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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경제활성화-대흥농기계상사 정영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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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정확한 일처리로 고객의 신뢰 쌓아
친절한 서비스 제공으로 35년간 농기계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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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1일(토) 15:09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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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고창신문 | | 고창군 고창읍 동리로 14에 소재하고 있는 고창대흥농기계상사는 정영섭(61) 대표가 25년째 중소형농기계 판매는 물론 수리와 정비를 하며 지역농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터전이다.
정 대표는 성송면 산수리 외원마을에서 5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고창에서 중고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던 중 80년대 초에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에서 생활하기 위해 고창으로 내려와 생활하게 되었다.
내려올 당시만 하더라도 농업기계화와 과학영농을 진행하던 시대로 농사보다는 안정된 직장을 구하던 중 농기계사업이 전망이 좋고 보람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어 1982년부터 국제농기구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10년간 근무하였다.
지난 80년대만 해도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반값농기계와 농기계 지원사업을 시작하던 시기로 대형농기계를 취급하던 업체가 많지 않았으며, 트랙터, 콤바인, 경운기, 이앙기 등을 어려움 없이 판매사업에 전념하였으며, 군내 구석구석을 누비며 많은 농민들과 애환을 함께 하면서 사업능력을 발휘하며 인간적인 관계도 순조로워 차츰 신뢰가 쌓여 갔다.
그러나 자녀들이 성장하고 생활하면서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되고, 노후를 생각했을 때 나이가 든 후에도 할 수 있는 직업이 필요하다고 느끼면서 개인사업으로 전환하고자 결심하고 과감하게 직장생활을 그만두게 되었다.
여러 분야를 놓고 사업성과 경제성 등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농가들과 친근감을 활용하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던 부모님 생각에 가장 안정적으로 쉽게 갈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1992년 2월 고창읍에서 개인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25년째 대흥농기계상사란 상호를 현재까지 사용하며 중소형 농기계판매와 수리, 정비사업에 정진하고 있다.
누구나 그러하듯 처음부터 사업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개인사업을 시작한 후 고객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신속한 일처리를 위해 새벽까지 농기계의 정비를 하는 것은 다반사였으며, 처음부터 농기계의 정비에 능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면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배워야만 하였다.
또한 농기계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아날로그방식에서 디지털화 되어 왔고 고장 수리와 신속한 서비스를 위해 항상 기술력에서 전문성을 갖지 못하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강박감 때문에 기술습득에 남다른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어느 정도 자신감을 되찾으면서 취급하는 농기계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평소 성실하고 친절한 봉사와 판매 후에 출장할 때마다 농가를 찾아가 쓰면서 불편이 없는 지 꼼꼼히 점검해 주고, 농기계의 고장으로 가게를 찾는 농민들에게 최대한 신속하고 정확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데 모든 노력하였다.
대형농기계인 트랙터, 콤바인, 경운기, 이앙기 등을 제외한 중소형 농기계인 곡물건조기, 관리기, 예초기, 분무기, 양수기, 파종기, 비료살포기 등 많은 기종과 다양한 제품을 고객의 눈높이에 맞추어 판매하고, 고장이 나면 빠른 시간에 고쳐주는데 최선을 다해 왔다.
오랜 시간 사업을 성공적으로 끌고 올수 있었던 비결은 항상 “손님은 왕이다”는 생각을 잊어버린 적이 없고, “내가 판매한 제품은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신념을 갖고, “가격과 별도로 정확한 제품을 공급”하고 “고객이 믿고 쓸 수 있는 신뢰구축”에 두고 운영해 왔다.
또한, 그동안 사업을 하면서 농민들께서 많이 이용해 주셨기에 오늘이 있으며, 순조로운 사업으로 2남 1녀의 자녀들도 훌륭하게 성장해서 결혼까지 마무리해서 항상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하였다.
그동안 현장을 누비면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농민들이 피땀 흘려 지은 농사가 가격폭락으로 제값을 받지 못하거나, 자연재해가 발생되었을 때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을 때라고 한다. 요즘에는 농업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인력난과 수입개방에 따른 쌀값의 폭락, 정부지원 감소 등 농촌지역의 농업환경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어 걱정이다 하였다.
정 대표는 지역과 상생발전을 위해 소리 없이 사회봉사 활동을 해왔다. 군 단위 봉사조직인 형우회와 56동우회에서 활동하며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고창경찰서 성송파출소의 생활안전협의회 위원 등을 하였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일할 수 있다는 보람이 더 커질 것으로 생각하고 사업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여, 힘이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현재의 사업을 이끌어 갈 계획이라고 하였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데도 손에 기름 묻히면서 힘든 일은 안하려는 풍토가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어 걱정이 많다고 하였다.
농촌경제 활성화를 위해 농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35년간 운영하면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과 욕심내지 않는 평정심을 갖고 운영해 오고 있어, 힘든 일을 싫어하고 기피하는 젊은이들에게 사회적인 귀감이 되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김희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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