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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여,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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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강 헌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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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3월 09일(금) 14:04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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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학교 기말고사 한자시험에 다음과 같은 단답형 문제가 출제되었다. ‘우정이 매우 돈독하며 매우 친한 사이를 4자성어로 뭐라고 하는가?’ 아무리 걸레 짜듯이 머리를 쥐어 짜보아도 정답을 알 수 없었던 돌쇠란 놈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윽고 생각났다는 듯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답안지에 답을 적어 넣었다. ‘불알친구’.
예정된 정답(막역친구, 관포지교, 죽마고우 등)을 기대하였던 출제자는 자신의 출제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답안을 보고는 혀를 차며 별다른 고민도 없이 과감하게 가위표를 그어 오답 처리하였다. 내가 채점자라면 어떻게 하였을까?
나에게도 한 고을, 한 동네에서 막역지간으로 함께 자랐던 여러 명의 ‘불알친구’(글쎄, 여자 친구들끼리는 뭐라고 해야 하나?)들이 있다. 밥을 먹고 나면 함께 만나 학교 가는 일로 시작하여 뛰고, 놀고, 장난치고, 뒹굴고, 싸우고 토라졌다가 이내 화해하고, 천방지축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못된 짓 하다가 동네 어른께 혼찌검 당하고…. 그러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친 형제간보다도 더 진한 우정이 쌓이고 길러지면서, 윗 머리글에 소개된 문제의 정답에 이르게 되었으니 옛 시절, 죽마고우들과의 알뜰살뜰한 추억을 지니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처럼 조금은 엉뚱해 보이는 대답이라 하여 무작정 오답 처리되는 것이 좀 억울할 수도 있다.
어릴 적부터 기발한 창의력을 발휘하여 종종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던 내 친구가 또 다른 친구를 대상으로 소위 ‘우정 테스트’라는 실기시험을 치르게 하여 아주 혹독한 시련을 겪게 한 일이 있었다. 가까운 한 마을 내에서 함께 자랐던 친구들이 어느덧 성장하여 각기 다른 인생의 길을 가게 되었다. 그래서 문제를 제시한 친구는 육군 장교로 근무하고 있었고, 해답을 찾아야 하는 친구는 어느 궁벽한 섬마을의 초등학교 새내기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전방부대에서의 근무 환경이 답답하고 무료해진 친구가 문뜩 고향친구들이 몹시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기발한 꾀를 생각해 내었다. 평소에도 자신이 생각한 바를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특성이 강했던 그 친구는 우체국에 가서, 우선 섬마을 선생님 친구에게 한 통의 장난 전보를 띄웠다. ‘○○ 폭발사고로 위독, 급래 요망’. 송신자로는 자신의 형 이름을 적었다.
아직 초년 교사이다 보니 학생지도는 물론이고 온갖 교무 일에 눈·코 뜰 새도 없이 바빠 있었던 또 다른 친구는 친구의 위급을 알리는 전보를 받고 크게 당황하였다. 마침 내일이 졸업식 날이라서 그 준비로 인해 더욱 분주해 있던 차였다. 급한 사유를 듣게 된 교장 선생님께서는 ‘부모님도 아닌 친구라는데 졸업 행사나 마치고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며 만류하셨다. 그리고 해상의 불순한 기상 상태로 이미 여객선은 발이 묶여 있는지가 여러 날이었다. 선생 친구는 피투성이가 되어 병상의 고통을 견디고 있을 군인 친구가 눈앞에 어른거려 좀체 주어진 일을 평상시처럼 진행해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하던 일을 포기하고 교장선생님께는 “일단, 다녀와서 주어지는 모든 행정적인 불이익 처분을 감수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동네 주민이 겨우 주선해 준 조각배를 얻어 타고 독한 소주를 목구멍에 부어 마셔가며 풍랑의 바닷길을 밤새 헤쳐 나왔다. 참으로 죽어가는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가는 무모한 항해였던 것이다. 육지에 도착하여서는 장거리간 택시를 얻어 타고 친구의 근무지인 최전방 지역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그토록 어렵게 도착해서 알게 된 것은 그 모두가 친구의 과장된 장난 행위로 인한 ‘허위 사실’이라는 점이었다. 막상 죽어간다던 그 친구는 자신의 장난이 너무 지나쳤음을 뒤늦게 깨닫고는 “어젯밤 꿈에 친구가 나타나 크게 화를 내면서 ‘나를 죽여 버리겠다.’며 쫓아 다녔다.”면서 그 날 하숙집에는 정상 퇴근도 하지 않고, ‘비상근무’를 빌미로 부대에서 면회도 거절한 채 잠적해 버린 것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곧바로 뒤돌아 선 그 친구는 천신만고 끝에 다행히도 다음 날 졸업행사 직전에 학교에 도착하여 무사히 일을 마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덤으로 눈물겨운 친구간의 의리에 대하여 교장선생님께 높은 칭찬과 함께 술 한 잔의 포상을 받았다며 그 때의 일을 감명 깊게 회상해 주었다. 그래서 그 친구는 그 일로 무사히 ‘1급 우정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그 뒤에 나 또한 그 친구의 ‘우정 테스트 제2탄’에 걸려들었다. 어느 날 퇴근 무렵에 그 때는 군에서 전역하여 서울에 있는 대기업체 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던 앞의 친구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섬마을 선생님으로 근무하다가 인천에 있는 육지 학교로 나와 있었던 친구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병원 응급실로 실려 와 있는데 아무래도 생명 보존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꾸만 헛소리처럼 네 이름을 불러댄다는 것이다. 그러니 급히 다녀 가 주어야겠다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그런데 그 때 내 사정은 결혼 후 3년간 소식이 없다가 겨우 탄생의 축복을 얻게 될 큰 아이의 출산이 임박해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여졌다. 자, 이 때 나는 어느 길을 선택해야 옳은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내 아이의 탄생의 순간을 지켜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죽어 간다는 친구에게 달려가야 하는가? 나는 곧, 이제 태어 날 아이는 영원히 볼 수 있는 아이지만, 지금 죽어가는 친구는 어쩌면 마지막 보게 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멀리 서울에 있는 병원에까지 여러 시간을 걸려 달려가 보니 나에게 전화해 온 친구의 말처럼 이라면, 이미 사망 직전에 있어야 하는 또 다른 친구는 가벼운 병으로 입원하여 생생하게 눈을 뜨고 있었다. 얄궂은 친구 놈의 장난전화에 속은 것이 원망스럽기는 하였지만 대신에 나 또한 빛나는 ‘우정 자격증’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러나 친구를 위해 가족의 일을 등한히 하면서, 내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출산시간을 내가 친구에게 다녀 온 다음으로 미루어 달라’며, 마치 아이 낳는 일을 화장실에 가서 볼 일 끝내고 오는 일처럼 가볍게 부탁했던 말로 와전되어, 평생 동안 고개를 쳐들 수 없는 ‘우스개’소리가 되어 버렸고, 끝내, 아내 곁을 지켜주지 못하게 되어 짊어지게 된, 한 가정에서의 책임 있는 남편과 아빠로서의 ‘부적격’ 판정에 대한 죄책감은 평생을 두고 씻을 길이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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