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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생물권보전지역 탐방 ⑭-고창의 판소리

동리 신재효 태어난 고창, 판소리 성지
국내최초 여류명창 진채선, 김여란, 김소희 등 배출한 고장

2017년 09월 19일(화) 15:49 [(주)고창신문]

 

↑↑ 민속자료 제39호인 동리 신재효의 고택(고창읍성 입구)

ⓒ (주)고창신문


판소리는 조선 중기 이후 특유의 곡조를 토대로 발달되었다. 소리꾼이 고수의 장단에 맞추어 일정한 이야기를 소리와 몸짓을 곁들여 서너 시간에 걸쳐 노래를 부르는 행위예술형태의 한 갈래로, 오랜 수련을 통해 득음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부를 수 있는 가치가 큰 예술이며, 우리의 정서와 민속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화이다.
판소리는 유네스코(UNESCO)에서 소멸 위기에 처한 문화유산의 보존과 재생을 위하여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의 확인·보호·증진을 목적으로 2003년 11월 7일 세계무형유산에 등록하였다.
고창은 판소리의 집대성하고 체계화 시킨 동리 신재효와 김수영, 김창록, 김찬업, 진채선, 김토산, 김성수, 김여란, 김소희 등 명창을 배출한 곳이다.
판소리의 유파를 3파로 볼 때, 고창출신 명창을 보면 동서 구분이 없다. 김수영, 김창록, 김찬업 명창은 동편에 속하고 신재효의 문하 김세종, 박만순, 정창엽은 동편에, 이날치는 대표적 서편에 속한다. 진채선도 동편으로 분류된다.
우리고장은 고려 건국 이후 공신들에게 내려진 사전(賜田)이 많아 그 후손들이 대거 낙향해 정착하고, 사로를 등진 불사이군의 충절의식이 투철한 선비들의 은거지다. 일찍 판소리문화를 꽃피운 것은 소리꾼에 대한 이해와 이들과 상호유대, 내면 욕구충족이 조화를 이루면서 오랫동안 소리꾼들을 보호해 주는 대부역할과 안식처를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동리 신재효 선생

ⓒ (주)고창신문

 

↑↑ 한국 최초 여류명창 진채선

ⓒ (주)고창신문

 




















□ 판소리 여섯마당 집대성자 동리 신재효
신재효의 선대는 서울에서 살았으나 부친 신광흡은 경주인으로 있다 고창으로 내려와 향리가 되었고 관약방을 운영했다. 신광흡과 어머니인 경주김씨 사이 1남 3녀 중 외아들로 1812년 11월 6일 태어났다. 고창에서 아전을 하다 말년에 관속, 광대, 기생을 관리 감독하는 호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판소리, 춤, 기예는 익숙했다. 물려받은 유산을 불려 천석지기가 된 후.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이 도움을 청하면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본래에 있던 판소리 열두마당 중 판소리 여섯마당인 “춘향가·심청가·수궁가·흥보가·적벽가·변강쇠타령”의 사설을 정리하고 개작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또한 오섬가, 광대가, 허두가, 치산가, 성조가, 단잡가, 도리화가, 권유가, 방아타령, 명당축원, 호남가, 구구가 등 단가와 시가를 창작하였다.
판소리 이론으로 인물, 사설, 득음, 너른새 등 4대 법례를 만들어서 역대 명창들의 특색을 비유 방식으로 평가하였으며, 이론도 판소리 향유자들의 취향에 대응해서 나름대로 독자적인 틀을 정립 하였다.
신재효 문하에는 순창출신 김세종, 정읍출신 박만순, 서편제 대표적 소리꾼인 담양출신 이날치, 함평출신 정창업, 부안출신 전해종, 진채선 등을 배출하였다.

□ 고창지역의 명창
☞ 김수영-흥덕면 출신으로 신재효 문하에 있던 박만순, 이날치의 동배로서 명성 높은 명창이었다. 서편 소리를 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중모리를 특히 잘하고 수궁가중 토끼가 수궁가는 대목을 가장 특징적으로 잘했다고 한다.
☞ 김창록-무장에서 난 명창이다. 후에 흥덕에서 80세까지 장수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조선창극사에 의하면 철종·고종 대에 활동하였으며 동편제 소리로는 박만순, 김세종에 뒤떨어지지 않는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 김찬업-명창 김세종의 아들로 박만순, 김세종 대명창에게 배웠으며, 김창록과 함께 조선 후기 명창으로 쌍벽을 이루었다. 김세종은 춘향가를 정응민을 가르쳤고, 정응민은 정권진, 조상현, 성우향, 성창순에게 전승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 진채선-1847년(헌종 13) 심원면 월산리 검당포 출생하여 신재효 문하에 들어가 김세종으로부터 배웠으며, 신재효와 끈끈한 사제관계를 맺게 되었다.
1867년(고종 4) 경복궁 경회루 낙성연에 대중 앞에 선보이게 되었으며, 이일을 계기로 대원군 집에서 대령기생으로 기거하였다. 신재효는 한양에 간 진채선이 돌아오지 않자 그녀를 그리며 ‘스물네 번 바람 불어 만화방창 봄이 되니...’로 시작하는 유명한 도리화가를 만들었다.
☞ 허금파-고창출신 최초 여류명창 진채선 이후 두 번째로 등극한 여류명창이다. 고창에서 출생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원각사 활동 이후에 고창으로 이주하여 고창에서 활동하다가 고창읍 월곡리 산 108-1번지에 묻혔다고 한다.
☞ 김여란-1907년 고창군 흥덕면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판소리에 남다른 재주가 있었고, 열 살 때 근처에 사는 김비취에게 시조와 가곡을 배웠다. 김봉이에게 심청가와 정정렬에게 춘향가, 적벽가 등을 모두 배워 득음의 경지에 이르렀다. 1929년 대구에서 판소리발표회 때 아홉 차례나 재청을 받았다. 해방 후 서울민속예술학원을 설립해 후진양성에 주력하고, 1957년 확장해서 수도국악예술학원으로 승격시켰으며,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받았다.
☞ 김토산-1871년 지금의 흥덕면 후포리 뒷개마을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한테 7세 때부터 판소리 다섯마당을 사사받았으며, 할아버지는 서편제 대가 이날치로부터 배웠다. 김토산은 주로 고창과 정읍을 무대로 활동했다. 제자로는 김성수를 두었으며, 한때 임방울에게 「수궁가」를 가르쳐 주었다.
☞ 김성수-법성포에서 태어났으나 심원면 월산리 검당마을로 이사와 성장하였다. 집안은 대대로 음악에 종사해 할아버지(김기운)는 대금 명인, 아버지(김용달)는 판소리를 잘 불렀고, 고모 김추월은 시조 명인으로 유명했다. 어려서부터 음악집안에서 성장해서 소리꾼의 길을 갈 것으로 보이나, 불편한 다리 때문에 "명창은 첫째가 인물치레"라는 난관을 극복하고 끝까지 소리꾼으로 살아 남았다.
☞ 김소희-1917년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에서 태어났다. 13세 때 송만갑(宋萬甲)에 입문하고 정정열, 정응민 등에게 사사하였다. 한성준에게 살풀이, 1934년에 정정렬 문하에서 판소리를, 김종기에게 가야금과 거문고를 배워 소리·춤·기악을 두루 익혔다. 1936년에는 최초로 정정렬, 임방울과 함께 춘향가를 녹음했고, 판소리 여섯마당도 모두 녹음했다. 1939년부터 화랑창극단 참여와 조선성악연구회에 가입하고, 박귀희와 함께 여성국악동호회를 조직했다. 1962년에 유럽과 1964년에 미국공연 때 독특한 창법으로 찬사를 받는 등 전통예술을 보급하는데 앞장섰다.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받았다.

↑↑ 김소희 생가

ⓒ (주)고창신문




↑↑ 판소리박물관

ⓒ (주)고창신문




□ 판소리 관련 시설
판소리박물관은 동리 신재효와 고창출신 명창을 기념하고, 판소리를 계승 발전시키고, 유,무형의 판소리 자료를 수집·보존·조사·연구·전시하고자 고창읍성 입구에 2001년 6월 25일 개관했다.
동리국악당은 고창읍성매표소 옆에 있으며, 동리 신재효 선생을 기리고 판소리를 보급하고자, 350석 규모의 공연장으로 판소리 등 문화공연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지하에는 작은 영화관인 동리시네마가 자리하고 있다.
판소리전수관은 고창읍성 동리국악당 우측에 자리한 건물로 판소리, 고법, 농악 등 후진을 양성을 위한 교육관으로 2009년 건립하였다.
신재효 고택은 고창읍성 입구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동리 신재효가 판소리 여섯마당을 집대성하고, 소리꾼들을 가르치고 이론을 정립한 역사적인 장소로 중요민속자료 제39호로 지정되어 있다.
진채선 생가는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 검당마을에 위치한 곳으로 우리나라 최초 여류명창인 진채선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 던 생가이다. 원 건물은 없어지고 생가터로 보존하고 있다.
김소희 생가는 흥덕면 사포리에 소재하고 만정 김소희가 태어난 곳이다. 그 녀의 묘소는 고창읍 화산리에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조재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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