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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생물권보전지역 탐방⑬-고창 오거리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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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 풍수피해 막기 위해 다섯 방향에 당산 세워
중앙·상거리·중거리·하거리·교촌리 당산, 현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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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8월 29일(화) 15:08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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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고창문화의전당 앞 야외공연장 부근에 있는 중앙당산 | ⓒ (주)고창신문 | |
고창읍은 동쪽으로 고창을 상징하는 방장산(方丈山)이, 북쪽에 고창고 뒤쪽의 성산(聖山), 동남쪽은 장대봉을 안고 있는 고창읍성으로 둘러져 있어 지세가 높고, 서남으로 바다를 향해 트인 지형으로 고창읍의 지형을 행주형국(行舟形局)이라 한다. 고창읍에 비가 오면 홍수로 인한 풍수피해를 막기 위해 고을의 자연 입석보다 더 큰 석간으로 읍의 상거리, 안거리, 중거리, 하거리, 교촌리 등 동, 서, 남, 북, 중앙의 오방(五方)에 당산을 세워 돛대 역할을 하도록 하면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해서 세우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 중기에 고창읍 전체적으로 많은 비가 와서 큰 홍수피해를 입은 때가 있었는데, 풍수지리를 밝은 사람이 읍을 지나가다 행주형국인 고창읍내의 오거리에 당산을 세우면 풍수피해를 막을 수 있다 해서 고을의 안녕을 위해 조선 순조 3년(1803)에 세웠다고 한다.
상거리당산은 동쪽의 끝부분이었던 고창읍 천북동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당산을, 중거리당산는 남쪽방향인 남부에는 경안교회 입구에 할아버지당과 할머니 당을, 읍의 중앙에 세운 중앙당산은 문화의 전당 앞 야외공연장 옆에 할아비지 당산을, 하거리당산은 서쪽방향의 끝자락이던 신흥동에 할아버지당과 할머니 당을, 북쪽이던 교촌리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들당산 등 다섯 방향에 세웠다.
이 곳 각 쌍의 당산을 할아버지 당, 할머니 당으로 불렀으며, 처음에는 5 곳 모두 자연석을 세웠으나 풍수지리설에 따라 중앙과 남, 서쪽 방향에는 기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화강암 기둥모양으로 다듬어서 세웠다고 한다.
중앙동에 세워진 중앙당산은 당초 고창읍 매일시장이 있던 중앙통 역할을 했던 곳에 세웠으며, 할아버지당으로 석간의 하부 전면에 음각자가 있다. 시주(施主) 김양봉, 이명득, 차도욱, 신광득과 화주(化主) 김성택, 차도평, 노귀련, 위은경, 가경팔년계해윤이월초십일(嘉慶八年癸亥閏二月初十日)로 기록되어 있어 가경팔년은 순조 3년(1803)으로 이 때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곳 중앙당산은 높이가 375cm의 화강석이며, 일제강점기 말까지 할머니당산인 나무가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석간만 남아있다.
읍의 동쪽에 있는 상거리당산은 끝자락이던 고창읍 천북동의 뒤쪽인 고창천 부근에 입석과 당산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할아버지당산인 입석과 나무가 결합된 형태이며 할머니당은 팽나무이다. 마을 바깥쪽 길가에 있는 자연입석은 아들당산 또는 큰부인 당산이라 한다. 상거리 당산제는 정월 초하룻날 마을과 기노사가 참여하여 당제를 지냈다 한다.
읍의 남쪽에 세워진 중거리당산은 고창읍 읍내리 경안교회 입구에 있으며, 높이 382cm의 화강석 선간 형태이다. 상부에 사각 모양의 갓을 씌운 모습으로 할아버지 당산이라 부른다. 이 석간에는 천년완골흘연진남 계해삼월 일(千年頑骨屹然鎭南 癸亥三月 日)이라 새겨져 있어서 고창읍의 남쪽 방위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매년 음력 대보름날 자시에 마을주관으로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6·25전까지 지냈다고 전하고 있다.
하거리당산은 서쪽방향 끝자락이던 고창읍 신흥동 유정여관 앞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당산은 화강암으로 높이 670cm의 사각 석간형태이다. 석간에는 진서화표가경팔년 계해삼월 일(鎭西華表嘉慶八年 癸亥三月 日)이라 새겨져 있어 이 당산이 서쪽 방위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고 석간 위에는 사각의 갓이 올려져 있어 할아버지 당산임을 알 수 있다. 화표 옆에는 팽나무와 고창읍내 수구입석비(高敞邑內 水口立石碑)가 있다. 팽나무는 할머니당산으로 여겨지며 입석비도 당산으로 일컫기도 한다.
교촌리당산은 본래 할아버지당산은 고창고 앞의 길가, 할머니당산은 고창고안, 아들당산은 향교 서편에 각각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원래의 당산은 모두 없어졌다. 현재의 당산은 고창읍 교촌리 구, 군수 관사 부근에 1984년도 세운 석간형태로 ‘진북화표(鎭北華表)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이당산은 할아버지 당산이며, 마을 안쪽에 아들당산을 옮겨와 자리하고 있다.
5 곳의 당산 중 당초 세워진 대로 보존이 되고 있는 중앙동당산, 중거리당산, 하거리당산은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69년도 국가지정 문화재인 중요민속자료 제14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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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남쪽인 고창읍 경안교회 입구에 자리한 중거리당산 | ⓒ (주)고창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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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북쪽인 고창읍 교촌리에 있는 교촌리당산 | ⓒ (주)고창신문 | |
당초에 당산제는 당산이 있는 부근의 마을에서 주관하여 동제로 모셨다. 당산제는 당초 음력 정월 초하룻날이나 정월 보름날 지냈으며, 마을에 상을 당하거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이월 초하룻날 모셨다. 제사를 지낼 때 제관과 유사는 생기법으로 본 길일(吉日)과 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의 간지(干支)를 팔괘(八卦)로 나누어 가린, 길한 일진(日辰)의 날이 맞는 사람으로 선정하고 나서 제물을 준비한 다음 유교식으로 간단하게 제사를 지냈고 지금도 동제를 지내는 마을이 있어 현재가지 전승되고 있다.
현재는 오거리당산보존회가 조직되어 여기서 주관해서 오거리당산제를 지내고, 당산제는 통합해서 매년 정월 보름날 보존회가 주관해서 중앙동당산이나 중거리당산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제관은 삼헌관(초헌, 아헌, 종헌), 축관, 집사를 선정하고 농악단의 굿판을 아우른 다음 진설, 헌작, 재배, 독축, 소지, 음복 순으로 유교식으로 진행된다. 제사가 끝난 후 연등놀이와 줄다리기, 당산 옷입히기 등을 진행하는데 줄다리기는 남자와 여자로 편을 나누어 세 번에 걸쳐 실시하며, 줄다리기를 결과 여자가 두 번 이기면 그해 농사가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어 항상 여자가 이긴다. 줄다리기가 끝난 후 당산 옷 입히기를 하는데 제사를 지낸 당산에 줄을 감는 것을 말하고 이때 감아 놓은 줄은 다음해 행사가 있을 때 까지 그대로 놓아둔다.
고창오거리당산제는 2006년 6월 전라북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해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 10월 문화관광부 주최 제47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이를 계기로 오거리당산제가 현재까지 전승 보전되고 있으며 문화의 독특함과 고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오랜 민속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7월 27일 전라북도무형문화제 제37호로 지정받았다.
현재도 매년 개최하는 오거리당산제는 정월 보름날 개최하고, 모양성제 등 축제 시 시연을 통해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214년 전에 세웠던 고창오거리당산은 통해 고을의 안녕과 풍년농사를 지으려는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여 길이길이 보전해야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조재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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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쪽인 고창읍 신흥동에 위치한 하거리당산 | ⓒ (주)고창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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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동쪽인 고창읍 천북동에 위치하고 있는 상거리당산 | ⓒ (주)고창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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