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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기포일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지정해야

기념일은 동학의 이념과 동학정신 담겨야

2018년 09월 13일(목) 14:50 [(주)고창신문]

 

동학농민군이 보국안민(保國安民)과 척왜척양(斥倭斥洋)을 외치며 분연하게 일어섰던 농학농민혁명이 일어 난지 벌써 124년이 지났다. 우리나라는 18세기 중·후반의 영조와 정조 시대의 조선사회는 상대적인 개혁정치가 이루어지면서 안정기를 맞았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세도정치가 성립된 이후 지배질서와 통치기강이 문란해지고 사회적 혼란이 심회되어 가고 있었다.
19세기말 조선은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안으로는 낡은 신분제도를 무너뜨리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는 개혁이 필요했으며, 밖으로는 서양과 일본의 침략을 막아내야 하는 자주화가 필요했었다.
전국적으로 민란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봉건정치의 폐해로 부정부패의 만연, 외세의 개입 등으로 조선말 사회는 극도로 불안하였다.
극기야 1894년 3월 20일 부정부패의 척결과 외세침입 반대 등을 내세우며 고창군 공음면 구수내에서 수천명이 모여 무장기포를 하였으며, 혁명은 들불처럼 전국적으로 번져 나갔다. 그러나 청나라와 일본의 개입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미완의 혁명이다.
이때 동학농민군은 죽창과 활, 검으로 무장하고 현대식 조총을 사용하던 왜군과 관군을 맞서 싸웠기에 그 희생 또한 많았다. 동학혁명이 끝난 후 동학군에 가담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죽음을 당하거나 유족들은 모든 사회활동이 단절되는 피해를 당했다.
동학기념일은 2004년 3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혁명 참여자의 명예회복과 기념사업, 기념일 제정 추진, 유족들에 대한 보상 등이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은 논의가 시작되지 20여년이 되어가고 있으나, 아직도 결정조차 하지 못하고 지자체간 갈등만 심화시켜 놓았다. 가장 대립을 하고 있는 지역이 정읍과 고창이다.
정읍에서 처음에 고부관아 점거를 위해 모였던 고부 봉기일을 주장했다가 여의치 않자 동학군과 경군이 최초로 전투를 벌인 황토현 전승일(5월 11일-음력 4월 7일)을 주장하고 나왔었다.
정읍시에서 주장하는 것은 다른 곳에서는 포고문을 하고 그러는 과정이 있었는데, 그런 과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단초라는 것이 군수의 학정이 단초가 되었던 것이라는 것이다.
고창은 처음부터 전국적 봉기로 확산된 동기를 부여하고, 혁명의 요소를 갖추고 있는 무장기포일(4월 25일-음력 3월 20일)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고창군에서는 지역적이었던 것을 벗어나서 동학이 조직적으로 포고문을 발표를 하고, 전국적으로 혁명이 시작되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전라북도에서 방관하다 조정이나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전북도내와 타도 지자체까지 동학기념일 제정에 가세하여 큰 혼란을 빚어 왔었다.
지금은 정부에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다. 동학과 관련이 있는 모든 지방자치단체에 공문을 보내 동학기념일 신청서를 제출하도록 한 것이다.
고창군도 동학관련 학자들과 동학단체들의 자문을 구해서 이미 동학기념일 신청을 해 놓은 상태이다.
지금까지 동학기념일 제정을 신청한 곳은 전국적으로 많다. 그동안 과거 정부의 잘못이 크다. 기념일제정에 따른 모든 것을 동학관련 민간단체와 해당 지자체에 맡겨 놓거나,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어느 결과를 돌출했다가도 다시 원점을 돌아가기가 반복되어 지방자치단체와 동학농민혁명 민간단체 간의 반목만 만들어 낸 꼴이 되었던 것이다.
정부에서도 처음에는 동학농민혁명을 연구하는 대학교수들과 동학기념재단, 동학유족회 등이 기념일제정에 합의했었다. 학술용역을 실시하고, 학자들과 단체의 투표를 통해 도출된 결과에 따르기로 한 것이었다.
이때 고창을 비롯, 정읍, 부안, 전주, 장성, 공주 등 전체의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대상으로 학술용역을 실시하였으며, 그 결과 무장기포일이 절대 우세로 결정되었다가도 정읍시 동학단체의 반대로 제정하지 못하고 갈등만 키워오게 되었다.
이런 결정들은 그동안 여러번 있어 왔으나, 지자체간 반목만 키워 오다, 궁여지책으로 고창과 정읍의 이해관계가 없는 날짜 선정을 추진해 왔었다. 그동안 기념일로 거론된 것이 전주화약일과 특별법 공포일이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은 동학의 기본적 의미와 선조들의 동학정신이 담겨 있어야 한다. 동학은 인류의 평등과 화합과 상생의 정신이 담겨 있다. 그러나 우리 후손들은 그 정신을 살리지 못하고 기념일 하나 결정하는데 20여년의 시간이 흘러갔지만 지금도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누구나 평등한 사회 만들기에 노력하며, 고귀한 희생을 하신 조상에게 한없이 부끄럽지 않은 결정을 하여야만 한다
전문가들은 전라북도의 조정능력을 질타하고, 잘못하다가는 타도에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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