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6-04-22 | 05:53 오후

로그인 회원가입 기자방 원격

    정치/지방자치 사회 교육 문화/생활 지역소식/정보 고창광장 독자위원회 전북도정 기타

 

전체기사

커뮤니티

독자투고

공지사항

개업 이전

편집회의실

뉴스 > 뉴스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충청북도 옥천향교, 단양향교

내삼문으로 연결된 세 줄의 돌층계가 아름다운 옥천향교
막돌주초에 둥근 맞흘림 기둥이 팔작지붕을 받든 명륜당

2011년 12월 01일(목) 14:45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옥천군 옥천향교(沃川鄕校)

지 정 - 시도유형문화재 제97호 (1981. 12. 26. 지정)
대성전 - 충청북도문화재자료 제214호(1981. 12. 26. 지정)
위 치 - 충북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320

싸늘해진 공기에 입김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이른 아침. 가을 여행 떠나듯 설레는 마음을 안고 충청북도의 향교를 찾아 나선 길이다. ‘세계를 낭만화하라’, 신은 가을에게 그렇게 명령했을 것이다. 모든 산과 들에 펼쳐진 화포(畫布)위로 붉고 노란 유화물감이 번지기 시작하여 온 천지가 색채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듯하다. 신의 세숫물처럼 고여 있던 골짜기의 운해(雲海)는 출렁 파도치는가 싶더니 아래로 흘러 흘러 세상을 덮는다. 세상은 안개 이불 아래 다시 한 번 잠들어야 할 것만 같은데, 운해를 박차고 날아오른 백로 떼의 하얀 날개 짓에 놀랐는지 산봉우리 두 귀가 쫑긋 운해 위로 솟는다. 신의 붓끝이 스치듯이 한 줄기 구름이 스친 자리에는 소국이 연보라 점묘화처럼 피어오르고 위풍당당 침엽수림은 추울수록 어깨를 편다. 부지런한 농부는 새벽부터 새 땅을 일구어 가지런히 빗어내린 흑단 머릿결같은 검은 흙이 정갈하다.
옥천에 들어서니 정지용 시인의 생가와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있다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옥천향교를 찾아가는 길에 보석 하나 줍듯 정지용 시인의 생가와 문학관에 들르게 되었다.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가끔씩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던 노랫말의 배경이 정지용 시인의 고향마을 옥천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시인의 생가가 있는 마을 곳곳에는 식당과 찻집의 간판을 비롯하여 어디서든 시인의 싯귀를 읽을 수 있다.
시인의 시심으로 충만한 마음을 안고 한참 걷다보면 왼편으로 비석군이 보인다. 향교가 가까이 있다는 증거이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옆 골목 안으로 하마비와 홍살문이 서있고 저만치 향교가 보인다. 홍살문 앞에 하마비가 서 있지만, 조선시대 말에 해당하는 오늘날의 자동차는 아랑곳없이 하마비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주차되어 있다. 향교의 전경 사진을 담으려 할 때 가장 거슬리는 것이 바로 향교 앞에 바짝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다. 다행히 차 앞에 주인의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는 메모가 있으면 전화를 해서 부탁이라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맘에 드는 전경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경우가 참 많았다. 옥천향교도 예외없이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 때문에 하마비와 홍살문을 앞세운 향교의 전경을 깔끔하게 찍을 수가 없어서 유감스러웠다.
옥천향교는 충남의 진산향교처럼 길이 Y자 형태로 갈라지는 끝 지점에서 길을 내려다보듯 서 있었다. 전면에는 이층 누각 형식의 명륜당이 팔작지붕의 날개를 펼쳐 우리를 맞는다. 아래층에 나무로 대어진 살은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는 외삼문 기능을 겸하였다. 이층은 전면 다섯 칸이 폐쇄형 구조에 모두 판문으로 닫혀있어 한 공간인 것처럼 보이나, 명륜당의 뒤편에서 보면 다른 향교의 명륜당처럼 중앙의 세 칸은 강학을 하던 공간이고 좌우 측면 두 칸은 교관의 거처로 쓰인 듯 이분합 띠살문으로 출입문을 삼았고 루(樓) 아래 아궁이를 붙여 온돌로 보온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명륜당 전면에서 명륜당을 왼쪽에 두고 길을 따라 오르면 교직사가 있는데 교직사의 옆문이 명륜당의 뒤뜰로 통한다. 명륜당 뒤 쪽 뜰은 명륜당 이층과 높이가 얼추 비슷하여 명륜당과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동재와 서재는 눈에 띄지 않고 명륜당 뒤편 왼쪽으로 전면 네 칸 측면 세 칸의 팔작지붕을 얹은 동향(東向)의 건물이 보인다. ‘홍도당(弘道堂)’이라는 현판이 붙은 이 건물이 아마도 옥천향교의 동재와 서재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홍도당은 남쪽으로 세 칸의 공간 앞에 마루를 두었는데, 중앙 두 칸은 머름 위에 이분합 띠살문으로 출입문을 삼았고 남쪽으로 한 칸은 머름이 없는 삼분합의 띠살문이다. 북쪽으로 한 칸은 마루가 없이 동향과 남향으로 모두 출입문이 나있다.
잔디로 덮인 명륜당의 뒤뜰에서 보면 열한 칸의 돌계단 위로 내삼문이 보이는데, 세 줄의 돌층계가 잔디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각각 분리된 세 개의 태극을 안은 내삼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곳이 옥천향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소박하게 놓인 돌계단 사이로 잔디가 두둑하게 덮이고 아담한 문 가운데 태극문양이 화려하여 아기자기하게 조화롭다.
내삼문 정면으로 배치된 대성전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개방형 구조로 자연석 주초위로 맞흘림 둥근 기둥이 겹처마의 맞배지붕을 받들었다. 출입문은 판문으로, 가운데 태극문양이 있으나 색채와 모양이 우아하거나 세련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대성전의 좌우 양쪽으로 대성전과 겹쳐진 부분에 전면 세 칸, 측면 한 칸의 개방형 구조로 동무와 서무가 배치되어 있다. 둥근 맞흘림 기둥 위로 맞배지붕을 올렸는데 건물 측면 맞배지붕의 사람인(人)자 아래 창방이 휘어있어 자연스러움과 일탈의 미를 느끼게 한다. 동무와 서무는 휘어진 측면 창방의 모습까지 닮아 쌍둥이 같다.
옥천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지은 후 임진왜란(1592)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다시 지었으며, 쓰이지 않아 황폐해진 모습을 1961년 복원하였고 1966년과 1974년 두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향교의 어느 곳에 보관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문화재청의 옥천향교 안내 자료에 의하면 『유안』·『청금록』·『선안』·『교안』 등 조선 후기 옥천지역의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많은 책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옥천향교는 경사지에 세워진 향교들이 그렇듯이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배치된 전학후묘의 형태이지만, 동재와 서재 대신 홍도당이 명륜당 뒤편에 있다는 점이 다른 향교와 다르다.

ⓒ (주)고창신문

단양군 단양향교 (丹陽鄕校)

지 정 - 시도유형문화재 제107호 (1981. 12. 26. 지정)
위 치 - 충북 단양군 단양읍 상방리 137-1

2차선 도로변 옆 기와를 얹은 돌담 사이에 홍살문이 이어지고 홍살문 바로 뒤로 이층 누각 위 맞배지붕 아래 ‘풍화루’ 현판이 보인다. 단양향교의 현판은 ‘풍화루’ 왼쪽 아래 세로로 붙어있다.
닫혀진 외삼문을 왼편으로 두고 돌담을 돌다보면 금방이라도 하얀 연기가 솔솔 피어오를 것만 같은 굴뚝 두 개가 정답게 돌담 위로 솟아있다. 곱게 유약을 발라 구워 반지르르 윤기가 흐르는 토기 굴뚝이 인상적이다. 돌담이 끝나는 지점 모퉁이에 교직사로 통하는 문은 잠겨있는데, 문 아래로 개 짖는 소리가 우렁우렁하다. 교직사에 누군가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대문 앞 직접 만들어 색칠한 듯 빨간 우체통에 친절하게도 관리인의 연락처가 적혀 있어 전화를 하였더니 예상과는 달리 20대의 총각이 달려 나와 친절하게 문을 열어주고 안내를 해 준다. 총각이 날마다 쓸고 닦고 하였을 향교는 정갈하였고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들이 그렇듯 온기가 있었다.
아래층을 벽으로 막지 않아 통로로 쓰고 있는 2층 누(樓)형식의 외삼문을 지나면 왼편으로 전면 세 칸 측면 두 칸 폐쇄형 구조의 명륜당이 보인다. 명륜당 앞마당은 평평한 돌을 깔아 품격 있게 보였다. 마당이 끝나는 곳 세 단 높이의 돌을 쌓은 토방을 토대삼아 막돌주초에 둥근 맞흘림 기둥이 팔작지붕을 이고 있는 명륜당은 정면 세 칸의 문이 모두 사분합의 궁판이 있는 띠살문이다. 궁판의 안상에는 연꽃이 화려하게 피어있다. 명륜당 토방의 왼편 모퉁이에는 윤기 나는 토기 굴뚝이 처마에 닿을 듯 비스듬히 세워져있어서 장작을 때는 아궁이의 온기가 전해지는 것 같다. 명륜당 뒤편 뜰과 통하는 대문 안으로는 제기고로 보이는 건물이 있는데 현판이 없어서 정확한 기능은 알 수 없었다.
외삼문 오른편으로는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에 마루가 놓인 팔작지붕의 건물이 명륜당을 마주보며 서 있다. 납도리 형식의 소박한 이 건물은 명륜당의 당당한 둥근 기둥에 비하면 가냘프게 보이는 네 개의 사각기둥을 의지하여 세 칸의 마루가 놓여있고 마루 안쪽으로 궁판이 없는 이분합의 띠살문 위로 ‘진덕재(進德齋)’와 ‘수업재(修業齋)’라는 현판이 걸려있어 이곳이 동재와 서재를 대신하는 건물임을 짐작하게 한다. 이 건물이 ㄴ자로 굽어져 교직사의 뜰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곳은 수업재 건물 옆 돌담으로 분리되어 따로 문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다. 돌담 위로 넘겨다 보니 교직사를 비롯한 건물이 마당을 빙 둘러 배치되어 있어 트인 네모꼴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기능들을 하는 건물인지 샅샅이 둘러보고 싶었지만, 살림집인 교직사가 있었고 우렁우렁 짖어대던 개의 모습이 어디선가 뛰쳐나올 것만 같아 차마 들어갈 수가 없었다.
풍화루의 일층 통로에서 이어지는 스물 한단의 돌계단은 명륜당의 좁은 앞마당으로 이어지고 다시 여덟 단의 돌계단이 태극 문양 선명한 내삼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내삼문으로 들어서면 몇 단의 돌계단 위로 잔디를 입힌 대성전의 앞마당이 펼쳐지고 대성전은 네모진 돌로 반듯하게 쌓인 돌 축대위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대성전은 잘 다듬어진 원통형 주초 위로 둥근 기둥이 겹처마의 맞배지붕을 받들고 있는 개방형 구조이다. 정면 세 칸에는 궁판이 있는 이분합의 정자살창이 네 개의 둥근 기둥 사이 중앙에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의 토방으로 연결된 양 측면에는 동무와 서무가 대성전과 겹쳐진 위치에 놓여있는데, 이 곳의 동무와 서무는 출입문이 살문인 여느 향교와는 달리 판문이다. 전면 세 칸 측면 한 칸의 폐쇄형 구조인 동무와 서무는 사각 기둥에 맞배지붕형식이다. 출입문이 있는 중앙칸을 중심으로 좌우 칸에는 징두리 위 옆으로 누인 띠살문 광창을 설치하여 답답함을 덜었다.
단양향교는 경사지 건축의 일반적 형식에 맞게 대성전이 뒤에 배치된 전학후묘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명륜당이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고 동재와 서재를 따로 분리하지 않은 점이 다른 향교와는 다른 점이었는데, 제대로 된 형식을 따르기엔 공간이 좁았을 것이다.
안내 자료에 따르면 단양향교는 태조 15년(1415)에 세워져 명종(재위 1545∼1567) 초기 이황이 군수로 있을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고, 영조(재위 1724∼1776) 때 두 차례 고쳤으며,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수리하여 지금의 모습을 지키고 있다.
단양향교를 깔끔하고 온기있게 돌보던 총각은 무슨 인연으로 향교에서 생활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젊은이가 향교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게 느껴져 단양향교를 기억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 Copyrights ⓒ(주)고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고창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제46회 장애인의 날 기념 장애인 인식개선 공연..

봄의 기억, 길 위에 남다 고창 청보리밭 축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고창군 예비후보자 현황..

과거를 품고 내일로, 신재효판소리박물관 재개관!..

회사소개 - 조직도 - 임직원 - 윤리강령 - 편집규약 - 광고문의 - 청소년보호정책 - 기자회원 약관 - 구독신청

 상호: (주)고창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404-81-20793 / 주소: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성산로48 (지적공사 옆) / 대표이사: 유석영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유석영
mail: gc6600@hanmail.net / Tel: 063-563-6600 / Fax : 063-564-8668
Copyright ⓒ (주)고창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