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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음과 함께 한 고창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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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희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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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4월 26일(목) 13:19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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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고창신문 | |
내가 고창신문사와 연을 맺었던 나이가 23살 때였는데 올해 고창신문이 창간한지 23주년이 되었단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지난날이 문득 회상되어 옛 생각에 잠기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서울만 가면 뭐든 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던 철없던 그때, 여느 졸업생들처럼 취업전선에 뛰어들 요량으로 서울이란 낯선 곳으로 향했다.
허나 그곳에서 내가 고작 할 수 있었던 것은 취업포털사이트 수십 군데를 검색하며 이력서를 보내는 것뿐이었다. 어느 것 하나 당당히 내밀만한 스펙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얼굴로 밀어붙일 미모 또한 아니었으니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느는 건 한숨뿐이었다. 그렇게 축 쳐진 어깨로 취업준비생의 비애를 느끼고 있던 2005년 2월의 어느 날.
우연처럼 찾아온 필연이었을까. 고창신문사 기자직 제의가 들어왔다. 그러나 나와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던 분야인 탓에 깊이 염두 해 두질 않고 있었으나 며칠이 지나 또 한 번의 제의가 더 들어와 취업의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던 나로서는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한번쯤은 시도해 볼만한 기회였다. 그 당시 위치가 읍사무소 앞이란 말을 듣고 옛 기억을 더듬어 그렇게 찾아간 고창신문사. 무심코 발을 딛었던 그곳이 나의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 되었다.
처음엔 모든 게 낯설고 무섭고 두려웠다. 신문의 특성상 창작이라는 고뇌를 늘 안고 살아가야 하는 분야였기에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적응하는데 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고 그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나의 이런 고충을 잘 알고 계셨던 조창환 사장님과 조미환 이사님의 끊임없는 격려와 무한한 신뢰에 힘입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며 그렇게 내 젊음과 청춘을 그곳에 쏟아 부었다.
격주간으로 발행되던 신문은 순간으로 발행하게 되는 변화를 주었고 신문사 전체적으로도 아날로그 식에서 벗어나 디지털 시대에 걸 맞는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그 덕분인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우선지원대상사에도 3번이나 선정되는 등 나름 성과 있는 회사 생활을 해왔었다고 자부한다.
'아이에게 최초의 학교는 가정이고, 최고의 선생님은 부모'란 말이 있다. 사회초년생인 나에게 있어 고창신문사는 최초의 학교였다. 직장인들에게 상사는 불편하고 힘든 상대라고만 여겨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사장님과 이사님은 최고의 선생님이자 사회에서의 부모님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분은 5년 8개월 동안 내가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호통보다는 소통으로 항상 나와 교감을 나누었으며 비폭력대화법으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선보이시며 나를 이끌어 주셨다.
하여 고창신문사는 상하의 권위적인 조직이 아닌 수평적인 관계의 조직체로 그렇게 가족 아닌 가족으로 기쁜 일, 슬픈 일을 함께 나누는 관계가 되어 그곳을 떠난 지금도 그 관계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우리가 지금 맺고 있는 인간관계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정을 통해 인연이라는 끈을 이어가고 있다. 지역민과 출향인들도 마찬가지다. 고창신문을 통해서 고향의 소소한 소식을 접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그렇게 끊길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고창신문 창간 23주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고창군민의 정보 갈증을 해소해주고 지역의 밝은 미래를 선도하고 있는 고창신문.
앞으로도 고창신문이 우리 군민의 변함없는 사랑과 함께 지역주민의 애환을 담아내고 지역의 밝은 미래를 제시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이 이어지기를 충심으로 기원하며 창간 23주년이 되기까지 현장에서 애쓰고 계시는 그분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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