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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리정사에서 키운 소리광대의 꿈"

해박한 지식과 절묘한 기법으로 판소리 사설 창작과 집대성
최초의 여류명창 배출 등 판소리사에 잊을 수 없는 업적 남겨

2012년 11월 12일(월) 15:13 [(주)고창신문]

 

광대소리를 위해 만장의 기염과 소담한 자료, 이론적 유산을 남겨놓은 이가 바로 신재효이며, 이제 그의 생전의 업적으로 인하여 판소리의 성자가 되었다.
그는 서민 판소리 문학의 이론가요, 연출가이며, 광대의 지휘자로서, 광대들 뒤에서 그 사설을 정리하여 준 숨은 공로자로 해박한 지식과 절묘한 기법으로 판소리 사설(타령)의 창작과 집대성으로 필생의 대업을 이루었다.
올해로 탄신 200주년을 맞은 동리 신재효 선생은 판소리문화공동체를 지도,운영하며 판소리여섯마당을 개작정리 하였고, 판소리 초기이론을 세우는가 하면 최초의 여류명창을 배출하는 등 판소리사에 잊을 수 없는 업적을 남겼다. 이에 본사에서는 탄신 200주년을 맞은 동리 선생의 업적과 일대기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동리 신재효의 활동과 업적

신재효는 19세기 후반(후기8명창시대) 지방향리 출신으로 광대가 아니면서도, 판소리의 심취한 후원가로서, 판소리 사설의 집성자로서, 이론가 비평가로서, 그리고 판소리의 지도자로서 창단의 바깥에서 당대에 가장 심대하게 판소리 광대들과 그 향유자(어전을 포함하여)들에게 영향을 미친 문제적 개인이다. 문제적 개인이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당대에 사회적·문화적·철학적으로 떠오른 문제에 대해서 새로운 사고의 영역을 개척하고 해법을 제시함을 통해서 후대에까지 전망을 열어주는 인물을 말한다. 신재효는 근대적 비평가가 작가와 독자를 매개·유통시키고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과 안목을 제시하고 작가에게는 지적인 거울을 제공함으로서 어떤 방향을 제시하듯이, 광대들과 그 향유자들 사이에 개입하여 광대들에게는 자신들을 뒤돌아볼 수 있는 사회적 거울을 제공하고 또 향유자들에게는 판소리 예술에 대한 규범과 비평적 안목을 제시함으로서 판소리를 지적인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렸으며, 어찌되었든 상하층을 아우르는 판소리의 국민예술화에 크게 기여했던 사람이다.

시대적 배경과 지방 향리로서의 신재효

신재효가 살았던 시대는 조선봉건사회가 막바지에 이르러 사회변동을 예시하는 사건들이 가시화되면서 봉건적 가치체계에 무너지고 사회적 급변이 진행되던 시대였다. 그가 태어나던 해(순조 12년, 1812)는 홍경래가 세도정치의 전횡과 부패관료의 횡포에 신음하던 백성을 모아 관서지방을 뒤흔들며 일어나서 조선왕조의 지배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한 해였으며, 이러한 왕조 말기적 사건을 시작으로 가렴주구와 불법적인 수탈에 못 이긴 백성들이 곳곳에서 무리 지어 일어나 혹독한 수탈을 일삼던 관리를 쫓아내기도 하여 동학농민봉기의 조짐을 보이기도 하고, 천주교가 일부 지식인과 민중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장차 서양문화가 우리나라에 크게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을 예고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신재효 가계는 그 아버지 대에 고창으로 이주함으로서 고창지방에 터를 잡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지방관청의 서울 일을 대신 해주던 경주인 노릇을 하다가 고창으로 내려 와서 관약방을 했던 사람이다.
신재효의 향리활동은 그의 아버지가 고창지방에서 닦아놓은 기반 위에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아버지 신광흡은 같은 성씨의 연고가 있는 신광택, 신성, 신백록, 신약문 등이 고창 현감으로 내려 간 것을 계기로 그 지방의 경주인 자리를 얻어서 그의 아들인 신재효가 장차 고창 지방의 향리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판소리 후원자 및 지도자로서의 신재효

신재효가 명실상부한 판소리의 후원자이자 지도자였다. 그런데, 신재효가 판소리의 후원자였다 데는 아무런 이의가 없으나, 후원자이면서 지도자, 다시 말하면, 광대들의 교육도 담당했다고 보는 견해에는 학계에서 많은 이의와 반론이 제기되어 있다. 왜냐하면, 신재효는 자신이 창을 하는 광대가 아니었고 따라서 구체적으로 창을 지도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 판소리의 지도자로 볼 수 있는 소위 “지도”의 수준과 내용이 문제가 된다. 여기에서 지도를 스승이 제자에게 하는 것과 같은 창악의 구체적인 지도만을 가리킨다면, 신재효는 지도자로서는 자격미달에 해당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지도는 당시 동리정사에 초빙되었던 몇몇 8명창들이 수행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소리를 예술의 반열에 등록시키는 자로서 그 예술적 지위를 부여하고, 광대가 갖추어야할 법례를 마련하는 한편, 지적인 소산으로 그 바탕인 사설을 개작하는 등, 구체적인 창악의 지도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의미심장한 지도를 함으로서 당대의 광대들과 그 향유자들에게 심대하게 영향을 미쳤다면, 그는 분명 명실상부한 지도자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사설 개작자 또는 집성자 혹은 창작자로서의 신재효

신재효가 해놓은 작업 중에서 가장 높이 평가받을 일은 자기 나름대로 판소리 사설을 고치고 가다듬어서 정착시킨 일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그의 개작작업의 가치와 의의에 논란이 여러 가지로 있을 수 있겠지만, 그의 판소리 사설은 오늘날까지 남아 전해지는 판소리 사설 가운데 사설의 정착과 개작과정에 대한 가장 확실한 정보를 제공하는 자료라는 점에서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그가 남긴 판소리 여섯 마당의 사설중 <변강쇠가>는 그가 아니었다면 그 구체적 내용이 전해지지 못할 뻔하였던 작품이다.
그가 판소리 여섯마당을 개작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개작작업은 40세(1852)를 전후하여 판소리에 심취하기 시작해서 1864년경 토별가의 정리를 시작으로 1884년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이어진 인생의 대기획이었으며, 마침내 그가 죽기 전에 판소리 여섯마당의 정리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신재효 활동의 현대적 의의

지금까지 우리는 신재효를 ‘판소리 후원자 및 지도자’, ‘판소리의 이론가·논평가’, ‘단잡가 창작자’, 그리고 ‘판소리사설의 개작자 또는 집성자’로 항목으로 나누어 매우 방대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활동과 업적을 살펴보았다. 그의 활동과 업적에 대하여 여러 가지 비판과 혹평 또한 제기되어 있으나, 그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당대에 사회적·문화적으로 떠오른 문제에 대해서 새로운 사고의 영역을 개척하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함을 통해서 후대에까지 전망을 열어주는 문제적 개인으로서 그의 영향과 활동은 쉽게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판소리의 개작자이자 후원가였던 그에게서 지금 우리가 새롭게 조명해보아야 할 지점은,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무엇보다도 그가 위대한 문화행정가였다는 점일 것이다. 그는 일개 아전출신으로서 판소리를 예술적으로 이해했고 연구했으며, 판소리 미학을 정립했고, 판소리가 발전할 수 있도록 광대들을 후원했다. 중요한 점은 그가 훌륭한 조력자로서 광대들을 이해하고 돌봐주며, 질타하고 다독거리면서 판소리를 연구하여 판소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함으로서 이미 문화행정이 해야 할 일을 이미 100년 이상 앞서 실천에 옮겼다는 점이다. 덕분에 고창은 판소리의 중심이 되었고, 수많은 명창들이 운집하고 이들 속에서 새로운 명창이 배출되었으며 “어전광대가 되려면 고창 신재효 문하를 거쳐와야 한다”는 말이 정설처럼 떠돌았다. ‘문화’라는 화두가 사회의 중심적인 가치가 되고, 문화강국으로서의 전망과 도약을 시도하고 있는 이 때에,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지원하며 그 방향을 제시함으로서 문화를 꽃피우게 하는 신재효와 같은 문제적 인물은 우리시대에 하나의 귀감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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