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6-04-22 | 05:53 오후

로그인 회원가입 기자방 원격

    정치/지방자치 사회 교육 문화/생활 지역소식/정보 고창광장 독자위원회 전북도정 기타

 

전체기사

커뮤니티

독자투고

공지사항

개업 이전

편집회의실

뉴스 > 뉴스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너무 짜게도(鹹), 너무 티내지도(酸), 너무 복잡하게도(澁), 너무 편하게도(甘), 너무 어렵게도(苦) 살지 말라

■ 박물관 탐방 - 고창 판소리박물관·고인돌박물관을 통해서 본 우리나라 특수 박물관의 현황 ④ 보성 한국차박물관

2014년 05월 22일(목) 17:23 [(주)고창신문]

 

글 실은 순서
① 과천 말박물관
② 강진 청자박물관
③ 대구 방짜유기박물관
④ 보성 한국차박물관

ⓒ (주)고창신문


보성 한국차박물관
주소: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읍 녹차로 775


오랜 결혼 풍습 중 봉채(封采) 또는 봉차 풍습이 있다.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이 풍습은 결혼하기 전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차를 보내는 풍습이었는데 이는 차나무의 성질에서 정절과 천생연분 그리고 가문의 화목과 번창의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차나무는 씨앗으로 심어야만 잘 자라고 세근이 없는 직근성으로 한 번 심은 자리에서 옮기면 잘 자라지 않기 때문에 처음 결혼하여 뿌리를 내린 곳을 떠나지 말고 살라는 정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두 개의 씨앗을 따로 심어도 한 나무로 합해져 나오므로 신랑과 신부의 천생연분을 상징하였다. 봉채 풍습이 전해진 일본에서는 지금도 신부 집에 보내는 혼숫감에 차 씨앗 2개를 넣는다. 차나무는 꽃이 피는 시기에 지난 해 꽃 진 자리에서 일 년을 기다린 열매가 맺히기 때문에 ‘실화상봉수’라고 불린다. 보통 꽃이 지고 바로 열매를 맺는 다른 식물과는 달리 일 년의 기다림 끝에 열매와 꽃잎이 만나는 것을 후손을 돌보고자 하는 조상의 마음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므로 천생연분으로 평생 정절을 지키며 가문의 번창을 기원하는 결혼예물로 차보다 더 적합한 것은 없었을 듯하다.

ⓒ (주)고창신문

9월부터 11월까지 피는 하얀 차 꽃은 황금색의 풍성한 수술을 품고 있어, 수줍음타는 소녀처럼 보이던 흰 꽃잎이 벌어지면 노랗고 화려한 수술이 드러나면서 부귀와 품위가 느껴지는 귀부인이 된다. 마치 구름처럼 피어난다고 해서 운화라고도 부르는 차의 꽃잎은 보통 다섯 장으로 이를 차의 다섯 가지 맛으로 연결시키기도 한다. 쓰고(苦), 달고(甘), 시고(酸), 떫으며(澁) 짜기도(鹹)한 차 맛은 중용을 추구하며 절제의 미덕으로 삶을 다스리는 기준이 되어 ‘너무 짜게도(鹹), 너무 티내지도(酸), 너무 복잡하게도(澁), 너무 편하게도(甘), 너무 어렵게도(苦) 살지 말라’는 다도정신으로 표현된다.

ⓒ (주)고창신문

중국의 다성(茶聖)으로 불리우며 차문화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당나라 문인 육우의 『다경』은 758년 편찬된 최초의 차 전문 서적으로 차 재배에서부터 차 제작, 차 마시는 방법, 차에 대한 평가 등 차를 다루는 다양한 방법과 경험에 대해 전하고 있다. 육우는 『다경』을 통해 중국의 차 역사가 근 4천7백여년이 되었다고 하면서 차의 기원을 고대 중국의 황제인 염제신농씨로 보고 있다. 중국의 탄생과 관련한 삼황오제의 신화 중 삼황의 하나인 염제신농씨는 농사짓는 법을 백성들에게 알려주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백여 가지 식물을 맛보며 약초를 찾으려고 했다. 하루는 그가 72가지 독초를 먹고 독기가 올라와 온몸이 타는 것 같고 사지가 마비되고 몸을 가눌 수 없어 한 나무 밑에 누워 쉬고 있는데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나무잎 한 잎을 그의 입에 떨어뜨렸다. 나뭇잎의 그윽한 향기에 정신이 번쩍 들어 그 나무의 여린 가지와 잎을 뜯어 입에 넣고 씹으니 삽시간에 독기가 빠져나가 몸이 가뿐해졌다. 이 후 차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나무는 세상에 알려지면서 약용이나 식용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차의 기원은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선승(禪僧)으로 선종(禪宗)의 창시자인 보리달마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남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인 달마는 520년경 중국에 들어와 소림사에서 9년간 잠을 자지 않고 면벽 좌선 하던 중 태산보다 무겁게 내려 감기는 눈꺼풀을 신심만으로 이겨낼 수 없어서 아예 눈꺼풀을 떼어 뜰에 던져버렸다. 눈꺼풀을 던진 뜰에서 신기하게 나무가 자라났는데 나뭇잎이 바람에 스칠 때마다 은은한 향기가 일어 이를 신묘하게 여긴 달마가 잎을 따서 물에 달여 마시자 이후 더는 잠이 오지 않아 맑은 정신으로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 나무가 바로 차나무였다는 것이 달마 대사에 의한 차 기원설이다. 이렇듯 달마에 의한 차 기원설은 다선일여(茶禪一如)라 하여 불교와 차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선(茶仙)이라 일컬어졌던 초의선사가 다선일미사상을 펼치며 조선의 다도를 중흥하였다. 차의 기원에 대해서는 신농설, 달마설 이외에도 편작설, 기파설, 이아설, 왕포설 등이 있는데 이는 차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 (주)고창신문

차에는 카페인·타닌·카테킨(catechin)·비타민 및 많은 무기염류가 들어 있어 전세계에 걸쳐 기호품으로 널리 애용된다. 특히 카페인이 들어 있어 강심작용·근육수축작용·피로회복·이뇨작용·각성작용을 한다. 그밖에도 차에 함유되어 있는 타닌은 중금속이나 알칼로이드와 같은 독극물 및 단백질의 침전을 일으켜 해독효과도 있으며, 차 속에 있는 엽록소는 빈혈치료에, 단백질은 혈액의 평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차 속에 들어 있는 방향유는 큰 요오드값을 가져 물질대사 및 갑상선의 내분비질환치료에 효과가 있으므로 특히 해산물이 적은 내륙지방 사람들이 많이 마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주)고창신문

차나무는 쓰촨 성[四川省], 윈난 성[雲南省] 및 구이저우 성[貴州省]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는 신라시대 때 당나라에 갔던 사신이 씨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은 것이 기원이 되었다. 자갈이 섞여 배수가 좋고 마르지 않는 비옥한 토양에서 잘 자라지만 추위에 약해 남부 지방에 널리 퍼져있는데, 전라남도 보성이 주요생산지이다. 전세계적으로 많은 품종들이 퍼져 있는데, 크게 녹차용으로 심는 중국종(C. s. var. sinensis)과 홍차용으로 심는 인도아샘종(C. s. var. assamica), 그리고 이 두 종류의 잡종으로 구분한다. 인도아샘종은 내한성(耐寒性)이 약해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종을 심고 있다. 어린잎을 따서 만든 차를 작설차(雀舌茶)라고 하는데, 품질은 좋지만 수확량이 적다. 반면에 오래된 잎을 따면 수량은 많지만 품질이 떨어지므로 적기를 택해 잎을 따야 한다. 곡우인 4월 20일을 전후하여 따기 시작하여 5월 말까지 따는데 그 시기에 따라 우전, 세작, 중작, 대작으로 구분된다. 녹차의 몸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시절, 넓게 자리잡은 보성의 비탈진 녹차밭에 잎이 오르기 시작하는 4월과 5월 찻잎을 채취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바빠지면 그 장관을 구경하기 위해 보성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도로에 몇 시간씩 갇혀 있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 (주)고창신문

보성에 위치한 한국차박물관은 970억원의 국비와 군비로 2002년 공사를 시작하여 2010년 9월에 개관하였다.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로 수장고와 전시실을 갖추고 1층은 차문화관, 2층은 차역사관, 3층은 차생활관을 테마로 이루어져 있다. 1층 차문화관에서는 차에 대한 기본 지식과 정보를 비롯하여 보성차와 세계의 차를 소개하는 코너가 있고, 2층 차역사관에서는 고대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차 문화와 유물을 소개하고 있다. 3층에 있는 한국 차 생활실은 차에 대한 전문 지식을 소유한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차를 시음할 수 있는 곳으로 성인은 1,000원, 어린이는 500원의 이용료를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그 이외에도 세계 차 문화실과 생활실이 구현되어 있다. 5층에는 전망대가 있어서 영천 저수지와 율포 앞바다가 어렴풋이 보인다. 이외에도 박물관 주변에는 세계차나무 식물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사계절 푸른 차밭이 있어 찻잎따기 체험, ‘차 만들어 보는 곳’에서는 차만들기 체험 등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 (주)고창신문

유행은 옷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먹거리나 음료에서도 현저하게 나타난다. 한 때 녹차를 비롯한 전통차의 열풍이 불어 녹차의 가격이 오르고 손님에게도 녹차를 내던 기억이 선명한데 유행에 따라 기호도 변하는 것인지 요즘엔 우후죽순처럼 커피 전문점이 자리를 잡아 아메리칸도 아닌 사람들이 너도나도 아메리카노를 찾는다. 이제는 보기 힘든 녹차 밭의 영광을 추억하면서 마시는 녹차의 향기는 언제가 다시 올 보성의 영광을 속삭이는 듯하다.


글, 사진 : 유석영, 조창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에서 지원받아 연재되는 기사입니다]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 Copyrights ⓒ(주)고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고창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제46회 장애인의 날 기념 장애인 인식개선 공연..

봄의 기억, 길 위에 남다 고창 청보리밭 축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고창군 예비후보자 현황..

과거를 품고 내일로, 신재효판소리박물관 재개관!..

회사소개 - 조직도 - 임직원 - 윤리강령 - 편집규약 - 광고문의 - 청소년보호정책 - 기자회원 약관 - 구독신청

 상호: (주)고창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404-81-20793 / 주소: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성산로48 (지적공사 옆) / 대표이사: 유석영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유석영
mail: gc6600@hanmail.net / Tel: 063-563-6600 / Fax : 063-564-8668
Copyright ⓒ (주)고창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