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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_ <로타리이용원> 김종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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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허락하는 한에 이용원 계속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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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02일(화) 15:25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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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 앞 <로타리 이용원>은 지난 45년 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 가히 고창읍의 산 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손님들의 머리를 깎고 거품을 닦는 손길은 멈춘 적이 없었다. 군청 앞은 새로운 상가가 생기고 도로가 뚫렸으며,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또 찾아왔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그의 가위는 쉬지 않는다. 군청 앞 마지막 이발소, <로타리 이용원> 김종철(69) 씨의 이야기다.
-편집자 주
▶ 언제부터 이용원을 운영하셨나요?
= 45년 이상 운영을 했습니다. 정확한 년도는 기억나지 않아요. 지금 이 건물이 지어지기 전부터 <로타리 이용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개원할 당시 여기가 등기소 자리였어요. 지금처럼 시멘트 건물이 아닌 목조건물이었습니다. 군청 앞이 예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변했잖아요. 관통로가 생기고 상가들이 들어서는 걸 다 보고 있었던 거죠. (웃음)
▶ 어떻게 이발사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계속 일을 해야 했습니다. 구두도 닦고 농사일도 돕고요. 온갖 일들을 다 해보고 나니까 결론이 났던 겁니다. 무엇이든 뚜렷한 기술이 있으면 먹고 살 수 있겠구나, 하고요. 그래서 스무 살 무렵에 이발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죠. 그 시절 사람들이 다 그랬던 것처럼, 쉽게 말해 먹고 살기 위해서 배운 겁니다.
▶ 평생 혼자 운영하셨던 건가요?
= 많은 이발사들이 <로타리 이용원>을 거쳐 갔습니다. 두세 명씩 두기도 했어요. 그 중에는 아가씨들도 있고 총각들도 있죠. 이발요금이 250원 정도 할 때부터 이발소를 운영했으니까요. 90년도까지도 종업원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이발소 자체를 이용하는 분들이 많이 사라졌으니까요. 예전에 여자들은 미용실에서, 남자들은 이용원에서 이야기를 주고받곤 했습니다. 지금은 남자라고 해도 이용원을 가는 사람은 거의 없죠. ‘이용원은 촌스럽다’는 생각들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꾸준히 찾아와주는 단골손님들이 아니라면 저도 문을 닫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명절에는 손님들이 더 찾아올 것 같습니다.
= 고향을 찾는 분들이 오시죠. “군청 앞을 지켜줘서 고맙다”는 말도 가끔 듣습니다. (웃음) 옛날에는 명절이면 이발도 하고, 고데기 한번 해보고 싶어 들르는 분들이 참 많았어요. 멋쟁이들은 포마드 기름도 바르고요. 지금은 명절이면 꼭 와서 머리를 깎고 가는 분들께 참 감사하죠. 한번은 베트남에서 여관을 하신다는 분이 명절에 찾아와서 머리를 깎아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가게가 남아있는 걸 보고 너무 반가웠다고요.
▶ 이용원을 운영하며 보람을 느낄 때는?
= 언제나 그렇습니다. 손님들이 기분 좋게 가면 보람을 느끼죠. 이제는 그냥 이야기를 나누러 오시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꼭 영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이제는 손님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항상 도와주시니 감사하죠. 늘 말동무가 되어주시는 것도 힘이 됩니다.
▶ 신문을 통해서 한 말씀 하신다면?
= 군청 앞에서는 제가 마지막 이용원이 될 것 같습니다. (웃음)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성실히 일하고 있습니다. 자식들도 다 결혼하고 하나 남았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에 계속 머리를 깎아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우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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