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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향교의 역사와 가치 재조명 12-순천향교(順天鄕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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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방을 띄우고 화반을 놓은 화려한 순천향교의 대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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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3월 09일(금) 13:46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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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교(順天鄕校)
창방을 띄우고 화반을 놓아 화려한 순천향교의 대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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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고창신문 | |
지 정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1985. 02. 25 지정)
위 치 - 전남 순천시 금곡동 182
“순천향교에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요?” 순천향교를 찾는 질문에 친절하신 중년의 아저씨는 자기를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셨다. 아저씨를 따라 한참 만에 찾은 곳은 『경현문(景賢門)』이라는 현판이 걸린 옥천서원이었다.
옥천서원은 무오사화로 순천에 유배되었다가 죽은 김굉필(金宏弼)의 학덕을 기려 명종 19년(1564)에 순천부사 이정이 지은 경현당이 시초가 되었는데, 그 후 선조 1년(1568)에 순천부사 김계의 상소로 전라도에서는 처음으로 옥천이라는 사액을 받아 호남 사림의 요람이 된 사학이다. 외삼문 격인 경현문을 앞세우고 기와를 올린 담장 안으로 강당인 집의당을 비롯하여 내삼문, 옥천사가 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서원 앞으로 옥천이 흐르고 주변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그 옛날 ‘임청대’라 이름 붙여진 풍광을 오늘날에도 잠시 느껴볼 만하다. 서원 옆에는 퇴계 이황의 글씨로 『임청대(臨淸臺)』라고 새긴 비석이 있는데 연산군4년(1498) 무오사화 때 이곳에 유배되어 귀양살이를 하던 김굉필과 조위가 이 근방의 계곡을 벗 삼아 소일하면서 이곳을 임청대라고 이름 지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순천향교는 옥천서원에서 한 사거리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향교의 뒷 담장에 접해있는 공마당길과 호남길로 이루어진 구역 안에 있는데, 향교를 앞쪽부터 차근차근 들어가려면 호남길에서 향교길로 이어지는 긴 골목을 걸어 들어가야 한다.
긴 골목 끝에 마중 나온 솟을삼문 형식의 외삼문은 공항에서 먼 나라로부터 이제 막 도착한 손님을 찾는 현지인 가이드의 어색한 글씨같은 현판을 오른쪽 가슴에 걸었다.
외삼문에서 이어지는 돌계단은 명륜당에 의해 가로막혀 있는데, 명륜당은 외삼문을 등진 채 북향으로 서서 동재와 서재를 바라보고 있다. 명륜당은 전면 일곱칸, 측면 두칸의 폐쇄형 구조인데, 거의 모든 명륜당이 그렇듯이 전면 일곱 칸 중 양 끝 두 칸은 교관의 거처로 쓰인 듯 남향으로 출입문이 나 있고, 중앙 다섯 칸은 동재와 서재를 향해 북향으로 출입문이 나 있다.
북향으로 난 다섯 칸의 출입문은 궁판이 있는 띠살문이 두 짝씩 쌍을 이룬 사분합문이지만 뒤편 남쪽으로는 중앙 다섯 칸이 모두 한 쌍의 판문으로 되어 있고 양 끝 두 칸 만 한 쌍의 띠살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붕은 풍판이 있는 맞배지붕 형식으로 자연석 주초 위 둥근 기둥이 겹처마 아래 익공식 공포를 이고 있다.
명륜당 서쪽 옆으로는 길게 늘어 선 비석들 옆으로 까치 집 두 개를 얹은 오랜 된 은행나무가 겨울 햇살에 몸을 맡긴 채 노곤하게 풀린 눈으로 향교를 내려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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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고창신문 | |
동재는 전면 다섯 칸, 측면 한 칸 반의 개방형 구조로 자연석 주초를 딛고 사각기둥이 풍판이 있는 맞배지붕을 받치고 있다. 출입문은 모두 마루를 앞에 두고 물러나 있는데, 중앙 두 칸은 여섯 짝으로 이루어진 미닫이 문이고 나머지 세 칸은 각각 한 쌍씩의 띠살문을 출입문으로 삼았다. 지금은 서예교실로 사용하고 있는 듯 ‘동재’ 현판은 보이지 않고 ‘서예교실’, ‘시조교실’ 등의 현판이 각 기둥마다 걸려 있다.
자연석 주초 위 사각기둥이 풍판 맞배지붕을 받치고 있는 서재는 동재에게 등을 보이며 ‘앞으로 나란히’를 하듯 서쪽을 향하고 있어서 서로 마주보자고 북향으로 뒤돌아 선 명륜당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서재는 동재와 명륜당에게 등을 돌리는 대신 밖으로 향하는 향교의 또 다른 문과 그 문을 마주하고 있는 풍화루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 문으로 들어 선 사람이 제일 먼저 보게 되는 것은 풍화루와 서재가 되는 셈이다.
서재는 전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으로 중앙의 두 칸은 대청 형식으로 되어 있고 양 끝으로 세 칸은 마루를 앞에 두고 한 쌍의 띠살문을 출입문으로 삼은 방이다. 동재 쪽에서 보면 중앙 두 칸은 판문이고 왼편 한 칸은 댓돌이 놓여지고 마루가 딸린 한 쌍의 띠살문이 있어 여름에는 시원하게 바람이 통하는 대청과 방이 연상되었다.
풍화루는 전면과 측면 모두 세 칸 씩 정사각형으로 올린 팔작집으로 원뿔 주초 위 둥근 기둥이 겹처마를 이고 있는데, 지붕의 네 귀퉁이는 팔각으로 다듬은 화강암 주초를 디딘 세주(細柱)가 받들고 있다. 1층은 석축으로 막아 창고로 사용하는 듯 나무 문 한 쌍이 열려있고 2층은 우물마루를 깐 바닥을 안상의 풍혈을 갖춘 계자난간이 둘러싸고 있다.
풍화루는 정작 외부로 난 향교의 문을 외면하고 교직사로 쓰였을 듯한 건물을 향하고 있는데, 다른 향교에서 볼 수 없었던 건물의 배치와 방향을 이해하기가 난감하였다. 향교의 외삼문은 명륜당의 뒷면을 향하고 있고 명륜당은 동재와 서재를, 서재는 향교의 다른 문을, 향교의 다른 문은 풍화루를, 풍화루는 교직사를 향해 서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모든 어수선함은 내삼문을 향해 오르는 돌계단에서 마무리 된다.
명륜당이 우러러 마주보는 위치에 놓인 대성전은 전면 다섯 칸 측면 세 칸의 개방형 구조로 전퇴간의 창방을 띄우고 화반을 놓아 화려하였다. 대성전은 둥글게 손질한 자연석 주초위로 우람한 두리기둥이 겹처마를 두른 풍판 맞배지붕을 받들고 있고, 전면 다섯 칸 모두 아래 절반 넘게 궁판을 둔 빗살문 한 쌍 씩을 달았다.
대성전 좌우로 동무와 서무의 현판이 보인다. 동무와 서무는 전면 세 칸 측면 한 칸 반의 개방형 구조로 풍판이 있는 맞배지붕을 얹었고 대성전과 마찬가지로 각 칸마다 윗부분 삼분의 일만 빗살이 놓인 한 쌍의 문을 달았다. 서무는 자연석 주초 위에 둥근 기둥을 놓았으나 동무는 원뿔형 화강암 주초 위에 둥근 기둥을 세운 점이 특이하였다.
순천향교는 태종 7년(1407)에 성동리에 세웠다가 1550년에 옮겼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순조 1년(1801)에 현재의 위치에 다시 지었다. 외삼문, 명륜당, 내삼문, 대성전을 남북축으로 하는 전학후묘의 형태를 갖추고 있어서 경사지 향교의 배치형태를 따르고 있고 전당후재이지만 명륜당이 북향으로 서 있는 드문 형식이다. 순천향교에 보관되어 있는 책은 조선 후기의 향교와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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