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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 정치·행정·교육 일번지, 고창읍 교촌리

고창군청·고창군의회·교육지원청·초중고교 등 소재

2018년 03월 13일(화) 18:12 [(주)고창신문]

 

↑↑ 고창군 정치,행정,교육의 일번지 교촌리의 전경

ⓒ (주)고창신문

고창읍 교촌리는 고창군의 정치·행정·교육의 1번지로 불리어지고 있는 마을이다. 교촌리는 고창읍 북쪽방향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읍에서 고창읍에 진입하는 성두삼거리를 지나 새마을공원 쪽으로 들어오면서 좌측에 있는 성산을 중심으로 산 밑에서 청하아파트 및 진흥 2차아파트를 거쳐 새마을공원과 고창여중·고와 드림스타트, 성강주유소, 고창군청, 고창읍사무소을 지나, 고창문화원, 동부교에서 실내체육관, 선거관리위원회, 고창등기소, 고창우체국이 있는 브럭에서 구, K마트, 아로마 아파트, 고창향교, 고창고까지 포함해서 넓게 형성되어 있는 곳이다.
지형을 살펴보면 고창의 대표적 명산인 방장산의 행글라이딩장이 있는 벽오봉(640m) 에서 서쪽을 타고 내려온 준령이 제일아파트 뒤 4차선 지하차도를 건너 우측을 따라 필봉을 거쳐 고창고등학교 뒷산인 성산(聖山,125m)에 머무르며, 좌측은 월곡리가, 서쪽에는 석교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교촌리 행정분리는 교촌(校村), 입석(立石), 교신(校新), 성덕(成德), 교흥(校興), 청용(靑龍), 청남(靑南), 청하(靑河), 용주(龍珠) 등 9개 마을로 세대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교촌마을은 월곡리 학당동에 있던 고창향교가 비좁고 협소하며, 누습으로 조선 선조 22년(1589)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오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어 약 429년 전에 이미 마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교촌리는 각급 행정기관과 군의회, 교육지원청, 초·중·고교, 민간단체, 문화유적 등이 소재하고 있어 고창군 행정과 정치·교육의 중심지로 군내에서도 가장 많은 공무원이 근무하고,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고창군 핵심지역이다.
고창군은 1896년 전라도가 남·북도로 나누어질 당시 전라남도에 속해 있었다 1907년 흥덕, 무장 두 고을과 함께 전라북도에 편입되었다. 이후 1914년 고창, 무장, 흥덕 3개 군을 통합하여 오늘날의 고창군이 형성되었다.
고창군청이 현 위치에 자리 잡은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12월 6일 일본식 건축양식으로 신축 이전하면서 부터이며, 현재의 건물은 1993년 10월 23일 신축한 건물이다.
고창군은 1읍 13면, 189개리 563개 분리가 있으며, 금년 1월말 현재 28,919세대, 59,063명의 군민들을 위해 한해동한 5,379여 억원의 예산을 집행하고 있는 곳이다. 행정기구는 본청은 2실, 12과, 72개 팀, 328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2직속 기관, 4사업소, 1읍, 13면을 운영하고 있으며 공무원 총 정원은 728명으로 아름답고 청정한 명품고창 만들기에 정진하고 있다.
고창군은 1945년 광복이후부터 46대 군수가 부임하였으며, 관선군수가 임명된 것은 광복이후∼1995년 6월 30일까지 40대 군수까지이고, 1995년 7월 1일부터는 지방선거에서 선출된 민선군수가 부임해서 41∼42대 이호종 군수, 43∼45대 이강수 군수, 현재 46대인 박우정 군수에 이르고 있다.
고창군의회는 1990년 12월 31일 지방자치법 개정에 따라 자유 평등과 정의라는 의회 민주주의와 지방자치라는 이념을 구현하고 시대적 요청에 다라 지난 1991년 4월 15일 제 1대 고창군의회가 출범한 후 현재는 제7대 의회가 금년 6월말까지 운영되고 있으며, 의회 청사는 군청사와 함께 연결되어 있다.
의회의 가장 큰 권한인 의결권으로 조례의 제정·개정·폐지, 예산 심의 확정, 결산 승인, 기금설치 운용, 법령규정 외의 사용료, 수수료, 분담금, 지방세 또는 가입금의 부과와 징수, 중요재산 취득 처분과 행정의 감사권, 자료제출권, 출석 요구권, 질문권 등 다양한 권한을 갖고 있다. 출범 때 15명이던 군의원은 10명이며, 조직은 의장1, 부의장1, 상임위원회 3개로 운영위원회, 행정자치위원회, 산업건설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고창교육지원청은 1952년 12월 31일 교육자치제가 실시되었으며, 1959년 9월 2일 현청사 위치로 이전하였다. 1962년 1월 1일 잠시 교육자치제가 잠정 폐지되었다가 1964년 1월 1일부터 다시 부활되어 현재 22대 김국재 교육장이 부임하면서 “21세기를 선도하는 창의·인성을 겸비한 인재육성”에 교육지표로 “배움과 나눔을 함께하는 행복한 교육 공동체”육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밖에도 고창우체국은 1905년 6월 6일부터 고창임시우편소를 개소하면서 1949년 8월 13일 고창우체국으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현 청사는 2002년 8월 19일 신축이전 하였다. 우체국에서는 우편물, 우편환, 택배, 예금, 보험 등의 업무를 취급해 오고 있다.
고창등기소는 1916년 11월 15일 광주지방법원 고창출장소를 설치하여 1948년 6월 1일 전주비방법원 고창등기소로 개칭하였으며, 1977년 1월 1일 전주지방법원 정주지원 고창순회심판소를 설치하여 운영해 오다 1995년 9월 1일부터 전주지방법원 정주지원 고창법원으로 개칭해서 현재에 으르고 있으며, 현 청사는 1008년 11월 7일 신축 이전해서 사용해 오고 있다.
고창군선거관리위원회는 1963년 2월 7일 전북 제9지역선거구 선거관리위원회를 창성하여 운영해 오다 1987년 11월 7일 고창군선거관리위원회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각종 선거관리, 정당 사무관리, 정치자금 사무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해 오고 있다. 위원장은 정읍지원 판사가 맡아오고 있다.
고창읍사무소는 1914년 3월 1일 고창면을 설치한 후 행정구역 개편이 계속해서 이루어 졌으며, 1955년 7월 1일 고창읍으로 승격하였다. 현 청사는 1978년 9월 7일 신축하였으나 비좁고 노후화 되어 현재의 위치에 금년부터 신축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창고등학교는 민족교육의 요람으로 1918년 4월 1일 부안면 오산리에 오산학당을 설립하고, 1919년 4월 14일 사립인 오산학교 설립인가를 받아 운영해 오다 운영난으로 폐교에 이르자 1922년 2월 고창군민대회에서 인수를 결정한 후 군민의 성금으로 설립하여, 동년 6월 사립고창고등보통학교로 개칭하여 인가를 받은 후 고창읍 교촌리로 이전 하였다.
1920년 6월 20일 본관 2층, 290평 규모를 준공하여 1938년 3월 15일 사립 고창중학교로 개칭하고, 1944년 3월 31일 고창공립중학교로 개칭하였으며, 1951년 9월 1일 고창고등학교로 승격해서 중학교와 분리해 병성로 운영해 오다가 고창중학교가 분리해 현재의 위치로 나가게 된 것으로 내년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는 민족사관이 뚜렷한 명문학교이다.
고창초등학교는 1912년 5월 1일 고창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여 1941년 4월 1일 고창공립초등학교가 되었으며, 1945년 9월 24일 고창국민학교로 개칭하였다. 1992년 3월 1일 도산국민학교와 1994년 3월 1일 고창동국교, 1998년 4월 1일 고창서초등학교와 통폐합하여 현재는 전북도내에서 두 번째로 크고, 교감이 2명이나 있으며, 역사가 100년이 넘는 학교이다.
고창여중·고는 1945년 12월 16일 고창읍 읍내리 163번지에 고창고등여학교로 개교하고, 1948년 고창여중을 인가받았으며, 1955년 4월 15일 고창여자고등학교로 개칭하였다. 1960년 고창읍성으로 이전하였으나 1986년 11월 28일 현재의 위치인 고창읍 석교리 9-4번지에 신축·이전하였다. 고창여중은 70회, 고창여고는 61회의 졸업생을 배출한 역사와 전통 있는 학교로 발전하였다.
이밖에 1963년 설립한 고창문화원과 1962년 5월 일 창립한 고창군산림조합이 있다.
고창향교는 월곡리에 있었으나 선조 22년(1589) 교촌리에 이건하였으며, 이 곳에서 유교를 가르치고 많은 인재를 배출시킨 곳이며,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을 봉안하고 현재까지도 제사를 모시고 있다.
어사각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순절한 김해김씨 삼현파 집안으로 여섯명의 충신과 효자 한명, 네명의 열녀에게 내려준 정려각이 있다. 선조 38년(1605) 내려준 선무원종공신록의 서훈과 단서철권을 내려주고 이를 봉안하기 위해 1873년 어사각을 세웠다.
단군성전은 국조(國祖)인 단군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1979년 순수한 군민성금으로 건립하였으며, 매년 10월 3일 개천절이 되면 이곳에서 단군에게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일광기념관은 면암 최익현 선생과 함께 구 한말 의병활동을 하며 일본군과 싸우다 33세에 순국한 일광 정시해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이밖에 교촌리 옛 군수 관사 옆에 고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맨 북쪽에 세운 교촌리 당산이 있으며, 1975년 3월 조기옥 청매화상이 창건한 태고종파인 청용사가 있고, 소태산 박중빈에 의해 창교한 원불교 교당이 1963년 세워져 있으며, 성북교회는 1952년 방임웅 목사의 개척 예배를 통해 시작으로 1990년 8월 2일 현 위치에 교회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또한 교촌리에는 고창군상이군경회, 고창공공도서관, 성호도서관, 실내체육관, 청소년문화센터, 고창군게이트볼장, 새마을공원 등 민간단체와 공공시설이 다양하게 소재하고 있는 곳이다.
교촌리 출신 중요인물로 조선시대의 오희길(1556∼1625년)은 고창읍 교촌리 필봉아래에서 태어나 경기전 참봉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귀중한 태조어전과 조선왕조실록을 내장사 은적암 용굴대로 옮기고 다시 묘향산 보현사에 보관하여 병화를 면하여 현재가지 보존하게 한 장본인이다.
또한 장인원(1927∼2002) 박사는 고창읍 교촌리 168번지에서 태어나 전남대 의대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의학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전남대학원장과 광주보훈병원장을 역임하였다. 특히 국내최초로 원숭이에게 인공와우 실험으로 수 많은 만성중이염 환자를 수술 및 치료와 희귀한 이소골경화증을 수술한 의학계의 선구자로 유명하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조재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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