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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을 통해 재 조명된 우리나라 석성의 역사와 가치 재발견 ⑦ - 수원시 '수원화성'

동서양 과학과 기술이 총결집된 동양성곽의 백미 수원화성

2011년 09월 06일(화) 14:40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탁 트인 가슴으로 우리의 역사를 살피고 느낀다’
이번 일정에 있어서 주된 목적을 표현해주는 문구이다. 역사는 과거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또 계속 진행되는 것이다. 부모와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즐거운 여행을 하듯이 문화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역사 공부의 충분한 보너스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그 즐거움에 각 답사지 곳곳에 배어 있는 역사적 사건, 인물, 풍습, 의식주, 생활실태, 문화 예술 등등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현장감까지 더하면 이보다 더 좋은 역사공부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사전 학습을 통해 목적의식을 가지고 각 답사지를 관찰하고 취재하면서 우리 역사를 느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답사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오는 것이 아니기에, 생산적인 답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답사지의 역사와 문화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 (주)고창신문


이러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이번 일정은 바로 정조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수원 화성이다. 올해 여름 내내 장마가 계속 되는 바람에 이번 답사에도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는데, 다행이도 우리의 답사를 맞이하는 것처럼 유난히도 잦았던 빗방울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따뜻한 기운이 그간의 축축함을 털어버리려는 듯 매우 화창한 날씨였다.
수원 화성은 세계가 격동의 신문명 개화시절, 쌀뒤주 속에 갇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사도세자의 아들로 태어난 정조가 자신의 아버지가 억울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곪아터진 정치판을 종식시키고,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해 의욕적으로 시작한 신도시 설계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바로 그 당시의 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한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에 위치하고 있는 화성은 정조가 그의 아버지 장헌세자에 대한 효심에서 화성으로 수도를 옮길 계획을 세우고, 정조 18년(1794)에 성을 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796년에 완성하였다. 실학자인 유형원과 정약용이 성을 설계하고, 거중기 등의 신기재를 이용하여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쌓았다. 또한 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 (주)고창신문


우리가 답사를 시작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고창읍내 전체를 둘러쌓을 수 있을 만큼의 그 웅장한 크기에 있었다. 화성은 서쪽으로는 팔달산을 끼고 동쪽으로는 낮은 구릉의 평지를 따라 쌓은 평산성인데, 총 면적 1,300,000㎡, 둘레 5,744m, 길이 5,520m, 높이 4.9∼6.2m 에 이를 정도로 그 규모가 매우 거대하다.

성벽은 서쪽의 팔달산 정상에서 길게 이어져 내려와 산세를 살려가며 쌓았는데 크게 타원을 그리면서 도시 중심부를 감싸는 형태를 띠고 있다. 성안의 부속시설물로는 화성행궁, 중포사, 내포사, 사직단들이 있었으나, 현재에는 행궁의 일부인 낙남헌만 남아있다. 특히 다른 성곽에서 찾아볼 수 없는 창룡문·장안문·화서문·팔달문의 4대문을 비롯한 각종 방어시설들과 돌과 벽돌을 섞어서 쌓은 점이 화성의 특징이라 하겠다.

처음 답사를 시작한 장안문(長安門)은 수원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큰 성문이자 그에 걸 맞는 품격을 갖추어 지어진 건축물이다. 이곳은 정조대왕의 원행 행차가 화성으로 처음 들어가게 되는 입구이기도 한데, 우진각지붕이 올려진 이층 누각에 빙 둘러쳐진 옹성과 문, 그리고 양쪽으로 우뚝 솟아 침략군에게 십자포화를 퍼부을 수 있도록 축조된 방어 시설인 적대가 있어 도시의 입구라기보다는 견고한 전투 요새의 입구를 연상하게 했다. 사실 수원 화성은 전체적으로 치밀하게 구성된 전투 요새이며, 기본 설계에서부터 근대의 전투 장비였던 총포를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고 한다. 푸른 하늘 아래 은은히 날개치듯 쳐드는 이층 처마의 곡선미와 색색 단청이 참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장안문 옆으로는 성벽에 구멍을 뚫어 차가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해 두었는데, 원래는 서울이 남대문처럼 로타리 형식으로 되어 있었으나 1차 성곽을 복원을 마치면서 이렇게 구성해 두었다고 한다. 장안문의 옆길로 들어가 화성 안으로 들어가면 팔달문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장안문에서 화성을 그대로 관통해 팔달문으로 빠져나가게 되어있는 국도를 따라가면 우측으로는 화서문, 좌측으로는 창룡문. 수원화성의 4대문들이 차례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우측에는 정조대왕의 최종 휴식처였던 화성 행궁이 있었고, 머지않아 팔달문이 나타나는데, 현재는 보수공사로 인해서 아쉽게도 그 웅장한 자취를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었다.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은, 화성에서 유일하게 성곽이 끊어진 상태로 복원되어 있지 않은 곳이다. 우리는 화성 행궁의 뒤편의 팔달산으로 올라가 수원 화성의 명물인 화성열차를 타기로 했다. 열차를 타고 도착한 연무대에서는 푸르른 잔디밭 위에서 국궁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연무대에서 나와 발걸음을 옮긴 암문은 안에서 보는 것과 밖에서 보는 것이 달랐다. 밖에서 보니 한층한층 쌓은 벽돌의 모양과 위치가 독특했다. 또한 약간 굽은 듯한 모양은 적이 잘 보지 못하도록 쌓았다고 한다. 북암문은 방화수류정 남측에 위치한 곳으로 안팎에서 보는 느낌이 너무나 새로웠다. 문의 좁은 폭에 비해 그 높이를 보니 신비할 정도로 위엄있고 비밀스럽고 아름다웠다. 화홍문에서 바라보는 수원천의 풍경이 맑고 평화로웠다.

포루는 참 특이한 모양과 위엄이 있었다. 4대 문을 지키고 선 남포루, 서포루, 북포루, 동북포루는 화성을 한눈에 보며 서로의 위치와 역할을 든든히 해낸 요충지였다. 또 화성을 답사하며 특별했던 것은 화성이 수원 시내에 둘러있어서 포루, 장안문, 팔달문, 창룡문을 지나며 조선시대의 건축 역사와 보존, 시설의 가치를 면면이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화성은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어 동양 성곽의 백미로 평가 받는다고 한다. 축성 당시 원형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수원 화성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선왕 영조에 의해 뒤주 속에서 불운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풍수지리학상 명당 자리인 화산으로 이전하고 그 부근 주민들을 팔달산 아래 현재 수원으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또한 화성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그 필요를 절감한 수도 서울의 남쪽 방어기지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당쟁이 극심했던 정세를 쇄신하고 강력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는 정조 자신의 원대한 구상을 위한 새로운 개념의 계획적 신도시로 건설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극진한 효심을 기반으로 군사, 정치, 행정적 목적까지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화성의 건설에 당대 동서양의 과학과 기술의 성과가 총결집되었고, 단원 김홍도를 비롯한 예술가들, 번암 채제공과 실학의 거두 정약용을 포함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참여했다.

성벽의 외측을 쌓되 내측은 자연의 지세를 이용해 흙을 돋우어 메우는 외축내탁의 축성술, 실학사상의 영향을 받아 화강석과 벽돌을 함께 축성의 재료로 사용한 전석교축, 목재와 벽돌의 조화로운 사용, 거중기·활차(滑車)·녹로 등 근대적 기기의 발명과 사용 등 기능성과 과학성, 예술적인 아름다움까지 모두 갖추고 있어 조선 시대 절정의 문화적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축성의 전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화성성역의궤」에 따라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홍수 등을 거치며 일부 파손되고 손실된 부분을 복원한 화성은 거의 6km에 달하는 육중한 성벽을 따라 마흔 개 이상의 시설물을 갖추고 있다.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팔달문(八達門)과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인 장안문(長安門)을 포함한 4대문, 화성행궁의 중심이자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연을 치르기도 했던 봉수당(奉壽堂), 두 번이나 방화로 소실되었다 복원된 서장대(西將臺), 남북으로 흐르는 수원천의 범람을 막아주는 동시에 방어적 기능까지 갖춘 북수문인 화홍문(華虹門), 망루와 포루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독특한 시설물인 공심돈(空心墩), 군사적 목적의 이름으로는 동북각루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건물인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자체 방어시설까지 갖춘 봉수대인 봉돈, 샛문인 암문 등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고창신문 기획취재팀
※ 본 기획물은 지역신문 발전위원회의 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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