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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_고창생물권보전지역 탐방 ⑫- 미당 시문학관과 질마재

한국의 대표적 서정시인 미당 서정주 작품과 생애 한 눈에
시문학관, 생가, 묘소, 도깨비집, 웃돔샘, 질마재 등 소재

2017년 08월 19일(토) 14:25 [(주)고창신문]

 

↑↑ 서정주의 작품과 유품 등을 전시한 미당시문학관

ⓒ (주)고창신문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 소재하고 있는 미당시문학관은 우리고장 출신 미당 서정주의 문화적, 예술적 가치향유를 통한 문화 창달과 한국문학의 역사성과 우수성을 알리는 범세계적 시문학 순례지 조성을 목적으로 1997년 미당시문학관 건립추진위원회를 창립하였었다.
시 문학관은 이듬해인 1998년 6월에는 삼양사의 창시자인 수강 김연수 선생이 지은 선운초등학교를 군에 기부함에 따라, 부지 9,461㎡에 4동의 건축물을 정비하여 만들었으며, 2001년 10월 바로 한 마을에 있는 서정주 생가복원에 이어 그해 11월 3일 미당 시문학관을 개관하였다. 이 곳에는 미당의 작품 및 유물관, 작품 전시관, 전망대, 유품 및 세미나실, 관리실 등이 갖추어져 있으며, 육필 원고와 사진자료, 웅보 김기창 화백이 그린 초상화, 여러 가지 애용하던 서적과 물품 등 1만 5천여 점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매년 이 곳에서 미당 문학제, 전국학생백일장대회, 문학강연회, 심포지엄, 문학기행 및 세미나, 시화전시회, 시낭송회 등 다양한 행사와 추모하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미당 시문학관과 직선으로 100m 떨어진 곳에 미당 생가가 있다. 이 곳은 본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당이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주위 환경과 자연적 여건들을 받아들이며, 미당의 정서와 시 세계에 여러 영향을 미친 곳중 하나이다.
또한 200여m 떨어진 마을입구에 정미소가 하나 있었는데 현재는 없어지고 집터만 남아 있다. 이 곳은 미당의 외갓집으로 바로 밑에 까지 바닷물이 출렁이던 곳으로 마루에 앉으면 곰소만의 넓고 푸른 바다가 보였으나,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논이 되었고, 그때 당시 외갓집 집터와 고기잡이 등 생활에 사용하였던 조그마한 목선 3척만 전시되어 있다.
미당 시문학관이 있는 진마마을의 윗부분에는 도깨비 집과 웃돔샘이 남아 있다. 이곳은 미당의 시집인 질마재 신화에서 말피 도깨비와 부자 된 설 막동이네를 소재로 시에 등장한 배경이 되었던 곳이며, 웃돔샘은 삼년간 연속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으로 오래된 샘으로 이 곳에 얽힌 이야기를 소재로 간통사건과 우물이야기라는 시를 썻던 역사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한다.
시 문학관 건너편 마을 뒷산은 미당의 묘소가 양지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 곳은 곰소만은 물론, 소요산 아래 편쳐진 미당 생가와 시 문학관, 그가 살았던 진마마을의 동네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곳이다. 매년 묘소 밑과 주변에 국화를 심어 미당의 명작인 국화옆에서라는 시상을 생각하며, 국화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문학인들과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한다.
미당의 묘소가 있는 산 아래에는 부안면 안현마을이 자리 잡고 있으며, 돋음별 마을인 안현마을의 지붕과 담장에 온통 미당을 상징하는 국화가 그려져 있고, 살고 있는 집주인의 초상화를 담장에 그려 놓아 미당과 함께 한 삶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시집에서 나오는 지명인 질마재는 마을 뒷산인 소요산자락의 밑에 있으며, 질마재는 인근에 있는 여러마을 사람들이 부안면소재지에 가기 위해 넘나들던 길로 지금도 옛길이 그대로 남아 있다.
미당 서정주는 1915년 5월 18일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일제시대 때 근대교육을 받은 아버지 덕분에 비교적 유복하게 학문에 정진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 부안군 줄포보통학교로 진학하여 졸업하였다.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 후 2학년 때 광주학생운동 1주년 기념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퇴학당하고 구속되었으나 나이가 어려 기소유예 되었다. 그 후 편입한 고창고등보통학교에서도 권고자퇴 당하고 방랑생활을 하게 된다.
1931년 고승 박한영 대종사 문하에 입산, 서울 개운사 대원암의 중앙 불교 전문강원에 입학, 그 뒤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에서 수업을 받았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벽’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하게 된다. 김광균, 김동리, 김달진, 오장화과 함께 시 전문 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한다.
1941년 처녀시집 ‘화사집’을 발간하고, 1946년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면서 시분과위원장을 맡았다. 1948년 동아일보 사회, 문화부장을 거쳐 정부수립과 함께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을 역임하고,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를 창립하였고 시부위원장에 선임되었다.
1950년 종근이문단 결성, 1951년 전주 전시연합회 강사겸 전주고 교사, 1952년 광주 조선대학교 교수, 1954년 서라벌예술대학교 교수와 예술원 종신위원장으로 추천되어 문학분과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55년 미국아세아재단 자유문학상 수상, 1960년 동국대학교 교수, 1961년 시집 ‘신라초’로 5·16 문예상 수상, 1966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 1972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 불교문학가협회 회장 1977년 한국문인협회 회장, 1978년 경기대 대학원 초빙교수, 대한민국 예술원 원로회원, 1979년 한국문인협회 회장, 동국대학교 정년퇴임, 동국대 대학원 명예교수, 1980년 동아일보 문화대상 수상, 1984년 범세계 한국인예술가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2000년 12월 사망하였다.
주요시집으로 1941년 발간한 ‘화사집’, 1948년 ‘귀촉도’, 1953년 ‘흑산호’, 1961년 ‘신라초’, 1969년 ‘동천’, 1975년 ‘국화옆에서’, ‘질마재 신화’, 1984년 ‘노래’, 1987년 ‘이런 나를 아시나요’, 1988년 ‘팔할이 바람’ 1991년 ‘산시’ ‘미당 서정주 시전집’, 1993년 ‘80소년 떠돌이의 시’등이 있다.

↑↑ 미당 서정주가 태어난 진마마을 생가

ⓒ (주)고창신문

 

↑↑ 미당의 작품배경이 된 도깨비집과 웃돔샘

ⓒ (주)고창신문

 


















미당의 시 세계에 영향을 미친 것은 자연적인 요소와 인적인 요소로 나눌수 있는데 자연적인 요소는 생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요건을 갖고 있다.
옛날 이곳은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 와 포구가 형성되어 있었다. 미당도 눈만 뜨면 푸르고 곰소만의 넓은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고, 질마재를 넘을 때 마다 한쪽은 들판과 푸른 바다와 푸른 산이 있고, 다른 한쪽은 긴 계곡과 고창의 명산 방장산을 위용을 보면서 넘나들던 길이 질마재이다. 또한 어릴 적 가파른 소요산 정상을 오르면서 태고의 자연을 보고, 넓은 바다와 포구를 보고, 산을 보면서 호연지기를 배웠을 것이다.
이렇게 왕성한 활동으로 한국의 대표적 서정시인으로 평가되고 탁월한 언어감각으로 한국 시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일제와 군부 독재에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우리민족의 삶을 외면하고 친일, 친독재의 길을 걸었던 것은 비판적인 요소는 갖고 있다.
미당은 일제 식민지시대에 여기 저기 기루하다 만주로 방랑하고, 한동안 간도에서 양곡주식회사 경리사원을 한 적이 있고 용정에도 가 있었다. 미당은 1942년부터 행방 직전까지 평론, 수필, 시 등을 통해 친일을 했으며, 대표적인 친일시는 마쓰이 오장 송가이다. 이 시기에 쓴 것으로 인해 친일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로선 미당 서정주에 대해서는 누가 뭐래도 사실은 사실대로 받아들이고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아 가면서 우리 모두가 참된 역사의식이 무엇인지, 잘못된 역사와 빼 앗긴 시간들로 어떤 피해를 보았는지를 다시 반성하고 청산할 것은 청산하고 활용할 것은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잘 된 것도 역사이고 잘 못된 것도 역사이다. 잘 못된 역사는 정확히 평가하여 후손들에게 교훈을 주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당시문학관을 중심으로 펼쳐진 곰소만속에 배를 이용하던 조그만 포구이던 좌치나룻터, 시상속에 배경지인 질마재와 도깨비집·웃돔샘, 선운사와 연결된 소요산, 미당묘소, 생가, 외갓집, 질마재권역 문화센터, 질마재권역 시문학 체험관, 국화밭 등을 이용하고, 인근에 있는 선운사, 소요사, 인촌생가 등과 연계하여 관광자원으로 잘만 활용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가꿀 수 있고 유익한 자원으로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조재길 전문기자

↑↑ 안현마을 뒷산에 있는 미당의 묘소

ⓒ (주)고창신문

 

↑↑ 돋음별 마을인 안현마을 주민들의 벽화

ⓒ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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