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강원도 강릉향교, 평창향교, 영월향교
|
|
편안함과 깊이로 우리에게 느림의 지혜를 전해주는 향교
|
|
2011년 12월 01일(목) 14:41 [(주)고창신문] 
|
|
|
| 
| | ⓒ (주)고창신문 | | 강릉시 강릉향교(江陵鄕校)
지 정 - 지방유형문화재 제99호 (1985. 1. 17. 지정)
대 성 전 : 보물 제214호(1963. 1. 21 지정)
위 치 - 강릉시 교동 233
전통은 현대의 뿌리가 되고 현대는 전통의 꽃이 되듯, 강릉 향교는 명륜고등학교의 교문 안에 있고, 명륜고등학교는 강릉향교의 홍살문 안에 있다. 조선시대 하마비가 말을 모았듯, 명륜고등학교 교문 앞 하마비는 자동차를 모아 가지런히 줄 세워 두었다. 여인의 어깨처럼 둥글고 곱상하게 새겨진 “江陵鄕校” 라는 글자를 품에 안고 우뚝 선 푯돌과 눈인사를 하고나면 위엄있게 서있는 홍살문이 보이고 이어서 명륜고등학교의 교문이 손님을 맞는다.
안내판은, 강릉향교가 고려 충선왕(忠宣王) 5년(1313)에 현재의 자리인 화부산(花浮山) 아래 처음 세워진 후 조선 태종 11년(1411)에 불에 타버렸던 것을 태종 13년(1413)에 다시 지었고, 인조(재위 1623 - 1649) 때 크게 늘려지어 웅장한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는 사실을 서두로 향교의 구조와 특징에 대해 이야기한다. 안내글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이 자리에 강릉향교가 터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1909년에 화산학교가 설립되었고 그 후 강릉농업학교 등을 거쳐 오늘날 명륜고등학교가 자리잡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교문을 지나면 운동장 너머로 동쪽을 향해 서있는 교사(校舍)가 보이고 명륜고등학교의 본관과 직각을 이루며 오른편으로 향교가 위치해 있다.
운동장 오른편으로 나지막한 돌담이 이어지고 돌담 위로 전면 열 한 칸의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명륜당이 솟아있다. 명륜당은 이층 누각 형식으로 아래층은 벽을 쌓지 않아 통로로 이용하도록 하였다.
외삼문은 길게 늘어진 담장의 길이에 맞게 적당한 간격으로 배치되었다. 동문으로 들어서면 강릉 시장 최승호가 세웠다는 글과 함께 예서체의 “행단(杏亶)”이 눈에 띈다. 행단은 학문을 닦는 곳을 의미하는데,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 단을 놓고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하며 이는 향교마다 심어진 은행나무에서도 알 수 있다.
나주, 장수향교와 더불어 3대 향교로 알려질 만큼 강릉향교는 지방향교로는 그 규모가 웅장한 편이고, 한국전쟁 때에도 건물이 불타지 않아 옛 규모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향교로서 규율이 엄격하고 면학 분위기가 높아 대무관(大廡官)이라는 칭호를 받았다고 한다. 특히, 대성전은 예술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명륜당은 회랑이 있는 개방형 형태로 막돌주초에 글겅이질을 한 둥근 맞흘림 기둥이 맞배지붕을 받들고 그 뒤편으로 전면 5칸 측면 2칸의 폐쇄형 구조에 맞배지붕을 이고 있는 동재와 서재가 마주보며 서있다. 내삼문은 전랑과 연결되어 있다. “진학문(進學門)”이라고 현판이 붙어있는 동쪽문을 지나면 경건한 차림새의 배흘림 둥근 기둥이 자연석을 딛고 균형있게 짜인 공포를 받들고 서있는 대성전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개방형 구조로 세워진 전면 다섯칸의 대성전은 보물로 지정된 건물답게 우아하고 기품있는 건물이다. 맞배지붕은 간결한 세련미로 넘치고 기교를 부린 공포는 아기자기하고 아름답다.
좌우 양편으로 사열하듯 동무와 서무가 배치되어 있는데, 동무와 서무 또한 여느 향교보다 규모가 크다. 전면 다섯칸 측면 두칸의 동무와 서무는 폐쇄형의 둥근 기둥이 막돌주초를 지탱하여 맞배지붕를 받들었다. 규모가 큰 만큼 모신 위패도 많다.
대성전에는 중앙에 정위(正位)로 모셔진 공자의 위패를 중심으로 사성의 위패가 두 분씩 양쪽으로 모셔진 배향위(配享位)로 배치되어 있고 우리나라 18현을 비롯하여 공문십철과 송조육현의 위패가 종향(從享)으로 봉안되어 배위 양식은 다른 향교와 다를 바가 없으나, 보통의 향교가 20여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데 비해 이 곳은 대성전에 오성과 공문십철, 송조 육현을 모셨고, 동무와 서무에는 설총, 최치원을 비롯한 우리나라 18현을 비롯하여 115위 등 모두 136위를 봉안하고 있어서 모시고 있는 위패의 숫자에 있어서 압도적이며 중국사람들도 와서 보고 놀랐다는 장의의 설명이 이어졌다.
1949년 우리나라 유도(儒道)회에서는 우리 문묘에 중국의 10철 72현 22현까지 봉안하는 것은 사대사상의 표현이라 하여 공자와 4성 송조2현(정호, 주희)외의 위패는 없애고 우리나라 18현을 대성전에 함께 배향하도록 하였다가 1961년 다시 10철 송조4현을 복위시킨 바 있다. 대부분의 향교가 이를 따라 봉안된 위패 수를 줄였지만, 강릉 향교는 드물게 근대이전의 전통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경사지 건축으로 세워진 향교가 그렇듯 화부산 아래 경사진 곳에 위치한 강릉향교도 전학후묘, 전당후재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부속건물로는 향교 동편으로 교직사인 ‘천운정사(天雲精舍)’와 제기고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고, 향교 서편으로는 제기용품과 제물을 보관하는 전사청과 제방이 있다.
| 
| | ⓒ (주)고창신문 | |
평창군 평창향교 (平昌鄕校)
지 정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1호 (1985. 1. 17 지정)
위 치 - 강원 평창군 평창읍 하리 204
완만한 언덕바지에 넉넉한 품으로 자리잡은 평창향교는 홍살문을 앞세워 위엄을 세우고 ‘예절의 전당, 평창향교’라는 푯돌로 문패를 삼았다. 경사로를 따라 편안하고 나지막하게 놓인 층계 위로 2층의 누각 형식으로 세워진 외삼문 팔작지붕 아래 ‘풍화루’ 가 보인다. ‘풍화’는 ‘풍속을 교화한다’는 뜻으로 인간의 삶을 비롯한 모든 만물과 풍속을 교화하여 도덕적 이상사회를 이루고자 했던 성리학적 이상을 담고있다.
풍화루를 지나면 오른쪽 옆으로 명륜당이 보이는데, 명륜당은 전면 4칸 측면 3칸의 소박한 건물로 팔작지붕 아래 폐쇄형 구조이다. 정면 4칸은 모두 같은 간격으로 2분합의 궁판이 있는 띠살문을 두었다. 궁판은 창호에 품격을 끌어올림과 동시에 좋지 않은 기운들을 막아보고자 하는 벽사(辟邪)의 뜻을 가지고 있어 조상들의 미의식과 지혜를 느낄 수 있다. ‘명륜당’이라는 현판은 남쪽에서 두 번째 칸 문 위에 옹색하게 걸려있어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듯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애초 명륜당이 아닌 곳에 명륜당이라는 현판을 에멜무지로 붙여놓은 것은 아닐까? 풍화루 왼편으로 풍화루와 나란히 서 있는 건물은 현판이 없어서 ‘교직사인가?’ 하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명륜당과 직각을 이루며 풍화루를 마주보는 자리에 있는 내삼문을 지나면 8단의 층계 위 개방형 구조에 당당해 보이는 배흘림 둥근 기둥이 자연석 주초를 딛고 맞배지붕을 받든 대성전이 보인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반의 아담한 규모인데, 중앙칸이 좌우칸에 비하여 좁다. 그 이유는 중앙칸에는 2분합(分閤)의 궁판이 있는 띠살문만 있는데 비해 좌우칸에는 중앙쪽으로 띠살문을 두고 바깥쪽으로는 징두리 머름 위로 겹친 넉살무늬의 광창을 설치하였다. 이러한 광창은 다른 향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으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층계 아래 좌우로는 전면 2칸 측면 1칸의 폐쇄형 구조의 둥근 기둥에 맞배지붕을 얹은 소박한 동무와 서무가 마주보고 서있는데, 파랗게 칠한 문틀이 생소하다. 향교의 문틀은 공포의 색깔과 같은 옥색이 일반적인데, 개성있는 색으로 기억에 남고 싶었을까?
평창향교는 효종 9년(1658)에 세워져 그 후 몇 차례 중수하였고, 한국전쟁으로 인해 건물의 일부가 파손되어 여러 차례 보수했으며 1977년에는 명륜당, 1986년에는 대성전을 해체하여 복원하였다.
배치형태는 일반적인 전학후묘의 형태이지만, 명륜당과 대성전이 나란히 남쪽을 향하고 있는 다른 향교와는 달리 명륜당이 대성전과 직각을 이루며 서쪽을 향하여 배치되어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 
| | ⓒ (주)고창신문 | |
영월군 영월향교 (寧越鄕校)
지 정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0호(1985. 1. 17 지정)
위 치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2리 892
영월은 수려한 산세로 우리 눈과 마음을 정화시켜주지만 한편으로는 누구에게나 애잔한 통증을 주는 고장일 것이다. 단종과 김삿갓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유적지가 있기 때문이다.
영월향교는 태조 7년(1398)전에 세워져 한국전쟁 때 모든 건물이 불에 탔지만 대성전은 피해를 입지 않아 그 후 몇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날에도 당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태극 문양이 선명한 외삼문은 이층 누대 형식으로 궁판에 안상모양의 풍혈을 만들어 기교를 더했고 팔작지붕 아래 ‘풍화루’ 현판이 걸려있다.
외삼문을 왼편으로 돌면 교직사의 문이 향교로 통한다. 지금은 교직사가 관리인의 살림집인듯 연탄보일러 소리가 정적을 깬다. 교직사와 나란히 앞에 선 건물 모퉁이를 돌면 명륜당과 동, 서재가 감싸고 있는 마당으로 들어서게 된다.
명륜당은 날개를 펼친 팔작지붕 아래 전면 5칸 측면 2칸의 건물이 폐쇄형으로 지어졌는데 중앙의 세칸은 궁판이 있는 4분합의 띠살문이고 좌우 두 칸은 궁판이 없는 2분합의 띠살문이다. 건물의 중앙에 강의가 이루어졌던 대청을 두고 양쪽에 교관이 거처로 쓰던 온돌방으로 이루어진 형태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중앙 세칸의 띠살문 궁판에는 안상 안에 연화가 그려져 보는 즐거움을 준다.
좌우의 동재와 서재는 전면 3칸 측면 1칸의 폐쇄형 건물로 덤벙주초 위 사각 기둥이 맞배지붕을 받들고 있다. 동쪽 두 칸은 궁판이 있는 이분합의 띠살문이 있으나 서쪽의 한 칸은 대청의 형태로 문이 없는 구조가 다른 향교와는 다른 특징이다.
명륜당 뒤편에 있는 내삼문에 들어서자 좌우로 동무와 서무를 거느리고 5단의 층계 위 대성전이 우리를 맞는다.
자연석 주초위에 여섯 개의 맞흘림 기둥이 맞배지붕을 받들고 있는 대성전은 전면 5칸 측면 2칸의 개방형 구조로 중앙 3칸은 궁판이 있는 2분합의 띠살문이며 양쪽 2칸은 단일창호로 궁판이 있는 띠살문이다. 모든 창호의 궁판에는 안상이 없이 태극문양을 넣어 화려함을 더했다.
동무와 서무는 전면 3칸 측면 1칸의 폐쇄형 구조로 둥근 기둥에 맞배지붕이며 궁판이 있는 띠살문이나 궁판 안에 문양은 없다.
경사지가 아닌 평지에 있는 전주향교와 나주향교는 대성전을 앞에 둔 전묘후학의 구조인데, 영월향교는 평지 건축임에도 불구하고 명륜당이 앞에 있는 전학후묘로 배치되어 있고, 동재와 서재가 명륜당 앞에 있는 전재후당의 형태로 이루어져있다.
대성전 안에는 공자를 비롯한 다섯 분의 중국 성현들을 봉안하고 있고 좌우에 최치원(崔致遠), 설총(薛聰)을 비롯한 우리나라 선현 20인의 위패를 각각 모시고 있다.
햇빛과 비와 바람의 세월에 닳아지고 갈라진 채색과 목재지만 세월을 오래 견딘 것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과 깊이로 우리에게 느림의 지혜를 전해주는 향교는 이제 고적함을 달래주었던 화려한 은행잎도 떠나보낸 채 그 자리에 미동도 하지 않고 서서 겨울을 맞을 것이다. 추워져야 고와지는 나무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묵직하게 자리를 지켜주는 것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기에 삶은 견딜 만 한 것일 것이다.
|
|
|
|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 Copyrights ⓒ(주)고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주)고창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