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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_ 7남매 가장 윤완종 씨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것이 유일한 바람”

2014년 10월 17일(금) 15:12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고령화, 저출산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지 오래다. ‘자식은 하나만 제대로 키우자’는 풍조가 당연시되고 있다. 결혼을 하더라도 자식을 낳지 않겠다는 부부, 심지어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싱글족들도 늘고 있다. 비단 고창만이 아니라 전국이 저출산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때에 7남매를 낳아 오순도순 살고 있는 가정이 있다. 7남매를 키운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이번호 <고창신문>은 부안면 대동마을에 살고 있는 7남매 가족을 만나보았다.
편집자 주

지난 13일, 윤완종 씨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기자는 부안면 대동마을로 향했다. 부안면은 자주 가보았지만 대동마을은 초행길이었다. 수동저수지를 지나 오른편, 이란 말만 듣고 길을 찾아 나선 기자는 당연한 수순처럼 길을 잃어버렸다. 하는 수 없이 마을분들에게 길을 여쭤보아야 했다. 어르신 한 분이 대동마을은 무슨 일이냐신다. 칠남매 가족을 만나러 간다고 하니 대번에 알아들으셨다.
“아 거기는 저짝으로 가야허는디. 근디 거기가 안사람이 말하기가 좀 불편할 거여.”
윤완종(45) 씨 부부는 마을에서 유명인사다. 어르신의 안내를 따라 들어간 곳에 윤완종 씨가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윤 씨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애국자’로 통한다. “원래 애들을 많이 낳고 싶었어요.” 7남매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일본인 아내 노지마 유키코(42) 씨다. “종교단체에서 주선해 98년에 만나 2002년에 결혼했지요. 일본에 갔다가 2011년 3월쯤 큰 지진 때문에 바로 들어왔어요. 그 때도 집사람이 만삭이라 막내는 한국에서 낳자, 싶어서 고창으로 들어왔던 겁니다.”
첫째 윤심미, 둘째 문원이, 셋째 효석이, 넷째 문정이, 다섯째 수현이, 여섯째 대현이, 일곱째 동원이. 아빠엄마까지 아홉, 게다가 고양이까지 열 가족은 식탁이 모자라 함께 밥을 먹는 것도 쉽지 않다. 밥은 ‘알아서 먹는다’는 게 윤완종 씨의 설명이다.
자식이 너무 많아 불편한 점은 없을까. 윤완종 씨는 그 말에 그냥 허허 웃어 보인다. “애들이 많으면 알아서 다 잘 하니까 좋아요. 자기네들끼리 돌보고 배우며 커가는 거죠.”
윤완종 씨 가족은 이틀 이상 빨래를 하지 않으면 세탁기가 꽉 차 곤란해진다. 뿐만 아니라 주말마다 교회에 가지만 트럭 안에 다 탈 수 없어 가족들 중 딱 여섯 명이 예배에 참석할 수 있다. 신발장도 웬만한 식당도 울고 갈 규모다.
아내인 노지마 유키코 씨는 한국말이 서툴다. 아직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다. 윤완종 씨는 “고창에 돌아왔더니 일본분들이 많아져서 놀랐다”며 별다른 걱정이 없단다. 노지마 유키코 씨에게 한국생활의, 혹은 7남매 뒷바라지의 어려움을 물어봤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남편이 술 좀 끊었으면 좋겠어요. 술 담배 하는 친구들이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내 조용히 있던 노지마 유키코 씨의 말이다.
기자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윤완종 씨에게 물어보자 윤 씨는 하늘을 바라보며 글쎄요, 라고 말을 흐린다. 꼭 하나가 있다면, 이라고 묻자 “집?”이라고 대답한다. 아닌 게 아니라 7남매를 키우기에는 결코 크지 않은 집이다. “이 집도 봉암초등학교에서 제공해준 집이에요. 지금은 괜찮지만 아이들이 점점 커가니까 걱정입니다… 그렇게 넉넉한 형편은 아니니까 걱정이 되죠. (웃음)”
남들이 보면 입이 떡 벌어질만한 생활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윤 씨 부부가 놀랍다. 윤완종 씨에게 아들 딸들이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는지를 물었다. 윤 씨는 별 다른 망설임 없이 말했다.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만 하면 좋겠다”고. 바람마저 소박한 이들 가정의 모습에 기자의 마음마저 따뜻해졌다. 이들의 주거공간을 해결해줄 마음씨 좋은 후원자는, 어딜 가야 찾을 수 있을까.

하우람 기자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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