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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농사꾼의 염치없는 가을걷이

강헌희(자유 기고가)

2012년 11월 01일(목) 14:20 [(주)고창신문]

 

농사짓는 일을 아주 단순하게 줄여서 말한다면 심고, 가꾸고, 거두는 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막상 그 일에 겁 없이 덤벼들었다가 중국의 전설적인 인물인 신농씨(神農氏)에게 혼찌검이 난 기분이다. 무릇 생명을 다루는 일에는 근면, 성실의 땀과 애정 어린 정성과 순리적 자연 법칙의 존중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는 농사꾼의 기본 정신과 태도가 불량하다는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경작이 허락된 곳은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영혼의 숙면을 취하고 계시는 곳에 있다. 그 주변에 한가롭게 버려져 있는 땅을, 단 한 푼의 자릿세도 내지 않고 무단 점유하고 있는 잡초들의 꼬락서니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나는 그들에게 강력한 퇴거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는 그 곳에 나의 6촌 형이 소개해 준 고구마 전문 재배 업자에게 우량의 종순을 얻어와 입양하였다. 그런데 그때가 마침 지구가 온통 강렬한 태양 볕으로 빨갛게 타들어 가는 가뭄의 시기인지라 그들의 극심한 갈증을 채워 줄 물이 크게 부족하였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양계장을 오가며 병아리들이 목을 축이는 물을 얻어다 조금씩 나누어 부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가 그 곳을 떠날 때마다 자꾸만 내 등 뒤에 대고 ‘물이 부족해요. 조금만 더 주세요. 네~에!’하고 아우성거리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애잔하였다.
그 뒤에 비가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쓸모없는 비(장마비)가 너무 많이 내려 문제가 되었다. 아직 어린 고구마 이파리들이 이제는 뱃속에 물이 가득 차서 숨통이 막혀 죽겠다고 하소연 하는 듯하였다. 이래저래 그들의 양육 책임을 맡고 있는 나는 괴로웠다. 그리고 은근히 귀찮아지기도 하고 때로는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는 ‘애~라, 나도 모르겠다. 너희들 마음대로 커라’하고는 한동안 발걸음을 끊었다.
얼마 후에 ‘이놈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 번 가 봐야지!’하고 뒷짐 지고 찾아가 보았다. 그런데 웬걸, 그곳에는 내가 돈 주고 집달리 시켜 쫓아낸, 천하에 ‘잡초 같은 망나니 놈’들이 나 없는 사이에 다시 침범해 들어 와, 내 ‘고구마 같은 어린 자식 놈’들을 마냥 괴롭히고 있었다. 한심하고 괘심하여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화학약품 중에 가장 독극성이 강한 농약을 살포해서라도 응징을 가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그리하면 상호 공멸의 위험이 있으려니. 아마도 아니꼬운 ‘잡초 같은 놈’들은 내가 차마 어찌하지 못하리라는 나의 약점을 간파하고 있었으리라 생각하니 더욱 분통이 터진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래, 너희들 멋대로 싸우면서 커라. 세상은 다 그렇게 우열의 다툼 속에서 진화해 가는 것이니’. ‘아무튼, 고구마 같은 놈들아! 부디 기죽지 말고 끝까지 잘 살아 남거라, 힘 내거라! 파이팅!’하고는 ‘나는 아무래도 짝퉁 농사꾼일 수밖에 없겠다’는 씁쓸한 기분이 되어 그곳을 떠나 왔다.
추석 명절이 되어 모처럼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께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갔다. 이미 ‘잡초 같은 놈’들은 주변의 영토를 점령하여 우점종으로 행세하고 있었고, ‘고구마 같은 놈’들은 아예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리고는 또 얼마간의 세월이 흘렀다. 나보다 더 많은 정성을 기울여 ‘고구마 자식’들을 열심히 길러 온 친구 농장에 가서 가을걷이를 거들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친구가 그들에게 애정을 쏟은 것에 비해 생산의 결과는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생산의 수지 결산이 기대치에 훨씬 못 미쳤기 때문이다. 우리는 허탈한 마음으로 비로소 농사일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자주 ‘씨앗 값도 못 찾았다’느니 ‘인건비도 못 건졌다’느니 하는 불평이 괜한 엄살이거나 거짓이 아니었음을 체득할 수 있었다.
그때 문득, 내가 그들의 성장 도중에 끝까지 양육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내버려 두었던 나의 불쌍한 ‘고구마 자식’들이 떠올랐다. 마치 어릴 적에 집을 나간 자식을 다시 찾아나서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이 무슨 조화더냐? 풀섶에 가려진 중에 간간히 죽지 않고 살아남은 고구마 잎들이 나타나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깊이 땅을 파보니 기대 이상으로 저축 양분이 풍부한 큰 덩이뿌리가 들려 올라왔다. 그들은 온갖 주변 잡초들의 방해와 괴롭힘을 이겨내고 자생적 생존 역량을 축적시켜 온 것이다. 나는 그들이 정말 내 친자식 일처럼 자랑스럽고 만족스러웠다.
나는 부모의 지극한 정성 없이도 스스로 잘 자라준 ‘고구마 자식 놈’들을 비록 염치는 없지만 미안한 마음으로 정성껏 거둬들일 생각이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과도 수확의 기쁨을 널리 나누어 가지리라.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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