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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과 단결로 생동감 넘치는 진주정씨 종친"

기획_ 고창군 종친회 탐방 ②진주정씨 종친회

2016년 01월 27일(수) 17:46 [(주)고창신문]

 

백과사전에 따르면 종친회란 집단적인 정체성(正體性)을 가지는 부계친족집단(父系親族集團)의 조직이라고 한다. 종친회는 단순한 친족집단을 넘어 자신의 뿌리를 보존하고 미래를 위해 터를 닦는 이들이다. 그렇다면 고창에는 어떤 종친회가 있을까? <고창신문>을 통해 이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지난호 고흥류씨에 이어 이번호는 ‘진주정씨’다. /편집자 주

↑↑ 진주정씨 입향조인 13세 추장공과 20세손 절제공, 그리고 그의 두 아들의 묘.

ⓒ 하우람 기자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따르면 진주정씨의 원류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는 신라 6촌 중 자산진지촌(觜山珍支村)의 촌장 지백호(智伯虎)이다. 그 후 각기 시조를 달리하는 진주정씨가 여덟 파가 되어 진주8정(晋州八鄭)이라고 한다.

진주정씨는 상계가 연결되지 않는 8파가 각각의 중시조를 시조로 삼고 고려시대부터 진주에 산거하고 있다. 이를 크게 분류하면 정예(鄭藝)·정자우(鄭子友)·정장(鄭莊)·鄭櫶(정헌)을 시조로 하는 4파로 나눌 수 있다.

이들 중 진주정씨 고창군종친회의 시조는 정예(鄭藝)공이다. 정예공은 고려시대의 삼한을 통합한 공신이며, 시호로 영절(英節), 관향은 진양(晉陽)지금의 진주이다.

진주정씨가 고창에 입향하게 된 계기는 13세 충장공의 낙남과 후손들의 세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13세인 충장공이 무령(영광)으로 유배되어 생애를 마치고, 후손들이 고창, 영광, 무안, 함평 등 호남지역에 거주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서울에 거주하던 20세 절제공(宗舜)이 성송 괴치로 입향하게 된 것이 고창 진주정씨의 시작이다.

고창의 진주정씨는 입향조인 절제공의 후손으로, 절제공의 장남인 교위공은 다섯 명의 아들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첫째와 둘째는 임진왜란 때 영광성을 지키다 젊은 나이에 순국하셨고, 셋째인 운(惲), 넷째인 회(恢), 다섯째 흘(忔)의 많은 후손들이 고창 각지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잘 살고 있으며 결집력이 강한편이다.

고창의 진주정씨는 이렇게 입향조인 절제공과 그의 장남 교위공, 교위공의 세 아들의 후손일 것이라고 보는 게 중론이다. 절제공과 교위공, 그리고 대를 잇지 못한 교위공의 두 아들은 모두 한 자리에 묻혀 있다. 여기서 고창군 진주정씨가 시작됐다는 의미에서 이곳을 속칭 ‘벌 명당’이라고 부른다. 벌 명당은 자손이 많은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 진주정씨의 사당. 제사가 있을 때면 이곳에 많은 종친들이 모이게 된다.

ⓒ 하우람 기자

『진주정씨의 고창세거와 문헌·유적』에 따르면 2009년을 기준으로 종순공의 큰아들 정극일(鄭克一)의 후손들이 성송면·무장면·대산면·공음면·아산면 등지에, 셋째 아들 정덕일(鄭德一)의 후손들이 무장면 등지에, 넷째 아들 정득일(鄭得一)의 후손들이 대산면·고수면 등지에 살고 있다고 쓰여 있다. 정택신의 후손들 참판공파(參判公派)는 고창읍 도산리 지동에서 세거했다. 진주정씨 절제공 후손들의 집성촌은 성송면의 괴치·계양·판정·산수·사내·어림, 대산면의 율촌·광대·신평·계룡, 무장면의 덕림·강남, 공음면 군유, 아산면 남산, 고창읍 지동 등에 집정촌을 이루고 세거해 왔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집성촌은 쇠퇴해 가지만 진주정씨 고창군종친회는 그만큼 유연하게 적응하며 종친회 활성화를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진주정씨 고창군종친회는 약 2,000여 명의 종친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주정씨 고창군종친회의 특징 중 하나는 종친회관 건물이 늘 북적북적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종친회가 종친회관을 수익금 창출 목적으로 운용하는 반면, 진주정씨 고창군종친회는 완전한 ‘종친회관’으로 쓰이고 있다.

진주정씨 고창군종친회 어르신들은 회관 1층에 마련된 종친회관에서 자주 모여 장기 바둑등 오락을 하며 침목을 다진다. “우리는 매일 여기서 논다”는 게 한 종친회 어르신의 설명이다. 난방비·전기세 모두 종친회에서 제공한다. 커피도 무료다. 이들에게는 종친회관에 나가 어울리는 것이 당연한 일상 중 하나다.

또, 진주정씨 고창군종친회의 정기삼(78) 씨는 300여년 전 만들어진 진주정씨 족보와 그후 계속 9번이나 발간된 족보를 그대로 소장하고 있다. 이는 진주정씨뿐만 아니라 기록물로써 가치도 크다. 정기삼 씨는 족보 외에도 6대손인 계당공과 그의 손자 소두공 등의 문집 역시 10권도 함께 보관하고 있다. 이들의 문집을 보면 계당공이 누구와 교류를 했고 어떻게 살았는지가 확연히 드러나 보인다.

↑↑ 진주정씨 종친회원인 정기삼 씨는 3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진주정씨 족보와 문집 등을 가지고 있다.

ⓒ 하우람 기자

진주정씨 고창군종친회에서는 『종맥』이라는 이름으로 종친회지를 발행한 바 있다. 『종맥』은 종친회 정신을 다시 한 번 정립하고자 2004년 창간한 종친회보다. 고창군을 비롯하여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진주정씨 고창군종친회원들이 각자의 원고를 추려 만들어졌다. 진주정씨 뿌리에 대한 이야기와 효에 대한 고찰, 종친회원들의 시와 수필 등 삶에 대한 고창군종친회원들의 다양한 고찰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 『종맥』은 3회 발간되었으며, 4회 발간을 기약하고 있다.

정창진 회장과 고문, 명예회장, 운영위원, 총무, 재무 등 실무진은 전 종친회원들이 하나가 되어 어울릴 수 있도록 실무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역시 회원간의 단합과 친목이다. 종친회원들간의 결집력이 종친회 활동을 비롯하여 모든 것의 시초가 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꼭 정기총회나 제사를 모시는 때가 아니더라도 상시적으로 모일 수 있어야 진짜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진주정씨 고창군종친회원들은 모두들 피가 섞여 있습니다. 이제 남은 건 관계를 지속시키고, 발전시키는 일입니다. 수시로 얼굴을 보고,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만날 수 있도록 지금처럼 종친회관을 운영하는 게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계가 형성되고 소통이 잘 되면 결집력은 당연히 뒤따르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 정창진 회장

ⓒ (주)고창신문

 

진주정씨 고창군종친회의 정창진 회장은 그 자신이 거의 매일 종친회관에 와 회원들과 어울린다. 또, 종친회 내부에서도 ‘삼화회’라는 조직을 결성해 매월 셋째주 화요일에는 20~30명이 모여 종친들의 소식도 전하고 점심도 같이 하며 1년에 한 두번씩 관광버스를 타고 전국을 유랑하기도 한다. 회장인 본인이 앞장서서 종친회원들의 결집을 위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우리조상뿌리찾기 학술세미나’가 열린 적 있어요. 고창문화연구회에서 각 종친들의 고창세거와 문헌·유적에 대해 총망라해주는 의미 있는 세미나입니다. 자료를 준비하고 조상님들에 대해 알아보니 제가 모르는 것도 참 많았지요.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었고, 보람 있는 일이었습니다. 임기 중에 귀한 세미나에 참여하고 마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 하우람 기자

 

역대 종친회장은 1981년부터 초대~8대 정휴탁, 9~10대 정익환, 10~11대 정기동, 12대 정기수, 13대 정철묵, 14대 정재학, 15대 정길진, 16대 정재원, 17대 정창진 씨 등이 종친회를 이끌어 왔다. 진주정씨 정창진 회장은 오는 3월 정기총회를 마지막으로 회장직을 내려놓게 된다.

진주정씨 고창군종친회는 정정묵 준장, 정대진 산업자원부정책기획관, 정석용 양천구 북구청장, 정영진 부장판사, 정미경 국회의원, 정길진 전 도의회의장, 정기수 노인회장, 정세환 전 국회의원, 정균환 전 국회의원, 故 정규진 전 고창여고 이사장 등 고창을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맡은 바 역할을 다하며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시리즈 기획물]
①고흥류씨 13세 선조를 모시는 시정공 학산제
②화합과 단결로 생동감 넘치는 진주정씨 종친회
③충효쌍수(忠孝雙修) 정신의 청도김씨 종중
④숭조·화합·애족으로 하나되는 창녕조씨 종중

하우람 기자  holloh2@hanmail.net
“서해안시대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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