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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덕현의 정무를 집행했던 흥성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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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1735년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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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13일(화) 18:14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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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76년 4월 3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된 흥성동헌 | ⓒ (주)고창신문 | | 흥성동헌은 고창군 흥덕면 흥덕리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로, 흥덕버스터미널 위의 흥덕농협 사거리에서 서쪽으로 200m 쯤 직진하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도로변 왼쪽에 위치하고 있다.
흥성동헌은 원래 흥덕객사로 알려져 왔으나, 1983년에 건물의 해체·보수하는 과정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어, 흥성읍성에 있던 동헌 건물을 조선 순조7년(1807)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된 것이 확인되었으며, 이에 따라 2002년 명칭도 흥덕객사에서 흥성동헌으로 바꾸게 되었다. 동헌은 지방관인 현감이 정무를 집행하던 관아 건물로, 중앙에 담과 정문을 내어 각종 집무실과 창고를 두고 주변에 객사와 향교 등을 두었다. 정문 안에는 다시 담을 쳐서 수령이 공무를 집행하는 외아(外衙)와 수령의 가족이 거주하는 내아(內衙)를 두었다. 동헌이라는 명칭은 외아가 내아의 동쪽에 위치하는 데서 유래한다.
흥성(興城)은 흥덕(興德)의 옛 지명으로, 고려 충선왕이 즉위하자 왕명을 피해 장덕(章德)을 흥덕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고, 1895년(고종 32)에 군으로 승격되었다가 1914년 부군(府郡)의 폐합령에 따라 무장(茂長)과 함께 고창군으로 통폐합되었다. 이 건물은 1597년 정유재란 때 병화로 소실된 것을 1735년(영조 11) 현감 김정연이 복원하였다고 한다..
흥성동헌은 익공계 팔작집으로 홑처마지붕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로, 기단은 바른층 쌓기를 하였고, 그 위에 자연석으로 초석을 마련하여 민흘림 기둥을 세웠다. 정면의 앞 퇴칸과 어칸, 그리고 어칸에 접한 좌우칸에는 마루를 깔았다. 건물의 양쪽 끝 칸은 온돌 구조의 방을 들였다. 배면의 경우, 어칸과 어칸에 접한 좌우칸에 2분합 판문을 달았다. 건물 측면에서 볼 때에는 3칸의 구조로 되어 있고, 어칸과 퇴칸에 해당되는 부분에는 온돌방을 놓았다. 건물 양 측면 어칸의 중방 위쪽에 2분합 창문을 달았다. 마루의 천장 부분은 연등천장으로 대들보 위에 중보를 걸었고, 그 위에 판대공으로 종도리를 받고 있다. 대들보는 연화머리초에 인휘를 사용하였고, 계풍화로는 용을 그렸다. 중보는 주화머리초에 인휘를 사용하였고, 계풍화는 없으나 계풍화 부분 위쪽에 등 간격으로 세 곳에 홈이 있어 무언가를 달았거나, 다른 건물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까래 부리에는 삼태극문을, 보의 부리에는 태평초를 시문하였다. 각 온돌방에는 마루 면에 접하여 4분합문을 달았고, 각각의 정면에 2분합문을, 측면에 2분합 창문을 달았다.
흥성동헌은 1976년 4월 3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되었다.
흥덕현(興德縣)의 유래를 보면 처음에는 마한 땅이었다. 백제시대에 상칠현(上漆縣)으로 개편하였고, 신라시대 757년(경덕왕 16) 지명과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상질현(尙質縣)으로 개칭하여 이웃 고부군(현, 정읍시 고부면 일대)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시대에 장덕(章德) 또는 창덕(昌德)으로 고치고 감무를 파견하였는데 이때 장덕감무는 이웃한 고창(高敞)을 함께 관할하였다. 『고려사』에 의하면 1309년 충선왕이 즉위하자 장덕의 장(章)이 충선왕의 이름인 장(璋)과 동음이므로 흥덕으로 고쳤다. 1388년 창왕이 즉위하자 창왕의 이름인 창(昌)과 동음이므로 흥덕으로 고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충선왕 때 흥덕으로 고친 이름을 다시 흥덕으로 고쳤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흥덕으로 고쳤으면서도 창덕이라는 별칭을 계속 사용하자 창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 1392년(태조 1) 고창과 흥덕에 각기 감무를 파견하였다가 뒤에 현감이 다스리는 현으로 바꾸었다. 1407년(태종 7) 왜구가 흥덕에 침입하는 등 왜구의 방어에 불리하자 흥덕현에 있던 진을 이듬해에 장사로 옮겼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당시 흥덕에는 216호에 1,051명이 살았다. 여지도서에는 1759년(영조 35)의 호적을 인용하여 2,762호에 9,136명의 주민이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789년(정조 13)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는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따르면, 흥덕은 현내면(縣內面)·북면(北面)·동면(東面)·이동면(二東面)·일남면(一南面)·이남면(二南面)·일서면(一西面)·이서면(二西面)의 8면 143리로 이루어졌으며, 총 2,804호에 1만 115명(남자 4,826명, 여자 5,289명)의 주민이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895년(고종 32) 흥덕군이 되고 월경지로 있던 고부군 부안면(富安面)을 편입하였다. 1896년 전라도 네개의 관찰부를 설치할 때 전주부에 속하였고,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로 가를 때는 처음 전라남도에 속했다가 다시 전라북도로 이관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흥덕면이라 하고 무장군과 함께 이웃 고창군에 편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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