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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제주향교, 대정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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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3일(화) 14:12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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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향교
지 정 :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2호 (1971. 8. 26. 지정)
위 치 : 제주시 용담동 298번지
매번 제주 답사 때마다 바람 거칠 것 없었던 바다와 들판과 언덕은 12월이라는 계절이 무색하게 잔잔하고 따사로워 제주에는 봄꽃이 피고 있었다.
제주공항과 제주항 중간지점 4차선의 서문로 옆으로 기와를 얹은 낮은 돌담이 이어지는 곳에 솟을 삼문의 제주향교 외삼문이 나타난다.
세계 7대 경관으로 선정된 제주의 풍광에는 어느 곳에서든 조금은 빈 듯, 모자란 듯 하면서도 검은 무게감의 깊이가 느껴지는 현무암이 빠질 수 없는지라 제주의 향교 역시 붉은 단청과 검정의 조화가 이국적인 설레임을 자아낸다.
계단을 올라야 외삼문에 다다르는 다른 향교와는 달리 제주향교는 하마비를 왼쪽에 세운 외삼문을 지나 계단을 내려서야 향교의 뜰에 설 수 있다. 뜰 오른편 낮은 담장 너머에는 축구를 하는 제주중 학생들의 함성이 요란하여 사람 한 명 만나기 어려웠던 다른 향교와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외삼문 왼편으로는 팔작지붕 형식의 명륜당이 동향으로 서있다. 명륜당은 최근에 콘크리이트로 다시 지은 것으로 원래는 막돌기단에 전돌을 이용하여 뇌문을 넣은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한다. 지금은 처마 아래 칸마다 이분합 궁판 띠살문만이 다소곳이 서서 옛 한옥의 정취를 그리워하고 있는 듯 하다.
명륜당이라는 중앙의 큼직한 현판 왼편 칸 위에는 수선당이라는 작은 현판이 부끄러운 듯 처마 아래 몸을 숨기고 있어 한 건물에 두 가지 기능을 담았음을 알 수 있다.
대성전은 향교의 담장 안에 사방을 또 다른 담으로 둘러 독립적인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이 점이 제주도에 있는 세 향교의 독특한 공통점이었다.
다행히도 전교님을 만날 수 있어서 대성전을 보고 싶다는 우리의 요청에 친절하게 문을 열어주셨다. 대성전을 사방으로 두른 담에는 좌우로 협문이 있고 정면에 내삼문이 있어 동향으로 서 있는 대성전을 마주하고 있다. 전면 다섯 칸, 측면 네 칸의 대성전은 개방형 구조로 3단 돌기단 위에 당당히 서서 우리를 맞는다.
현무암 원뿔 장주초를 딛고 올라 선 맞흘림 두리기둥이 팔작지붕 아래 겹처마를 받들고 있다. 특이한 것은 네 偶柱(우주)와 후면 기둥 밖 2척거리에 세주를 더 세워서 외목도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중앙칸에는 사분합 궁판 띠살문이 중심을 잡고 양측에는 정자살창이 가로로 놓여 단조로움을 덜었다.
양쪽 가장자리 칸에는 이분합 궁판 띠살문이 있어 전체적으로는 삼문의 형태를 취하였다. 대성전에서는 공자를 위주로 공문 10철 송조6현 조선18현을 모시고 있으며, 매년 춘추 2회에 걸쳐서 석전제를 봉행한다.
대성전 담장 남쪽 밖으로는 몇백년의 세월을 간직한 비석에서부터 아직 광채도 걷히지 않은 현대적 비석에 이르기까지 50여개 가까운 비석이 대대손손 이어지는 가족처럼 세월의 흐름을 지키고 있다.
향교 언덕의 가장 높은 자리에는 다섯 성현의 아버지들의 위패를 모시는 계성사가 있는데 철종 5년(1854)에 지어진 건물로서 정면 5칸 측면4칸의 초익공집이다.
대성전처럼 사방에 현무암 담을 둘렀고, 전면에 솟을 삼문 형태의 내삼문이 있고 오른쪽 옆 북쪽에는 협문이 있다. 전면 다섯칸, 측면 네칸 개방형 구조로 이루어진 계성사는 현무암의 원뿔 장주초가 맞흘림 두리기둥을 받들고 있는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중앙칸에는 사분합 궁판 띠살문이 양 옆칸에는 이분합 궁판 띠살문이 열릴 날을 기다리는 듯 하다. 제향된 위패는 공자의 아버지인 제국공 공숙양흘, 안자의 아버지인 곡부후 안무요, 증자의 아버지인 래무후 증점, 자사의 아버지인 공 맹격의 위패이다.
계성사의 오른편 아래로는 맞배 지붕의 전사청이 있는데 전면 네 칸, 측면 두 칸의 건물로, 마루가 있는 두 칸이나 마루가 없는 양쪽 끝 칸 모두 판문으로 이루어져 이다. 왼편 아래쪽으로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공자상이 있어 발길을 이끈다. 공자상 아래로는 ‘행단’의 현판아래 팔각정이 세월이 시달리지 않은 새 모습으로 서 있다.
제주 향교는 조선 태조 원년(1392) 제주성내 교동에 창건된 이후 여러차례 옮겨 세워졌다가 순조27년(1827) 현 위치로 옮겨져 오늘에 이른고 한다. 일반적으로 향교의 배치는 평지인 경우, 전묘후학의 배치를 이루고, 경사지이면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는 것이 일반적이나, 제주향교는 잦은 이설과 주변 사정으로 본래의 모습이 많이 변형되어서인지 동재와 서재, 동무와 서무가 없고 명륜당과 대성전이 나란히 서서 동쪽을 향하고 있다.
대정향교
지 정 :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4호 (1971. 8. 26. 지정)
위 치 :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3126-1
추사 김정희 유배지 근처 넓은 들 가운데 예사롭지 않게 솟은 단산 아래 대정향교가 있다.
추사 유배지와 가까운지라 추사와의 인연이 많아 올레길이 아닌 유배길이 이 곳에서 시작된다. 유배길을 걷고자 한 사람들은 대정향교라는 예기치 않은 보물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대정향교의 문은 다른 향교의 문에 비하면 소박하기 그지 없다. 삿갓 깊숙이 눌러 쓴 듯 우진각 지붕 아래로 바짝 다가서면 그제서야 「대성문」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머리를 숙여야 들어갈 정도로 키가 작은 문은 옷깃을 여며 공수함으로써 겸손함을 배우라는 말없는 가르침이 아닐까?
대성문을 들어서면 지팡이를 의지한 팽나무가 세월을 버티며 서있고, 왼편으로는 콘크리트로 지은 의전당이 보이고. 의전당 뒤 뜰에는 비석군이 있다.
대성문에서 곧바로 들어가면 명륜당이 오른편으로 보이는데, 북향으로 놓여있어 동재와 서재를 사이에 두고 대성전과 마주보고 있는 남다른 구조로 배치되어 있다.
전면 다섯칸 측면 두칸의 명륜당은 궁판이 있는 이분합 정자살문이 있는 개방형 구조로 우진각 지붕을 이고 있다. 명륜당의 현판은 눈에 띄지 않는데, 동재라고 추측되는 건물에 「의문당」현판이 외롭게 걸려있다. 이 현판은 추사 유배 생활 당시 대정현 훈장이었던 강사공이 추사에게 부탁하여 추사의 글씨로 만들어진 현판이라고 한다.
비록 복사본이기는 최고의 품격을 갖춘 글씨로 인정받은 추사체를 마주하며 늘 의심하고 탐구하는 학문하는 사람의 자세를 표현한 ‘의문당’ 앞에 한참을 서있었다.
강사공은 그 당시 삼강오륜을 상징하는 소나무 세 그루와 팽나무 다섯 그루를 대성전 뜰에 심었는데, 거의 고사하고 말았다고 한다. 지금 살아있는 소나무와 팽나무가 그 당시에 심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정향교에는 아직도 열대우림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우람한 소나무와 팽나무가 남다른 정기로 향교를 지키고 있다.
동재와 서재는 명륜당과 마찬가지로 모두 우진각 지붕인데, 단청이 없어서 단조롭고 소박한 만큼 우직하고 강건한 느낌을 준다.
명륜당과 동재와 서재가 감싸고 있는 뜰에서 명륜당이 마주보는 자리에 5단의 현무암 돌계단이 있고 원뿔 장주초 위에 둥근 기둥이 우진각 지붕을 받들고 있는 내삼문이 보인다. 내삼문에 들어서면 7단의 현무암 돌 계단 위 기단을 놓고 맞흘림 두리 기둥이 팔작지붕을 받는 대성전을 만날 수 있다.
전면 다섯칸 측면 세 칸의 대성전은 중앙과 양 끝에 이분합 궁판 정자살문이 있고 중앙을 중심으로 양쪽에는 징두리 머름 위 누인 정자살 광창이 있어 출입문 세 개에 광창을 두 개 넣은 제주향교의 대성전과 같은 형태로 되어있다.
대성전에는 정위와 배향위로 오성과 송조 4현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안내에 의하면 1984년 4월 1일부터는 문명학원을 병설하여 운영하고 있고, 소장된 전적으로는 <대정향교절목> 등 18종 37권이 있는데, 유교경전의 집주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제주의 향교는 육지의 향교와 여러 면에서 다른 특징을 보이는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건물의 외벽을 현무암 벽으로 덧쌓았다는 점이다. 현무암으로 쌓은 둘레 벽의 폭도 1미터는 족히 넘어 길을 이루고 있다. 제주의 강한 바람을 견디기 위한 지혜였을 것이다.
제주의 낯선 풍토에 적응하지 못했던 추사가 제주의 혹독한 환경을 ‘독우, 독열, 독풍’이라고 표현했다 하니, 최고의 가문에서 뛰어난 학식과 예술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만심이 차있었던 추사에게 제주의 서쪽 끝자락 유난히 바람이 강했던 이곳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현재 경내에는 대성전을 비롯하여 명륜당과 동재 · 서재가 있고 문으로는 신삼문 · 대성문 · 동말문 · 동정문 등이 있으며, 제주에 있는 세 향교 중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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