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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_ 서안상회 서순예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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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시장이 집처럼 돼버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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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02일(화) 15:27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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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고창신문 | |
<서안상회>의 서순예(79) 할머니는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가게로 향한다. 지난 50여 년간 이어진 일과다. 이제는 일과시간이 되어 집에 있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한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딱 한 가지다. 지금은 시장에 있으면 집처럼 편안하다는 것이다. 이번호 <고창신문>은 추석호를 맞아 <서안상회>의 서순예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 장사를 시작할 때의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 젊어서부터 시작했지요. 다 비슷한 소리를 할 텐데, 그땐 다 어려웠거든요. 남편은 애를 낳자마자 군대를 가버렸고, 애기는 커가고 한숨만 푹푹 쉬었어요. 학교는 가르쳐야겠는데 당장 목구멍에 풀칠하기도 힘든 거예요. 돈 5천원을 빌려다가 양은그릇을 팔기 시작한 게 처음이었어요. 그때 5천원이면 나락이 몇 되었잖아요. 무작정 광주로 가서 공장이 어디냐고 물어물어 찾아갔어요. 뭐가 뭔지도 모르고 물건을 떼어 돌아왔어요. 집안에서 난리가 아니었어요. 한숨만 폭폭 쉬고. 양은그릇을 이고 지고 이웃집으로 찾아가 무작정 내밀고 다녔어요. 그때가 양은그릇이 처음 나오던 시기였는데, 다행히 반응이 괜찮았지 뭡니까. 가격도 제대로 몰랐어요. 엄청 남기도 하고, 손해도 보면서 장사를 시작하게 된 거지요.
▶ 옷가게는 언제부터 시작하게 됐나요?
= 양은그릇을 팔며 이웃들 사이에서 얼굴이 익기 시작하니까, 그릇 말고도 여러 가지 팔 수 있게 되더라고요. 돈 대신 쌀도 받고, 머리카락도 받고 했죠. 그러다 광주에서 만난 어떤 상인이 비단장수를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장사꾼 기질이 보인다면서요. 그때 비단장수를 시작하며 포목점을 열었어요. 5일에 한 번씩은 물건 떼러 서울도 다니게 되고요. 물건을 잔뜩 떼어놔야 하는데 교통은 버스랑 기차밖에 없었죠. 지금은 상인회에서 버스로 다 같이 돌아주니 세상이 너무 좋아졌지요.
▶ 상인대학의 학생이시라고 들었습니다.
= 저처럼 나이 먹은 사람이 무슨 학생인가요. (웃음) 가서 좋은 이야기 듣고 오는 거지요. 그 동안 먹고 사는데 바빠서 학교 문턱에도 못 가봤어요.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는데, 그것도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지요. 지금이라도 갈 수 있다고 하니까 가는 거예요. 상인회 분들도 고생하시니까 저도 같이 있어야 할 것 같고요. 단합도 되고 좋지요. 끝까지 같이 다니고 싶어요.
▶ 고창읍 시장은 예전에 비해 얼마나 바뀐 건가요?
= 지붕이 생긴 지도 얼마 안 됐어요. 10년이나 넘은 것 같아요. 사람은 없어졌어도 앉아있기는 너무 좋지요. 게다가 예전엔 5일장이었는데 지금은 ‘매일장’이거든요. 하루라도 비울 수가 없는데, 이렇게 시설을 만들어주니 고맙죠. 대신 요즘은 마트가 많이 생겨서 손님이 많이 없어요.
▶ 언제까지 장사를 하실 계획인가요?
= 여기가 제일 좋아요. 계속 장사를 하다보니까 여기가 완전히 집처럼 돼버렸지요. 아침밥 먹고 나면 꼭 가게 문을 열어야 돼요. 집에 있으면 불편하기만 하고. 허리가 아파서 앞으로 얼마나 더 할지 모르지만 될 수 있는 한 여기 있으려고요. 나이를 먹다보니 이제 여기 말고는 갈 데가 없어요. (웃음)
▶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 제가 뭐 드릴 말씀은 없고, 재래시장 좀 많이 이용해주세요. 저희 상인들이 바뀐다고 진짜 많이 노력하고 있거든요. 나중에 저는 그만 나오더라도 이분들은 계속 계실 거잖아요. 여기, 고창신문도 많이 봐주시고요.
하우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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