는 聖所가 되고, 이곳에 여러 신앙물들이 설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곧 마을입구에 장승, 솟대, 수구막이 선돌, 탑 등을 모셔서 마을을 신령이 계신 장소로 가꾸는 동시에 마을 밖의 부정과 재액을 막는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마을 입구는 聖所가 되고, 이곳에 여러 신앙물들이 설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곧 마을입구에 장승, 솟대, 수구막이 선돌, 탑 등을 모셔서 마을을 신령이 계신 장소로 가꾸는 동시에 마을 밖의 부정과 재액을 막는다.
마을 입구의 거리신들은 단순한 수문장의 의미를 넘어서 마을 사람들의 정신세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예전에는 먼 길을 떠날 때나 오랜 타향 생활에서 돌아왔을 때 마을 입구의 거리신들에게 인사를 고했으며, 심지어 여기서는 옷매무새를 단정히 했다. 말을 타고 지나는 사람조차 이곳을 벗어날 때까지 내려서 걸어야할 만큼 신성과 권위가 있었고, 결혼 후에 새 신부가 마을로 들어올 때는 이곳에 북어, 술 떡 등을 진설하고 절을 하고서야 지나갈 수 있었다. 돌림병을 막으려고 디딜방아 뱅이를 하는 경우에도 아낙네들이 디딜방아를 훔쳐서 상대방의 마을 입구를 벗어나면 그 마을 사람들도 디딜방아의 반환을 요구하지 못했다.
또한 마을 입구는 외부의 재액이 들어오는 것도 막지만 마을의 재복이 흘러나가는 것도 저지한다. 또한 다른 마을의 질병이 우리 마을로 들어오는 것도 원치 않지만 우리 마을의 질병이 다른 마을로 퍼지는 것 또한 바라지 않는다. 따라서 수구를 막고 허한 방위를 보완하기 위해서도 마을 입구에 여러 거리신들이 세워지게 된다.
거리제에서 거리란 마을 입구를 뜻한다. 마을 입구는 마을 안의 '신성과 질서의 세계'와 마을 밖의 '부정과 무질서의 세계'가 경계 지어지며 동시에 접촉되는 공간이기에, 이러한 곳에 여러 신앙대상물들을 건립하여 마을 밖의 부정을 막으며 마을 안의 재복이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것도 막는다. 하당의 신들은 그것이 장승이든, 솟대이든, 또는 탑이나 선돌이든 모두 마을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관계를 맺고 있는 실질적인 하위의 신이다. 따라서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들 하당신들이 마을의 최고신인 산신보다도 더욱 친근하며 밀접한 신앙대상이 된다. 산신당에 부부신을 모시는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나 거리신은 원칙적으로 늘 한 쌍의 부부신으로 구성된다. 마을 입구에 남장승, 여장승이 마주보고 서 있고, 할아버지 탑과 할머니 탑이 역시 서로 마주 본다. 선돌 역시 때로는 서방 선돌과 각시 선돌이 따로 있다. 심지어 작은 마누라 선돌도 있고 아기 선돌도 있어서 하나의 가족을 이루기도 한다.
마을 입구가 마을의 내부와 외부를 차단하고 연결하는 대표적인 장소이지만, 한편 마을의 외곽 둘레도 경계선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물론 마을의 외곽 둘레가 울타리로 둘러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상의 경계선을 갖고 있다.
이렇게 대부분의 마을이 부근에 있는 주산에 산신당을 갖고 있고, 마을 입구에는 서낭당, 장승, 솟대, 탑, 선돌, 당수나무 가운데 두 세 가지씩을 세워놓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을은 성격을 달리하는 여러 신령들로 구성되는 종교적 성소임을 알 수 있다. 곧 마을을 종교적 측면에서 본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성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적 성소로서의 성격'은 일 년에 한두 번씩 치러지는 동제 기간에 더욱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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