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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간절한 구애를 어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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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6월 08일(수) 09:42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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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중 교장 강 헌 희
내가 한적한 시골 학교의 교장으로 첫 발령을 받아, 맨 처음 허름한 관사에 자리를 잡게 되었을 때부터 간간이 내 주변을 배회하면서, 동정을 구하는 눈빛이거나 아니면 구애를 청하는 간절한 눈길로 나와의 동거를 원하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아마도 먼 옛날의 조상시대에는, 부잣집 아랫목에서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매일 아침 세수하는 일마저 귀찮아하면서 눈곱도 제대로 떼지 않은 채, 주인댁 밥상에 오른 생선토막 하나씩 알지게 얻어먹던 전설 같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지만, 지금은 ‘도둑괭이’라는 비루한 신분의 노숙자로 전락하여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리며 문전걸식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요즘 서양에서 새로 입양되어 온 애완 강아지들의 비웃음을 받으면서, 동네 음식물 쓰레기 청소 당번으로 밥 벌어 먹는 녀석 중의 하나이리라.
그 녀석은 거의 매일 같이 내가 퇴근하는 시간을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나의 관사 현관 문 앞에 엎드려 있다가, 나를 보고는 슬그머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어디론가 사라져 가면서도, 은근히 자기를 다시 불러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몇 번이고 아쉬운 눈초리로 나를 향하여 뒤를 돌아다보곤 하였다.
나 또한 모처럼 가족을 떠나 있게 되다보니, 밤이 되면 고달프고 외로운 나그네처럼 쓸쓸한 마음이 가슴에 스며들어와 잠시, 그토록 애절해 보이는 고양이의 구애를 현관문 안쪽으로 살짝 받아들여 볼까하는 감성적 갈등을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불현듯 나의 이성적 판단 감각을 지배하는 대뇌 중추로부터 경고성 메시지가 들려와서 나의 뒷덜미를 차갑게 붙들어 주었다. 무릇 인간사회에서도 처음에 정붙이기는 쉬우나 나중에 정을 떼기란 쉽지 않으며, 지나친 친절은 그 말미에 아주 씁쓸한 배신감으로 은혜를 대신하는 일이 많다는 나의 경험적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의도적으로 고양이와의 눈길을 피하면서 애써 냉정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서도 서로를 사랑하기보다는 미워하는 일이 훨씬 고통스러운 일이듯이 끈기 있게 접근해 오는 고양이의 애정공세를 마냥 적대감으로만 대할 수도 없는 일이라서 몰래, 몰래 밖에다 버려둔 변기 뚜껑에다 먹다 남긴 음식물들을 올려놓는 방법으로 약간은 게름직한 마음의 부담을 덜어보려 하였지만, 노숙자 주제에 아직도 남아있는 자존심은 있었던지 마치 ‘날 지금 뭘로 보느냐?’는 방자한 태도로 나의 알량한 호의를 외면하곤 하였다.
요즘에는 드디어 요지부동한 나의 냉소적 태도에 화가 났는지, 야밤이 되면 가끔씩 현관 문짝을 요란스럽게 긁어대기도 하고, 어느 때는 시끄러울 정도로 야옹거리며 고함을 내 지르기도 한다. 어쩌다가 아침에 서로 마주치게 되면 아예 도망쳐 가려 하지도 않고, 빤히 내 얼굴을 노려보듯이 처다 보면서 야속해 하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끝까지 그 녀석과의 애정관계를 단호하게 피해 나갈 생각이다. 아무래도 머지않아 내가 그곳을 떠나야 하게 되었을 때, 어차피 함께 무덤까지 동행할 수도 없는 바에는 차라리 지금처럼 야멸차게 그 녀석의 일방적 접근을 거부해 버리는 것이, 뒷날의 내 마음을 정리하기에 한결 편할 거라는 나의 이기적인 판단에서이다. 미안하다. 야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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