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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향교, 통영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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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도시의 전형적인 굴곡진 지형과 갯내음이 물씬 느껴지는 통영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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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1일(수) 15:30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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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진주향교 | ⓒ (주)고창신문 | | 진주시 진주향교 (晉州鄕校)
지 정 - 경남유형문화재 제50호(1972. 2. 12)
위 치 -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 232-1
아침내 내리던 비 그치고 맑아진 하늘 흰구름 사이로 햇빛 따사롭지만, 냉기를 품은 바람은 겨울이 멀지 않았음을 준열하게 상기시켜 주려는 듯 하다. ‘진주’하면 촉성루, 논개, 남강 유등축제로 널리 알려져 보통 촉성루에서 남강을 내려다보는 여행코스 만으로 진주를 다 본 것처럼 여기기 십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진주향교를 찾는 이번 답사는 새로운 진주를 만난다는 설레임이 있었다.
산기슭에 높이 지어져 진주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진주향교는 가파르게 이어지는 층계를 세 차례 올라야한다.
홍살문에 이르기 위한 층계, 풍화루에 이르기 위한 층계, 내삼문에 이르기 위한 층계가 그것인데 그 중 내삼문에 이르기 위한 층계는 60여 단에 이르며 기울기가 심하여 절로 고개를 숙여지고 또한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다.
진주향교 부설 충효교육원과 관리사 사이로 난 층계를 올라 홍살문을 지나면 관리사옆으로 하마비와 비석군이 있고 위쪽 정면을 향해 안내판이 서있다.
안내문에 의하면 799년(신라 소성왕 원년)에 진주의 전신인 청주 거로현을 국학 학생들을 위한 녹읍으로 삼았다는 기록과 987년(고려 성종 6 )에 향학당을 창건하고 중앙에서 교수를 파견하였으며, 고려 말에는 사교(四敎)학당이 세워져 강민첨 장군이 그곳에서 공부하였고 1398년(태조 7)에는 공자를 모시는 문묘를 창건하고 성균관에서 교수를 파견하여 관학의 지위를 계승하였다고 한다.
층계 위에는 전면 세칸, 측면 두칸으로 이루어진 이층 루 형식의 풍화루가 누마루에 계자난간을 두르고 팔작지붕을 펼쳐 우리는 맞는다. 풍화루는 교육의 힘으로 풍습을 교화시킨다는 뜻으로 향교의 출입문이다.
경사지에 지어진 향교의 전형대로 전학후묘와 전재후당의 형태로 배치되어 있어 풍화루를 지나면 정면으로 명륜당이 보이고 양 옆에 동재와 서재가 있다.
명륜당은 전면 네칸, 측면 두칸의 마루가 있는 개방형 구조로 중앙 두 칸은 강학을 하던 대청마루 형식이고 양 측 칸에 방이 있어 교관의 숙소를 겸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양 측 방에서 대청으로 통하는 문은 사분합 궁판이 있는 띠살문으로 양 측 방에서 대청을 향한 문을 활짝 열어 그대로 한 공간의 교실로 이용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전면에서 보이는 양 측 방은 평란간 둔 이분합 띠살문으로 대청으로 향하는 문보다 폐쇄적인 느낌을 준다. 네 단 높이의 기단을 놓고 세워진 명륜당은 자연석 주추를 놓고 올라선 두리 기둥이 맞배지붕을 받들어 그 모습이 강직하면서도 깔끔하다.
동재와 서재는 전면 세칸, 측면 한 칸 반의 마루가 있는 개방형 구조로 맞배지붕 아래 이분합 띠살문이 정갈하다. 동 · 서재 모두 안쪽 두 칸은 마루 뒤로 방이 있고 남쪽 끝 한 칸은 폐쇄형인데, 동재는 끝 칸에 툇마루가 있고 띠살문에 궁판이 없는데 서재는 툇마루가 없고 세 개의 문에 모두 궁판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
명륜당과 나란히 서 있는 건물은 사교당(四敎堂). 문행충신(文行忠信)의 네가지 덕을 가르친 집으로 전면 네칸 측면 한 칸의 사방에 벽 없이 놓인 둥근 기둥이 맞배지붕을 받들고 있다.
명륜당과 사교당 사이로 60여 단의 층계는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지붕 솟을삼문의 내삼문으로 이어진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12단 층계위 대성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외 4성, 신라 2현, 송조 2현, 고려 2현, 조선 14현, 모두 25위를 봉안하여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문묘분향을 하고 매년 춘기와 추기 석전대제를 거행하고 있다.
대성전은 전면 세 칸의 개방형 구조로 자연석 주초위 네 개의 두리기둥이 팔작지붕을 받들고 있는데 사방으로 외목도리를 받든 네 개의 가는 기둥이 제주의 향교와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깊은 붉은 빛깔의 문은 이단의 궁판이 있는 이분합 정자살문으로 범접할 수 없는 정숙함이 느껴진다.
양 옆에 판이 있는 맞배지붕 형식의 동무와 서무는 전면 세칸의 폐쇄형 구조로 각 칸마다 궁판이 없는 띠살문이 야무지게 닫혀있다. 동무와 서무에는 우리나라 9현을 모셨었는데, 동무에 모시던 위패는 2005년 춘향(春享)에 대성전으로 모셨고, 서무에 모시던 위패는 2008년 춘향(春享)에 대성전으로 모셔졌다고 한다.
진주향교는 향교 산하에 충효교육원을 운영하면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전통예절교실, 선비반 교양강좌와 성인반 교육 뿐 아니라 경서반을 운영하여 논어, 소학, 대학 강좌도 계속되고 있어서 활기있는 전통의 힘을 느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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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통영향교 | ⓒ (주)고창신문 | | 통영향교(統營鄕校)
지 정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18호(1983. 8. 6)
위 치 - 경남 통영시 광도면 죽림리 945-2
항구도시의 전형적인 굴곡진 지형과 갯내음이 물씬 느껴지는 통영은 항상 반가운 악수를 청해오는 활달한 도시이다.
홍살문을 멀리 두고 서 있는 풍화루 앞 안내문에 따르면 통영향교는 1900년(광무 4)에 이 지역이 고성현에서 분리되어 진남군으로 독립하자 지역 유림들이 1901년 건립하였다. 죽림만을 통해 남해 바다가 잘 보이는 해안에 자리한 향교로서는 경남에서 유일한 곳이라고 한다. 향교의 방향도 일반적으로 남쪽을 향하는 간좌곤향(艮坐坤向)의 여느 향교와는 달리 동북 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향 역시 향교가 바다를 향할 수 있도록 한 배려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바다를 매립하여 그 옛날 향교에서 내려다보였을 바다 자리에 지금은 아파트 무리가 회색 구름을 이루고 있다.
통영향교의 건물 자재는 당포진, 삼천진, 남촌객사의 재목과 기와를 가져와서 건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풍화루는 정면 세칸 측면 두칸의 2층 누 형식으로 하부는 향교의 주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2층 누마루 둘레에 계자난간을 달았다. 둥근 기둥이 원뿔 형의 주초를 딛고 팔작지붕을 받들고 있는데, 전면 기둥과 활주의 주초는 장주초를 사용하여 차별화 시켰다. 지붕 4귀에 받쳐진 활주가 특이하다.
지붕 4귀에 받쳐진 활주는 풍화루 뿐 아니라 명륜당과 대성전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 세 건물은 용마루에 양상도회로 문양을 넣어 격조있는 장식을 했다는 점도 공통점으로 통영향교만의 특별함이었다.
외삼문을 지나면 제석산을 배경으로 명륜당의 팔작지붕이 지붕 네 귀에 활주를 달고 양 팔을 벌려 우리를 맞는다.
명륜당은 정면 다섯칸 측면 세칸의 폐쇄형 구조로 가운데 세 칸은 궁판이 있는 삼분합의 띠살문으로 전면을 개방할 수 있는 대청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양측 두 칸은 사분합 띠살문을 달았는데, 앞 툇마루 바닥을 높여 평란간을 달았다.
동재는 자연석 주초를 딛고 있는 둥근 기둥이 팔작지붕을 받친 전면 세칸의 건물인데, 마루 뒤로 물러앉은 머름 위 이분합 띠살문이 얌전하게 문고리를 모으고 있다. 대개의 경우 동재와 서재는 같은 칸 수와 구조로 지어져 있는데, 통영향교는 서재가 동재보다 한 칸이 많을 뿐 아니라 구조도 다르다. 서재는 정면 4칸의 팔작지붕으로 마루를 앞에 둔 머름 위 이분합 띠살문이 한 칸은 좀 크고 한 칸은 좀 작은데, 양 측칸은 대청으로 개방되어 있다. ‘한자서예교실’이 큼직하게 붙어있어 서재가 서예교실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솟을 삼문 형식의 내삼문에 들어서면 용마루에 문양이 선명한 대성전의 듬직한 맞배지붕이 먼저 눈에 띈다. 여섯 단 높이의 돌 기단을 쌓고 세워진 대성전은 정면 세칸 측면 두칸 반의 폐쇄형 구조로 지붕 4귀에 활주를 받쳐 팔작지붕의 구성방법을 맞배 지붕에 사용한 특이한 형식이다. 각 칸마다 넓은 궁판이 있는 사분합 띠살문이 중앙칸은 조금 넓게 양 측칸은 조금 좁게 균형을 맞춰 배치되어 질서 잡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동무와 서무는 정면 세칸 측면 한칸 반의 맞배지붕으로 활주을 받쳤고 전퇴를 개방하였으며 넓은 궁판이 있는 이분합 띠살문이 문고리를 모아 공손하게 서있다.
서무 옆에는 정면 두칸에 맞배지붕을 인 제기고가 이분합의 판문을 굳게 닫고 서 있다.
통영향교는 평지에 세워졌지만, 전학후묘와 전재후당의 직렬 배치인데, 대성전과 명륜당의 중심을 연결하는 중심측에 풍화루는 비틀어 배치하였다.
대성전은 오성위와 송조사현위를 봉안하였고, 동무와 서무에는 우리나라 18현이 각각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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