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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문을 모두 닫아야 할 때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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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5월 03일(화) 09:20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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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희(대성중 교장)
글의 제목부터가 평생 동안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 온 나에게는 대단히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말이다. 아예 귀를 막고 듣고 싶지 않은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명제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서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전율한다. 그리고 교직자로서의 깊은 책임을 통감하기도 한다.
종래의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개념만으로 본다면 학교는 단순히 학생과 교사가 만나서 배우고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조금 더 개념을 확장해 본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 태어나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함으로서 사람끼리 서로 어울리고 부딪기며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해 나가는 곳일 뿐이다.
그러나 최근에 일본에서 대지진과 함께 발생한 쓰나미 현상만큼이나 강력하고 빠른 속도로 지구환경은 물론이고 인류의 정신적, 물질적 문화까지도 변화되어 가고 있다. 특히 급속도로 인간의 우수한 두뇌를 뒤쫓아 오거나 오히려 앞지르기 시작한 ‘컴퓨터’라는 괴물은 그동안 우리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기고만장해 있었던 문화의 영역까지를 깊숙이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작은 크기의 ‘스마트 폰’ 하나만을 손에 쥐면 언제 어디서든 무엇이나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지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그동안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었던 지식의 전수가 전자 환경의 체계로 이루어진 작고 편리한 기계를 통해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축적된 지식과 관련된 모든 물음에 대해 빠르고 완전하게 대답해 줄 수 있는 만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벌써부터 학교의 교실에서는 감각적으로 기계의 조작에 익숙해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 거꾸로 선생님이 묻고 배우는 현상들이 흔히 목격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해야 될 역할은 무엇일까? 학교는 왜 필요한 것일까? 굳이 힘들여가며 학교에 오지 않고도 나만의 작은 공부방에서 전 세계의 구석구석을 현미경처럼 살펴 볼 수도 있고, 우주 속의 지구나 지구 속의 나의 위치까지도 샅샅이 내려다 볼 수 있는 세상에서 과연 학교라는 존재의 필연성을 끝까지 무작정하고 고집할 수 있겠는가?
어차피 어떤 예상치 못한 일로 지구의 종말이 도래하지 않는 한 학교의 문은 머지않아 걸어 잠궈야 할 때가 온다. 다만 그 때를 좀 더 길게 연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뿐이다.
학교 문을 좀더 길게 열어 둘 수 있는 길은 컴퓨터의 치명적 결점이라 할 수 있는 창의적 발상과 감성적 발달이라는 오직 인간에게만 허용된 마지막 보물 상자를 빼앗기지 않고 끌어안는 방법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창조적 능력을 길러주고 무한대의 감성적 영역을 확장해 주는 교수기법을 개발해 나가는 길만이 좀 더 오랫동안 학교 안에서 학생을 머무르게 하고 아울러 선생님 자신의 생존의 의미를 지켜나갈 수 있는 일임을 깊이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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