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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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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에 최선
평화의 소녀상 건립과 일본대사관 앞 수요 집회 참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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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04일(수) 22:20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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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고창신문 |
□ 나눔의 집이 어떤 곳이며,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1990년대 일본군 송로회 피해자 문제가 세상에 알려졌고, 1991년 8월 14일 작고하신 고,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자기고백 하고, “내가 끌려간 피해자인데 일본인들이 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살 만큼 산사람으로 일본의 사과를 받아 내겠다”며 용기 있게 나서 위안부가 사회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때만 해도 성차별과 성폭력피해자들이 나서기 어려운 시대였으나 용기 있는 피해 할머니들이 나서 생생한 증언과 증언을 녹취하고, 증언 집을 발간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991년 12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실무소위의 불교인권위원회 총무간사였던 혜진스님이 위안부할머니들을 위해 나눔의 집을 제안하였고 불교인권위원회(위원장 송월주스님)가 주축이 되어 각계각층의 성금을 모아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전세로 집을 마련해 1992년 10월 개원하여 6명의 할머니를 모시고 생활하던 중 주위의 냉대와 할머니들이 참여를 꺼려 서울 명륜동과 혜화동으로 옮겨 다녔다. 현재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부지를 조영자씨가 희사해 1995년 12월 영구 이전하여 9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생활하고 있다.
나눔의 집에서는 할머니들에게 한글과 그림수업, 피해 증언, 일본만행 자료수집과 홍보, 일본대사관 앞 수요 집회 참여 등 역사적 진실규명과 국제평화인권센터와 연계한 위안부 자료전시, 여성폭력실태조사 및 연구, 유물전시, 홍보, 교육, 인권 프로그램개발, 여성인권운동 등을 추진하고 있다.
□ 일분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 사례는?
금년 7월 세상을 떠난 김군자 할머니는 17세 때 중국의 일본군 전쟁터에 끌려가 수많은 일본군을 상대하면서 너무 끔직 하였다 증언했다. 인권유린 수치로 7번이나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주위에서 발견해 죽지 못했으며, 전쟁이 끝날 무렵 7명의 동료 할머니들과 일본군 위안소에서 도망쳐, 40일간 걸어서 한국으로 오던 중 두만강을 건너던 동료할머니 한분이 물에 떠내려가 죽었다며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 왔었다.
생존하고 계시는 이옥선 할머니는 16살 때 중국으로 끌려가, 전쟁이 끝난 후 살아남기 위해 애가 딸린 중국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던 중, 1993년 한중 수교 후 중국 방문시 발견하였으며, “위안소는 사람 사는 곳이 아니고 사람을 죽이는 도살장이었다. 말을 듣지 않는다고 칼로 찌르거나 손발을 자르겠다고 위협하였다”고 증언했다.
배봉기 할머니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발견되었으며, 이 곳은 당초 일본 땅이 아니었으나, 일본군 본토방어의 최후 방어선을 구축한 곳으로 “위안부들의 한이 서린 아리랑고개, 자살바위가 있는 곳이다”고 증언했다. 1972년 일본에 오키나와를 반환할 때, 할머니는 무국적자로 추방될 위기에 처하자 위안소 위치, 구조, 생활 등을 증언하고 위안부였음을 밝혔다고 한다.
□ 일제강점기 위안부와 관련한 문제점은?
위안부 용어는 관료 중심적 용어이다. 피해 할머니들은 위안부가 아니고 전쟁의 피해자라 말한다. 나눔의 집을 찾는 많은 외국인들도 위안부라는 말에 깜짝 놀란다. 이 문제는 일본과 외교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이다. 유엔 산하 국제인권위원회에서 일본을 전범국가로 규정했는데도 일본의 역사의식과 인권의식 부재로 풀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전후세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올바른 역사와 인권을 교육하고, 역사현장 체험 등을 교육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위안부 협상을 합의했다고 발표했는데, 앞으로 일본과 협의는 어떻게 해야 되나요?
일본의 공무원, 외무성, 대사관 직원들을 만나 보았다. 지난 1965년 대일청구권으로 모든 보상이 끝났다고 말한다. 대일청구권보상은 재산권에 관한 문제라고 반론을 제기하였으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유린과 성범죄는 1992년에 밝혀진 반인륜적 전쟁범죄로 개인청구권이 포함되지 않은 사안이다.
박근혜정부의 협상합의는 피해당사자인 할머니들의 동의 없이 한일 양국의 정치권 야합으로 만들어 낸 불법협상으로, 피해자 중심의 개인청구가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은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 하나요?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송로회 피해자들의 분신으로 이를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여야 정치적 이념 없이 남녀노소가 참여하는 합의체로 범국민적 협의기구인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평화의 소녀상 의미는 일본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인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이다. 2013년 캘리포니아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기 이전에는 미국의 전후 세대들이 일본을 잘 모르고 있었으나 건립 후 전쟁국가, 반인륜적 행위를 알게 되는 동기를 부여하였다.
기회가 주어지는 데로 국내와 국제적 연계를 통해 더 많은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추진해야 한다.
□ 일제강점기 위안부, 근로정신대, 강제징용 등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고창군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먼저, 고창에서도 민간단체 주도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추진 중에 있으며, 오는 12월 제막할 예정에 있어 군민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린다.
역사는 올바르게 기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본의 만행을 잘 모르는 전후세대를 위해 평화의 소녀상 옆에 적은 돈으로 세울 수 있는 근로정신대와 강제 징용자에 대한 기림비를 세워, 일본의 만행과 역사적 사실을 기록해 교훈으로 삼아야 하고, 뼈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미국처럼 역사 중심의 선진국가로 발돋움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김희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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