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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생물권보전지역 탐방 - ⑧ 문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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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의자왕 4년(644) 자장율사가 창건한 문수사
천년 기도도량으로 천연기념물 단풍나무숲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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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월 23일(금) 22:40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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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백제 의자왕 4년(644) 자장율사가 창건한 문수사 전경 | ⓒ (주)고창신문 | | 문수산(621m)의 북쪽 기슭에 자리 잡은 문수사는 사적기에 의하면 백제 의자왕 4년(644)에 신라의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문수산은 여러 가지 명칭이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우리산, 『동국여지지』에서는 문수산, 『대동지지』에서는 축령산, 또는 청량산 등으로 부르고 있다. 문수산, 청량산 등은 절 이름에서 뜻하는 것처럼 문수보살과 인연이 있는 이름이다.
문수사의 창건 설화에 따르면 자장율사가 당나라 청량산에 들어가 삼칠일 기도를 거듭한 끝에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깨닫고 귀국하여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산세와 수세가 중국의 청량산과 너무도 흡사한 것을 기이하게 여긴 자장율사는 문수산 기슭의 자장굴에서 7일 기도를 올렸는데, 그때 문수보살이 땅속에서 솟아나는 꿈을 꾸어 땅을 파보니 화강석의 장대한 문수보살 입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곳에 절을 세우고 문수사라 이름을 지었다. 이로부터 축령산을 문수산, 청량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건너간 것은 선덕왕 5년(636)이며, 그로부터 8년 후에 귀국했다. 백제와 신라 두 나라가 정치적으로 심하게 대립되었던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과연 자장율사가 이곳을 통과하였는가는 의문이 있고, 신라 고승이 백제 땅에 와서 절을 세웠다는 기록은 쉽게 믿어지지 않는 부분이지만, 당시 불교의 세력을 보면 수긍이 가는 일면도 있다. 그러나 사적기에도 그 같은 창건 설화를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한다.
문수사는 창건 이후 고려시대 때의 역사가 전하지 않으며, 조선시대의 경우, 「축령산문수사중건사적」, 「문수사한산전중창상량문」, 「축령산문수사내원초창상량문」을 통해서 문수사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이 사적기를 보면, 선조 40년(1607)에 절을 중건했다 하나 자세하지 않고, 효종 4년(1653)에 성오대사와 승려 상유(尙裕)가 대웅전을 중창함과 동시에 대웅전의 삼존불을 조성하고, 명부전 시왕상의 단청을 했다.
문수사는 이후 2차에 걸쳐 더 중수되었는데, 영조 40년(1764)에는 신화, 쾌영 두 승려가 선운사로부터 이곳으로 이주하여 1차 중수를 하였고, 대웅전 뒤에 있는 양진암도 대웅전을 중수하면서 함께 창건했다. 그 뒤 헌종 1년(1835)에 당시 문수사 주지였던 우홍이 2차 중수를 하였다. 이후 고종 13년(1876)에는 고창현감 김성로의 시주로 승려 묵암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문수사에서 발간한 목판본으로는 태종 11년(1411)에 간행된 『대전화상주심경』과 세종 6년(1424)에 간행된 『영가진각선사증도가』와 중종 29년(1534)에 간행된 『법화영험전』 등이 있다.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불교가 소멸해 가는 시기에 불교와 관련된 서적을 간행하였던 것을 보면, 조선 전기 문수사의 규모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 문수사 대웅전
대웅전은 1974년 9월 27일 지방유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었다. 건립 연대가 확실하지 않으나, 순조 23년(1823)과 1876년에 중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다포계 건물로 기단은 자연석을 다듬어 쌓았고 기초는 덤벙주초를 사용하였다. 안에는 목조석가여래좌상을 주불로 안치하고, 왼쪽에는 대세지보살좌상, 오른쪽에는 관세음보살좌상을 안치하였다.
□ 문수사 문수전
문수전은 1974년 9월 27일 지방유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되었으며 대웅전 바로 뒤편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주초는 자연석을 이용한 덤벙 주초 이며 기둥은 민흘림 형식이다. 공포는 주심포 양식에 익공양식을 가미하여 짜여 있다. 지붕은 부연을 달아 겹처마 형식을 취하였다. 신화 화상이 영조 40년(1764)에 대웅전을 중건하면서 함께 세운 것이다. 문수전 내에는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 81호(2002.11.15)로 지정된 문수사 석조승상이 있다. 문수전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쓴 것이다.
□ 고창문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보물 제1918호인 문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인간세계를 교화하는 석가여래를 중앙에 두고 좌우에 동·서방의 정토를 다스리는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를 배치한 삼불형식을 보여준다. 삼불 형식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이후 황폐해진 불교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신앙적으로 크게 유행했다. 이 삼불은 1654년에 벽암각성(1575-1660)의 문도들이 주축이 되어 해심을 비롯한 15인의 조각승이 참여해 만들었으며, 이 시기 불교조각의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 고창문수사 목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 일괄
보물 제 1920호인 문수사 목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 일괄은 삭발한 승형의 시왕(十代王)으로 구성돼 있다. 제8대 평등대왕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 덕분에 1654년 3월 당시 불교계를 대표하던 벽암각성의 문도들이 주도한 불사임을 알 수 있으며, 대웅전 석거여래삼불좌상을 만들었던 해심 등 15인의 조각승들이 모두 참여했다.
□ 문수사 단풍나무 숲
문수사 단풍나무 숲은 2005년 9월 9일 천연기념물 제463호로 지정 되었으며, 문수산 입구에서부터 중턱에 자리한 문수사 입구까지의 진입도로 약 80m 좌우측 일대에 수령 100년에서 400년으로 추정되는 단풍나무 5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는 숲이다. 이 숲의 단풍나무 크기는 직경 30~80㎝, 수고 10~15m정도이며, 특히 흉고둘레 2m 이상 2.96m에 이르는 단풍나무 노거수를 다수 포함하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 문수사 부도
문수사 부도는 1997년 7월 8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5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문수사와 관련된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것으로, 문수사 대웅전을 지은 성오 스님과 상유 스님의 사리도 이곳에 모셔져있다. 대부분의 부도들은 받침대에서부터 맨 위의 덮개돌까지 모두 8각으로 이루어졌으며, 높이는 대략 2.5m 내외이다. 받침대 면에는 안상(眼象)을 새겼으며, 가운데에는 연꽃무늬를 장식하였다. 몸체는 모두 하나의 돌로 만들었고, 별다른 장식은 없어 보인다. 부도들 중 정면에 태극무늬를 새겨 빗장처럼 보이게 한 것이 특이하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조재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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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문수사 입구의 천연기념물 단풍 숲 | ⓒ (주)고창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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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문수사 대웅전 전경 | ⓒ (주)고창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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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문수전에 있는 석조승상 | ⓒ (주)고창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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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문수사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부도전 | ⓒ (주)고창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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