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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향교(巨濟鄕校)

전학후문이면서 전재후당의 배치형태인 거제향교

2012년 01월 17일(화) 13:57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거제향교(巨濟鄕校)

지 정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6호 (1982. 8. 2)
위 치 - 경남 거제시 거제읍 서정리

원시의 본성을 드러내며 손 닿지 않는 거제대교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바다. 호위무사 거제대교의 등을 타고 무사히 바다를 건넌다. 거제는 그렇게 바다를 길들이고 있었다. 더구나 부산 거제 간 가거대교는 바다의 피부 아래까지 침매터널을 심어 바다를 무력화하고 있다. 1971년 4월에 준공한 길이740m, 폭 10m 규모의 거제대교에 이어 길이 940m, 폭 20m 규모의 제2의 거제대교가 1999년 4월 22일 개통하였고, 2010년 12월 국내 최초로 시도된 침매터널과 2주탑과 3주탑이 연속되는 사장교를 포함하여 왕복 4차로에 총 길이는 8.204km인 가거대교가 개통되었으니 비록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거제도이지만 이제 섬이라 이름붙이기 어려울 듯 하다.
거제도를 동쪽으로 머리 누인 문어에 비유한다면 거제향교는 문어의 머리가 끝나는 곳, 동남쪽으로 살짝 치우친 지점에 위치해 있다. 아파트로 이어지는 막다른 골목같은 옹색한 길을 돌아들면 의외로 넓은 공터를 앞에 두고 거제향교의 솟을 삼문이 서 있다. 단청을 한지 오래되지 않은 듯 색이 선명하다.
거제향교는 1432년(세종 14)에 고현에 건립되었던 것을 1664년(현종 5) 거제 동헌을 옮겨올 때 서정리로 함께 옮겨와 복원했다. 임진왜란 때 거제읍성이 함락되면서 성 밖에 있던 향교는 불탔기 때문에 그 이전의 향교의 사적에 대하여는 찾을 수 없다고 한다. 멀리 계룡산 자락을 배경으로 경사각를 거의 느낄 수 없는 지형에 건축된 향교이지만, 전학후묘이면서 전재후당의 배치 형태를 보이고 있어 경사지 건축 향교의 배치형태를 따르고 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시원스럽게 넓은 잔디 사이로 잘 놓여진 판돌길이 길을 안내한다. 외삼문에서 보면 오른쪽이 동재, 왼쪽이 서재인데, 동재 뒤쪽으로는 향교에 딸린 밭인 향교전이 제법 넓게 펼쳐져 있고, 우람한 은행 나무 아래 할머니 한 분이 지난 가을 떨어졌을 은행들을 줍고 계셨다. 동재 옆으로 교직사가 있고 교직사를 구분하는 돌담이 문묘부로 연결되는 나무 쪽문 앞까지 이어져 있다.
동재와 서재는 전면 세 칸, 측면 네 칸에 풍판이 있는 맞배지붕으로 전퇴를 둔 개방형 구조이다. 기단은 있는듯 없는듯 낮은 한 단이나 통풍구를 만들어 놓은 머름중방은 제법 높았고, 세 칸 모두 궁판이 있는 띠살문을 달았다. 동재의 세 칸은 각각 제기실, 제복실, 장서실이라는 표찰이 붙어 있어 각방의 기능을 설명해 주고 있다.
정면에 보이는 명륜당은 전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풍판이 있는 맞배지붕 집이다. 뒷면은 판문을 달아 중앙 세 칸이 대청일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전면에서 보면 중앙의 세 칸에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미닫이 문을 달았는데 원래의 모습은 아닌듯하여 잘못 어우러진 퓨전(fusion)처럼 왠지 어색하다. 양 측 칸에는 앞으로 좁은 마루를 놓았고 머름 위에 여닫이 문으로 띠살문이 서있다. 중앙의 세 칸도 고치지 않았다면 옛 모습의 분위기가 훨씬 살아있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있었다.
명륜당 뒤편으로 일주문 형식의 내삼문이 맞배지붕을 얹고 있다. 기둥 위로 하나씩 올린 익공식의 공포 사이로 도깨비 얼굴이 익살스럽게 웃고 있다. 장난기 가득한 미소 때문에 도깨비 얼굴은 무섭기는커녕 천진난만해 보인다. 2007년에는 도깨비 얼굴 상 세 개 중 두 개를 도둑맞은 적도 있다고 하니 경계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만들어 붙였을 도깨비 얼굴이 오히려 매력이 되었나보다.
문묘부에 들어서면 중앙에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와 서무가 양 옆에서 대성전을 호위하고 있는 가운데 동무와 서무 옆에 각각 부속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거제향교는 수차례의 도난사고로 문화재청이 집기와 장서를 별도 대형금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하니 그 건물들이 예전에는 제기고 혹은 경판고 등의 기능을 하였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거제향교에는 현종 11년인 1670년 주조한 청동제기, 용두향로, 주발탕기 등이 100점 가량 남아있다고 한다. 이 놋쇠제기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의 놋그릇 공출에도 유림들의 항거로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하니 섬세하고 우아한 형태가 문화재급 수준이라고 알려진 300여년이 넘은 놋쇠제기의 가치가 수차례 도난사고를 부르지 않았을까? 거제향교에는 제기 이외에도 400여 년간 교육용으로 활용된 《논어》《맹자》《소학》《시전》등 총 20여 종 150여 권의 고서적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대성전은 전면 다섯 칸, 측면 세 칸의 풍판이 있는 맞배지붕집이다. 한 단 높이의 자연석 기단 위에 널찍한 자연석 초석을 놓고 둥근 기둥을 올렸는데, 둥근 기둥 위에 주두를 놓고 익공을 짠 이익공양식이다. 중간에는 화반을 두어 화려한 문양이 돋보인다. 각 칸마다 두 짝의 여닫이로 구성된 정자살문이 3/2 넘는 궁판을 아래두고 서 있다. 정자살과 궁판의 비율이 짧은 저고리와 긴 치마로 이루어진 한복의 비율과 닮아서인지, 그 모습이 한복을 차려입은 다섯 여인들이 두 손을 모아 읍하고 서있는 듯 하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사성과 송조 2현, 신라조와 고려조 각 2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어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첫번째 정일(丁日)에 제를 올리는데, 거제시장이 초헌관이 되고 유림에서 아헌과 종헌을 맡는다고 한다.
동무와 서무는 전면 세 칸, 측면 한 칸, 풍판이 있는 맞배지붕 형식으로 한 단 높이의 자연석 기단 위 전퇴가 있는 개방형 구조이다. 각 칸에는 대성전과 마찬가지로 상단 삼분의 일 부분이 정자살로 되어 있는 창호가 두 짝 씩 설치되어 있다. 동무와 서무에는 우리나라 14현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우리나라 남단 거제까지 왔으니 향교만 보고 돌아가기엔 너무 아쉬움이 크다. 거제에는 이미 명소로 알려진 거제대교를 비롯하여 거제 해금강, 구조라해수욕장, 학동몽돌해수욕장, 구천계곡, 외도 등이 거제의 대표적인 명소로 꼽히며 그 이외에도 700리 긴 해안선에 60개의 부속 섬들이 빚어내는 비경들이 거제 33경을 엮어내니 시간이 허락하는 한 욕심껏 거제를 마음에 담아와도 좋을 것이다.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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