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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이가 임진이에게(남열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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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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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1월 17일(화) 13:17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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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이도종의 막이 끝나고 파사현정의 막으로 전환되는 시간에 생애 처음으로 수평선위로 솟아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경험을 하고자 아내와 함께 남해안의 어느 작은 해수욕장을 찾았다.
TV에서 애국가가 나오는 시간에 보았던 일출의 모습이 주는 감흥과는 사뭇 다르다기 보다는 비교해서는 안되는 장엄과 경건의 시간이었다.
갑진년에 태어난 나는 내 또래의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을 안고서 청년시절을 보낸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각자의 시공에서 가장으로, 조직의 일원으로 또는 이러 저러한 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세대가 되어 버렸으며 크고 작은 책임감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사회의 중추가 되어 있었다.
어쩌면 전환기라는 생각이들었고 남행을 결심하였다. 일상에서의 탈출이 아니라 일상에 대한 더욱 강한 책임과 그동안 지내온 삶에 대한 좌고우면의 이벤트였다. 갑진이가 임진이에게 기대하고 스스로 다짐하는 작은 몸짓이기도 하였다.
다짐 하나, 學而思(학이사)
임진의 해에는 더욱 열심히 배우고 고민하고 부대끼면서 살 것이다. 활자나 SNS, 그리고 동시대의 사람과 일어나는 일들로부터 배우고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주변에 영향력을 끼치고 영향을 받으며 살 것이다.
무엇보다도 고전을 통하여 배우고 익히는데 게을리 하지 않을 작정이다. 자 이젠 논어부터 시작이다.
다짐 둘. 周而不比(주이불비)
배움이든 이웃과의 사귐이든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편가름없이 두루 평평하고 넓게 하여 나의 생각과 행동에 부끄러움이 없게 할 것이다.이를 위하여 통찰의 지혜를 갈고 닦을 일이다. 洞察이면서 通察이어야 한다.
예리하고 치밀한 관찰력으로 사물과 사건을 꿰뚫어 보는 insight 이면서 시작과 끝을 훑어 두루 살펴보는 통람의 overview를 말한다. 통찰의 눈만이 사회 속에서 나의 역할과 책무에 대한 바른 진단과 처방이 가는 하기 때문이다.
다짐 셋. 上善若水(상선약수)
증류수에서 노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처럼 그렇게 살 일이다.
물에게서 겸손과 낮음, 하나됨을 배우며 실천하면서 살 일이다. 때론 노도가 되어 배를 뒤엎고 새로운 방향을 정하여 나아가야 하는 때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최고의 선은 물처럼 살아가면 되지 않겠는가.
직선이 아니어도 방향성을 잃지 않고 늘 낮은 곳으로 가지 않던가. 그 낮은 곳에도 또한 나와 같은 삶이 기다리고 있지 않겠는가. 그들을 배려하고 위하면서 살면 되지 않겠는가.
바람 하나, 恒産恒心 含哺鼓腹(항산상심 함포고복)
産이 있는 곳에 마음을 주는 것이 세상의 이치 아니었던가. 요순의 시대를 부러워만 할 일이 아니다. 오늘 보다는 더 많은 소출과 일자리가 있으면 된다.
불안과 불확실성이 높은 고용이 아닌 안정적이고 정규의 일자리가 더욱 늘어나길 바란다.
내가 내는 세금의 용처를 결정하고 집행할 때 맨 처음으로 마음에 새기면서 일해주길 소망해 본다.
시덥잖은 비정규직 열 개 보다는 제대로 된 일자리 하나가 낫다는 소리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콧노래건 흥얼거림이건 그치는 일이 있겠는가. 聞樂知政 觀舞知德(문악지정 관무지덕)이라 했다. 위정자들의 자화자찬의 노래가 아닌 시민의 노래와 흥얼거림을 듣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더 많은 일자리를 기대해 본다.
바람 둘, 動員(동원)에서 參與(참여)로
내가 아닌 다른사람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동원되는 시민이 아닌 스스로 결정하고 움직이며 영향력을 발휘하는 참여하는 시민의 시대가 되기를 바래본다.
임진이는 그 기회를 우리 모두에게 제공하고 있다. 기회는 준비하고 기다리는 이들에게 반드시 잡힐 것이다. 우리 모두 그 기회를 놓치지 말자. 모두 마중물이 되고 노둣돌이 될 일이다.
벌써 스무 다섯해 전의 일이다. 잔디 광장엔 잔잔하면서도 나의 마음을 강하게 당기는 목소리가 퍼지고 있었다. 지친 몸을 곧추세우고 맑은 영혼의 소리를 전달하는 이는 김근태 선생이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진관에 들러 침묵으로 기도해 본다.
민주주의라는 단어 앞에서 우리 모두는 김근태 선생께 빚진 자 들이었다.
시인 고은은 뼈 마디 마디로 진실의 자식이고자 한 사람이라며 노래했던 리영희 선생의 부재만큼 커다란 멍자욱이 왠지 오래 갈 것 같다.
갑진과 임진의 해가 다를 일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만이 그 구분을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간다.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임진이가 외친다 쫄지마! 쫄지마!
-고창에 사는 갑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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