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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조·화합·애족으로 뭉친 창녕조씨 종중"

기획_ 고창군 종친회 탐방 ④창녕조씨 종중

2016년 04월 26일(화) 17:44 [(주)고창신문]

 

<고창신문>은 지난 총선기간 동안 중단했던 종친회 연재를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종친회는 단순한 친족집단을 넘어 자신의 뿌리를 보존하고 미래를 위해 터를 닦는 이들이다. 고창에는 어떤 종친회가 있을가? <고창신문>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에 소개할 종친회는 '창녕조씨'다. /편집자 주

ⓒ 하우람

시조는 신라 진평왕의 서(婿)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 조계룡(曺繼龍) 태자태사(太子太師)이며 신라 말에 아간시중을 지내고 고려 태조 왕건의 딸 덕공 공주와 결혼하여 부마(駙馬, 임금의 사위)가 된 대악서승(大樂署丞) 조겸(曺謙)을 중시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창녕조씨는 고려시대 이래 삼남의 명족으로 고려시대에는 조겸의 손자 조연우로부터 조유기에 이르기까지 8대에 걸쳐 문하평장사를 배출하였으며, 조선시대의 남명 조식(曺植, 1501~1572)은 경의를 바탕으로 실천하는 사상가이자 교육자로 유명하다. 해방 이후의 조만식(曺晩植, 1883~1950)선생은 민족운동가로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연정회, 신간회, 민립대학기성회 등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창녕조씨는 조강환 대종회장 겸 종덕제제장을 주축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청간(淸澗) 서(庶)의 증손 성균생원 승조의 아들 부장 침(琛)이 모양윤씨 참봉 종손의 女를 취(娶)하여 인천 계산에서 400여년 전 고창읍 석정리 내정으로 들어와 세거(世居)한다. 부장 침의 삼자 인숙이 효행으로 현릉참봉에 제수(除授)되었으나 나가지 아니하고 고창읍 내정에서 중리로 옮아 자손이 세거했다. 부장 침이 창녕조씨 고창 입향조이며 매년 음력 3월 12일 고수 은사 영모제에서 후손들이 제를 모시고 있으며 고창대문중회장 조수광은 그동안 영모제 정문 창고 신축 및 선산주변 환경 개선에 일조하였다.

양평공파(襄平公派) 양평공 익청(益淸)의 子 상호군(上護軍) 충의 현손 진위현령(振威縣令) 호인이 명종 때 산수를 가려 서울에서 흥덕으로 래거하여 자 참봉 익령, 봉사 익수, 孫 수문장 윤흠이 임란에 창의 순국하니 후손이 충효의 가통을 이어 흥덕 삼태를 위시하여 경향 각지에 살고 있다.

충정공파(忠貞公派) 충정공 상치(尙治)의 十세손이 초사 후천(進士)이고 초사의 증손 통정대부 삼익(일명 경삼, 자 우보)이 영천에서 아산면 남산으로 들어와 자손이 세거한다.

직제학공파(直提學公派) 보문각직제학 유도의 六세손 진사 경이 담양 창평에서 고창읍 덕정으로 입향하여 세거하다.

구봉공파(九峯公派) 구봉 엽(熀)의 六대손 운필이 화순에서 고수면 와촌으로 들어와 세거한다.

ⓒ 하우람

정산사(鼎山祠)는 정조 정사년(一七九七)에 호남의 유림인 조청간(曺淸澗), 유선암(劉仙巖), 유은재(劉隱齋) 세 선생을 받들고자 창건한 사우(祠宇)이다. 그러나 서원훼철 후, 두 劉先生의 후손이 조산사(造山祠)로 분향(分享)함으로써 사우를 중건하면서 유림의 공의에 의해 청간선생과 그 九세손 가돈재공(嘉遯齋公), 十세손 삼오당공(三吾堂公)을 추향하여 조씨의 세덕사(世德祠)임과 아울러 향유(鄕儒)의 존숭지(尊崇地)로 탈바꿈되었다.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강당, 명덕재, 내삼문, 장서고, 수직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향사일은 음력 9월 5일이다.

청간(淸澗)선생의 휘(諱)는 서(庶)요, 자(字)는 여중(汝衆)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시조(始祖)의 휘는 계룡(繼龍)이며 고려조에 八世를 계속하여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했다. 증조(曾祖)의 휘는 준(俊)이요 소감(少監)이다. 조(祖)의 휘는 인취(仁取)이고 소감(少監)이요 고(考)의 휘는 원유(元宥)이고 판종부사사(判宗簿寺事)이다.

공의 품성이 너그럽고 인자하며 용모와 의범이 단정하였고 효도와 우애, 일가간의 화목이 두터워 고을에서 존경을 받아왔다. 야은(埜隱) 전록생(田祿生) 선생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고려말 공민왕조에서 대과 급제하였고, 조선조에 들어 태조대왕 갑술년에 왕명으로써 법화경(法華經)과 홍범(洪範)을 사경(寫經), 이를 올리면서 치세의 대도를 아뢰었다. 무인년 使臣(王의 特使)으로 명나라 황제를 대면하고 공물의 경감을 강직한 말로써 극력 진정하다가 도리어 참소를 입어 금치국(金齒國)에 유배되었으나 사면되면서 천자의 정교한 금은 상감(象嵌) 도핵배(桃核杯)를 전세(傳世)의 보배로 하사 받아왔다. 보문각 직제학 벼슬을 역임하였고, 시문에 능하여 중국에서 읊었던 시가 중국인에게 회자되어 만리장성의 돌에 새겨졌으나, 공의 문집이 잦은 병화(兵火)를 겪으면서 유실되어 겨우 동문선, 명신록, 여지승람, 기아(箕雅) 등에 십여 수 남아있으며, 이는 정산사지(鼎山祠誌)에 수록되어 있다.

가돈재공(嘉遯齋公)의 휘는 의기(義起)요, 자는 의보(宜甫)이다. 공은 남보다 뛰어난 총명과 드넓은 도량을 지녔으나 은둔하여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정훈(庭訓)을 지키며 근신하였다. 이에 예의로 몸가짐을 지키고 성현으로 뜻을 세워 말과 행실에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스스로 경계하였기에 모양의 옛 읍지(邑誌) 행의(行義)편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가훈을 받들어 법도가 있었는데, 일찍이 어지러운 세상을 멀리하고 산수를 찾아 은둔하면서 명예를 구하지 않고 시례(詩禮)로 자적(自適)한 삶을 누렸다.”

ⓒ 하우람

삼오당공(三吾堂公)의 휘는 언징(彦徵)이요, 자는 휴백(休伯)이다. 양자로 들어가 양모를 효성으로 받들고 생부모 또한 효성을 다한 어진 사람이었다. 과묵으로 조신(操身)의 요체를 삼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을 보면 반드시 옷과 음식을 주었으며, 인서 인묵(仁恕 忍黙) 네 자로 行己의 종요로움을 삼아 선유(先儒)의 격언을 좌우명으로 하여 낮이면 바라보고 밤이면 외우며 몸을 닦는 공부를 일평생 게을리 아니함으로써 가문의 명성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특히 명나라 황제가 청간(淸澗)에게 하사한 도핵배(挑核盃)는 후손의 자랑이며 현재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정산사 외사문 및 돌담과 조경 단청은 조수환 정산사회장이 보수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선조의 좌우명을 실천하기 위해 조병채 삼오당회장을 비롯한 후손들은 산소 주변정리, 장학금지급, 종덕제 찬조금, 삼오당홍보 등 주요사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또한 선조에 대한 숭조정신의 함양과 종중 일가들의 화합 및 단합, 자산 확충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지난 4월 24일 15년 간 종회를 위해 봉사해온 조병채 회장과 종회임원들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총회를 통해 조병률 신임회장이 선출됐다.


ⓒ 하우람

鼎山祠歌(정산사가)
조창환(문학박사, 우석대학교 교수)

호남의 명문 창녕 조문
훌륭하신 삼현(三賢)이여
학문의 연원 뚜렷하네
사우 우뚝 세워 사림 함께 받들어
제향 올리고 높은 덕 나타내니
길이길이 명성 전하리

청간선생 너그러운 품성
학문이 넉넉하여
벼슬길 높이 올라 인륜 힘쓰고
홍범을 베껴 올려 치국 치민 보필하고
명나라에 건너가
과감히 공물 탕감 이루었네

가돈재공 일찍이 풍진 피하여
바른 뜻 펴기 위해
벼슬살이 경계하고
뛰어난 총명과 드넓은 도량으로
정훈을 지켜 언행을 삼가
후손에게 학문 가르쳤네

삼오당공 형제를 한 몸처럼
양자 들어 양모 받들고
생부모께 효성 다하였네
있는 것 없는 것 다해 남들을 보살피니
이를 미뤄 알리라
효행이 모든 행실의 근본인 것을


[시리즈 기획물]
①고흥류씨 13세 선조를 모시는 시정공 학산제
②화합과 단결로 생동감 넘치는 진주정씨 종친회
③충효쌍수(忠孝雙修) 정신의 청도김씨 종중
④숭조·화합·애족으로 하나되는 창녕조씨 종중

하우람 기자  holloh2@hanmail.net
“서해안시대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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