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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서원 스무제 서당 사적비 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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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창건 표성비, 행주대첩 순국비, 감모제 사적비, 김삿갓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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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3월 21일(화) 15:14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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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고창신문 | | ');지난 3월 16일 고창군 상하면 검산리 소재 계산서원에서 청도김씨 고창종중(회장 김재련) 주관으로 김기현 군의원, 송영래 고창문화원장, 백원철 고창문화연구회장, 조철웅 면장과 김승선 서울종중친목회장 ,김영대총무 김재평 종중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스무재 계산서당 창건 표성비를 비롯하여 행주대첩 순국비·감모제 사적비·김삿갓 시비등에 대한 제막식을 가졌다.
임진왜란 행주대첩 순국비는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4세조 응봉·응구공이 제종제인 몽룡과 함께 가솔 10여명을 이끌고 행주산성의 권율 장군의 휘하에 들어가 응룡·응구 형제가 왜적과 끝까지 싸우다 장렬히 순국하여 계산서원 옆에 두 분을 나란히 모셨다.
또한, 감모제 사적비는 청도 김씨중 가장 먼저 입향한 여의공은 성종 5년(1474) 문과 급제한 후 예조참판에 올랐다. 1498년 연산군이 무오사화를 일으키자 무장면 원당골로 낙향하여 12세조 징공이 상하면 검산리에 정착하면서 480년간 자작일촌하고 명문대가로 집성촌을 이루어 오고 있다.
계산서원 창건 표성비는 청도 김씨 시조인 영헌공 지대(之岱)가 고려 명신으로 고종때 건란의 침입에 아버지를 대신하여 종군하면서 지은 순두시가 유명하며 그 뒤 몽고의 침입에 병마사가 되어 적을 물리쳐 정난비를 세워 주고 오산군으로 봉한 후 영헌공을 청도의 남계서원에 향사하였다.
한편, 김삿갓(본명 김병연, 1807-1863년) 시비는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방랑시인으로 선천부사 김익순의 손자로 1811년 봉기한 홍경래의 난 때 그의 조부가 항복함에 굴욕감으로 벼슬을 단념하고 방랑생활을 하면서 퇴폐해 가는 세상을 개탄하며 풍자해학의 시를 남긴 사람으로 유명하며 상하면 감모제에 2번을 방문하여 지은 시중 한편을 비에 세겨 넣어 제막하게 되었다.
이날 제막식에서 종중회장 김재련은 ‘나무는 뿌리를 잘 북돋아 주어야 줄기가 잘 자라고 번성한다며 선영을 잘 받들어야 후손들이 잘 된다’고 강조하였다.
최형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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