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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_ 소리꾼 이상영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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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판소리 명맥 이어갈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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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25일(화) 15:11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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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하우람 기자 | | 흔히들 고창을 ‘판소리의 고장’이라고 말한다. 고창은 국창인 만정 김소희 선생을 배출했으며 진채선·신재효가 세기의 로맨스를 펼친 무대이기도 하다. 전국 유일의 판소리박물관이 위치해 있다는 점도 타 시·군과의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점이다.
고수면 예지리에 살고 있는 소리꾼 이상영(75) 사범은 고창의 판소리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간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낸다. 소리에 대한 그의 열정은 아직도 마른 장작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는데, 우리 소리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 사범이 소리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의미심장하다. 그는 ‘고창이 판소리의 성지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던 한 어른의 말에 자신이 소리꾼이 되어 고창 판소리의 이름을 드높여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이 사범은 10살 때 시조를 배우며 처음 소리에 입문하게 된다. 어른들이 알려주는 소리를 따라 부르며 ‘목소리가 참 좋다’는 말을 듣게 됐다. 그것이 소리인생 60년의 시작이었다.
이 사범은 18세가 되던 해에 더 크고 넓은 곳에서 소리를 배우고자 서울로 향해 경기민요를 배웠다. 4·19혁명과 군생활 등을 거치며 소리와 거리가 멀어지기도 했지만, 마음만은 항상 소리와 함께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
그의 소리 인생은 그 목소리에 서린 한(恨)만큼이나 기구하다. 그는 생활고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3년 동안 목수로 고생하며 번 돈을 사기당하며 주위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등, 살아남기 위해 온갖 일들을 겪어야 했다.
그 와중에도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전주 도립국악원에서 수학하며 교수법을 익히고, 동리국악당이 개관됐을 때 처음으로 등록해 판소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고창국악당 1기생으로 어린 학생들과 배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소리를 배울 수만 있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이기화 전 문화원장의 소개로 정읍의 김명신 명창으로부터 1:1 교습으로 심청가를 삼 년 동안 배우기도 했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고창의 판소리를 알리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네요.”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고창의 판소리를 알리기 위해 애쓰는 그의 모습을 비아냥대는 이들 때문에 가끔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는 ‘판소리=고창’이라는 공식과는 다르게 소리꾼들은 대부분 남원으로 모이고 있다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누구라도 하나 나서서 고창 판소리를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죠. 오죽했으면 제가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국악교육지도자 1급도 땄고요.”
이 사범은 현재 고수면 원광효도의 집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민요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강사료의 반만 받고 활동하는 그는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부족한 생활비는 목수로 일을 하며 벌어간다. 그저 고창의 소리를 이어가고자 하는 생각밖에 없다.
“고창남초등학교에서 1년, 또 매산초등학교에서 강사로 있으면서 학생들이 우수상, 장려상을 받아오니 그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라고요. 제도적으로 판소리의 고장에서 맥을 이어가고 후학을 양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주요 수상실적
- 국악교육 지도자 1급
- 민족문화 예술 대상(판소리 부문)
- 한국예술 봉사 대상(국악공연 부문)
- 세계문화 예술 대상(판소리 부문)
- 대한민국 국악예술 대상(판소리 부문)
- 국악교육 지도자 판소리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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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람 기자 holloh2@hanmail.net “서해안시대의 주역” - Copyrights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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