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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국보151호 세계문화유산 태조강헌대왕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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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조대왕 비와 얼자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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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9월 27일(목) 12:10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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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internet)상에서 완풍대군(完豊大君)과 의안대군義安大君)은 비(婢)의 얼자(孽子)이다. 태조실록을 들추어 대고 지금도 아는체 하는 분 들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싶다. 설사 종녀의 서자라면 무엇이 어떻다는 것인지 묻고싶다. 역사적 사실을 똑바로 인식하고 현실을 보다 아름답게 살아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나 보다도 다른 사람을 위하는 착한 마음씨가 이 세상에서 바라고 있는 것이다.
조선왕조의 치명적인 누를 끼친 환조대왕의 비와 얼자의 추문에 피해자는 한 핏줄로 지금껏 말이 없이 600여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국보151호 세계문화유산 태조강헌대왕실록의 위록이 밝혀졌음에도 관계 부처에서는 사실을 모르는채 속 시원히 털어 놓지 못하고 있어 일부 몰지각한 소인배 들은 비와 얼자를 사실로 믿고 인터넷 상에서 폄하하고 있어 너무도 가슴 아픈 일로 사실을 밝혀 보고자 한다.
삼형제 이원계 완풍대군(李元桂 完豊大君) 이성계 태조대왕(李成桂 太祖大王) 이화 의안대군(李和 義安大君)의 아버지 이자춘 환조대왕(李子春 桓祖大王)은 어떻게 하여 하나도 아닌 비(婢:종여) 둘을 보아 얼자(孽子:서자) 이원계 완풍대군과 이화 의안대군을 출생하였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환조대왕의 아들 삼형제중 태조 이성계 만이 적실(嫡室) 소생이고 완풍대군(完豊大君 李元桂)과 의안대군(義安大君 李和)은 비(婢)의 얼자(孽子)라는 것이 사실인가?
이원계 이성계 이화의 삼형제는 세상에 없는 지극한 우애를 돈독(敦篤)히 하였다고 하는데도 비와 얼자의 이복형제라는 것이다. 비와 얼자란 가문의 추악한 망동으로 누구나 함부로 저지를 수 없는 치욕과 파산이라는 것인데 형제간에 우애가 어떻게 돈독할 수 있다는 말인가? 태조는 항시 가문을 잊지않고 임금이 되기전 1387년 우왕(禑王)13년 고려(高麗) 문신(文臣) 목은(牧隱) 이색(李穡)에게 부탁하여 아버지 환조대왕 신도비(神道碑)를 세웠는데 환조대왕은 세 번 장가들어 초취(初娶) 한산이씨로 장자 원계이고 재취(再娶) 최씨로 차자 성계이며 삼취(三娶) 김씨로 삼자 화를 출생하였다고 기록 하였다.
또한 임금이 된후 아버지 환조대왕 신도비(神道碑)를 다시 세웠는데 서기 1393년 (태조2년) 9월 18일 정총(鄭摠)이 지은 환조대왕 신도비문에 왕범삼취(王凡三娶)와 그 자손을 명기하였고 결말에 왕은 불선 (不善)한 내가 천록(天祿)을 받게 되었으니 이것은 조종(祖宗)이 경사(慶事)를 기른 힘에 말미암은 것이다 하시니 인후(仁厚)한 공성(公姓)은 본손(本孫) 지손(支孫) 들이 만세(萬世)까지 영구(永久)히 존속(存續)하겠습니다. 비석에 새겨서 후세의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라 하였다. 태조는 서기1408년 74세로 일생을 마쳤다.
후에 태종은 하륜 유관 정이오 변계량을 시켜 태조실록을 만들게 하였다. 서기 1410년 1월-1413년 3월에 끝 마쳤는데 일부 내용중 왕권 계승분쟁을 막아보자는 것으로 할아버지를 욕되게 하고 아버지 형제간에 우애를 없던 것으로 흉측하게 꾸민데는 태조강헌대왕실록 1책 제4권 1393년 태조2년 9월 18일로 게재된 정총이 지은 환조대왕신도비문에서 일부를 삭제하고 바꾸어 조작 기록하였다.
-정총이 지은 환조대왕 신도비문에서 일부 삭제된 내용
환왕께서 무릇 세 번 장가 들었으며 (王凡三娶)의비는 또 딸 한 사람을 낳았는데(懿妃又生一女)---. 이씨는 아들을 낳았으니 원계라고한다 전조에 벼슬하여 완산군에 봉작 되었다가 졸하였다.(李氏 生男曰 元桂 仕前朝封 完山君卒) 김씨 정안 옹주는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화라고 하며 의안백에 봉작되었다(金氏 定安翁主 生男曰 和 封義安伯)라는 기록을 삭제(削除)하고 거짓 기록으로 바꾸었다.
-환조대왕 신도비문 말미에 붙여 거짓으로 둔갑(遁甲)된 내용
한조대왕(태종 할아버지)에게 비의 얼자 두 사람이 있었으니 이원계는 비 내은장이 낳았고 이화는 비 고음가가 낳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손까지 기록하였다.
환조대왕(태종의 할아버지)의 초취와 삼취를 성도 이름도 다른 종녀(당시 종녀는 성도 이름도 없어 조작)로 비(婢) 내은장(內隱藏)과 비(婢)고음가(古音加)로 작당 들이 덤벼들어 하루 아침에 둔갑 시켰다.
완풍대군의 생모는 분명하게 한산 이씨가 아니던가 또한 의안대군의 생모는 정안김씨가 분명한대도 성도 이름도 다른 비 내은장(성은 내가 이름은 은장인가?)과 비 고음가(성은 고가 이름은 음가인가?)라니 소가 웃을 일이다. 지금도 무지한 소인배 들은 환조대왕(태종의 할아버지)의 비와 얼자가 확실한 것으로 믿고 계속 중얼거리고 있다.
이는 오직 국보 151호 세계문화유산 태조강헌대왕실록의 위록(僞錄)을 사실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실록의 위록(僞錄)은 국치(國恥)임을 깨닫고 늦었지만 소관부처에서는 국보151호 세계문화유산 태조강헌대왕 실록1책 제4권 1393년 태조2년 9월 18일로 게재된 정총이 지은 환조대왕 신도비문에서 비와 얼자는 사실이 아닌 둔갑된 기록임을 밝히고 원안대로 복원 할 것을 부탁합니다,
* 태조강헌대왕실록 원본 내용
太祖康獻大王實錄 第四卷 九月十八日(庚申)
(桓祖大王 定陵 神道碑文 揭載 鄭摠 撰)
世積勳德 肇基王迹 善鍾慶發 源遠流光 篤生聖哲 以建大業 天之眷佑 有德至矣
------------------------------------------------ *太祖實錄에서 削除
王凡三娶 懿妃 又生一女 李氏生男曰 元桂 仕前朝封完山君卒 金氏定安翁主生男 曰和 封義安伯
-------------------------------------------------女適三司左司趙仁壁 萬世永有 瞻彼歸州 有峙其丘 王氣鬱葱 無疆維休 臣 拜稽首 我銘不諛 刻此貞珉以示後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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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太祖實錄에서 桓王有孽子二人 遁甲 揷入
“桓王有孽子二人元桂婢內隱藏出和婢古音加出元桂子四良祐天祐朝伯溫和子 七之崇淑澄湛皎淮漸良祐子興發興濟興露興美天祐子宏軒之崇子壽長淑子吾望之發澄子義敬微童湛子孝孫淮子福同漸子實堅 (實錄碑文終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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