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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걸으며 줍는 명상들

2011년 06월 21일(화) 09:44 [(주)고창신문]

 

산길을 걸으며 줍는 명상들
대성중 교장 강 헌 희

그동안 나 혼자서 마음속에 정해둔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마침 믿음직한 나의 동행자가 멀리에서 찾아와 주어서 더욱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거리로 치면 하루 종일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비로소 목적지에 이를 수 있는 먼 길이다. 이 날도 나의 타고 난 성격이라 할 수 있는 준비성 부족이 그대로 노출되고 말았다. 초행의 산길을 갈 때는 필연적으로 치밀한 사전 계획과 지형의 파악이 필요하다는 상식을 또 다시 간과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 잡다한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니 갈림길에서의 신중한 방향 선택을 잘못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무심코 평상시의 육감에만 의존하여 걷다가 결국에는 목적지에서 크게 벗어나 버린 사실을 뒤늦게야 깨닫게 된 것이다.
자, 이 대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의 방법으로는 임기응변력을 발휘하여 애초의 목적지를 바꾸어 버리는 방법이다. 이 경우에는 목표의식의 나약함을 비난 받을 수 있는 소지가 있다. 그러나 집착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추구해 나가는 편리한 방식이기도 하다. 둘째로는 방향이 잘못 잡혀진 곳으로 되돌아가 오류를 바로 잡아 일정의 차질이 있더라도 기어코 목표지점까지의 완주를 이루어 내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실패지점까지 투입된 에너지 소모에 대한 손실감을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고행 끝의 성취감을 얻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된다. 그때 나는 첫 번째 방법을, 친구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하였지만 결국에는 그 모두를 다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이미 지나온 갈림길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도중에 다시 되돌아오고 말았으니까.
나의 두 번째 실수는 또 있었다. 나이 먹으면서 갈수록 퇴화의 진행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건망증 또는 치매 증상 때문이었다. 물을 얻을 수 있는 마을에 들러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준비해 간 각종의 간이 취사도구 중에 정작 중요한 연료(가스)수단을 빠트려 버린 것이다. 시쳇말로 지쳐가는 육신을 감당하기 위한 오늘의 점심 한 끼는 모두가 도루묵이요 꽝이 되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 대목에서 서로 허탈한 웃음을 지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한 오류의 경험을 통해 완전을 구성하는 종속의 개체들은 저마다 필연적 존재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행히도 인근의 축산 농가에 가서 물을 얻으면서 저간의 딱한 사정을 허실삼아 말했더니 선뜻 보관해둔 연료를 꺼내주셨다. 나는 친구에게 “그것 보아라, 만사는 궁하면 통하지 아니하는 바가 없다”며 웃어주었다. 그러니 ‘매사의 인생 문제가 원하는 대로만 풀려 나가지 않는다고 미리 낙담하고, 막연하게 예측되는 미래의 걱정을 지금 당장의 현실로 앞당겨 가불해 올 필요는 없다’는 나의 낙천적 인생관을 함축하여 말해 준 것이다. 만약 우리 집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당신은 참 좋겠수. 그렇게 매사에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다보면 늙을 일도 없고, 죽을 일도 없으려니’하고 비아냥해 왔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오늘 하루도 자연 안에서 행복하였다. 자연은 우리가 걸었던 길 양 편에 상큼한 산딸기를 지천으로 메어 달아 놓고 반겨 주었고, 아직은 무명을 면치 못하는 산새들의 청아한 노래 소리를 들려주었으며, 가끔은 쉬어 갈만한 그늘 자리를 펴 놓고 무거운 두 다리를 쉬게 해 주었고, 계곡에 흐르는 시원하고 깨끗한 물은 잠시 피로를 씻어 줄 목욕물을 제공해 주기도 하였다.
비록 목표로 한 지점에 이르지 못하여 출발의 기대를 다 채우지는 못하였지만 몇 가지 나름의 의미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작고 소박한 산행 경험이었다.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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