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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4·19 혁명 투사 고창출신 고 은천기 수기 발굴

2021년 05월 04일(화) 22:26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60년 전 4·19 혁명 투사 고창출신 고 은천기 수기 발굴

1961년 중앙대학교 신문 제178호 3면에 수록되었던 고 은천기 교수의 4.19 수기가 발굴되었다. 당시 정치외교학과 3학년에 재학하던 고 은천기 교수는 고수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야간학교를 다니며 독학하였고 1993년 58세의 나이로 영면하기 전까지 인천대학교 학장 및 대학원 원장을 역임하였다.
고 은천기 교수의 장남 은지용 교수(춘천교육대학교)는 “선친께서 4.19혁명 당시 학생 시위 혐의로 고문실에서 혹독한 고초를 겪었던 체험과 4.19혁명의 역사적 의의를 피력한 대학신문 기고문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 발전에 발자취를 남기신 선친의 뜻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부인 이창자 여사는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은 고문의 후유증때문이었을 것”이라면서 “남편이 4.19민주 혁명의 회원으로 추서되어 혁명열사들과 함께 묻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유족으로서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앙대 4.19혁명기념사업회 김정일 회장은 “그분의 유지를 후손들이 이어받아 국가 발전에 초석이 될 수 있도록 정부는 고 은천기 교수를 4.19혁명 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혁명 당시 생생한 체험을 통해 민주화 투사들의 희생을 느낄 수 있는 이 수기의 주인공이 고창 고수면 상평리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창사회에 회자되고 있기에 그 내용을 소개한다.

유석영 기자

내 땅에 充谥(충일) 陽光(양광)은 멀었는가!
- 그 날 내 다리는 눈 먼 총알에 서러웠고-

오늘 4.19 민주 혁명의 첫돌을 맞이하여 민주제단에 제물이 된 영령 앞에 엄숙히 묵념드리며 고 순국동지의 명복을 비는 뜻에서 유가족에게 위안을 드리는 바이다.
또한 아직도 병상에서 신음하는 부상동지들이 하루 속히 완쾌하기를 빌며 제2공화국 건설에 피와 땀을 아끼지 않는 전 국민에게 감사한 마음 금할 길 없다.
바로 우리 중앙 전당의 건아가 교문을 박차고 한강교 입구에 대기시켰던 붉은 소방차 붉은 물의 세례를 돌멩이로 항거하던 그때, 마음 조리며 수십만 군중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부패와 독재가 우굴거리는 12년간 길러온 온상인 이승만독재의 아성 중앙청-경무대로 교가를 부르며 구호로 절규하던 그때는 독재의 앞잡이가 정당했고, 오늘은 우리가 정당하리라.
총탄과 최류탄에 채 피지도 않은 꽃들이 쓰러질 때의 비명과 웃음이 교차된 그 날이 바로 작년의 오늘이다.
정의의 붉은 피가 그들의 온상가를 메꿀 때의 만세 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기만 하다. 5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백의민족이 미개인으로 멸시를 받았던 베일을 벗고 쓰레기통에서 장미는 피고 말았으며 청사에 길이 빛날 그 승리를 거두던 기쁨의 날이 바로 작년 4월 26일이 아니었던가! 이에 우리 한국민과 전세계 우방 국민들은 감격 어린 가슴으로 우리를 칭찬했던 것이다.
그 날을 바로 우리들은 이름하여 <피의 화요일>이라고 부른다. 오후 한시였다. 우리 학교 운동장에서도 검은 제복의 학생들이 물결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잊지 않고 그날을 기념하며 축하하고 의혈의 넋을 추모하며 이를 의의깊게 회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불을 끄는 소방차는 붉은 물을 품고 정말 총은 『쏘라고 만들어진 것』인양 평화적인 데모 군중에게 무차별적 사격으로 아름다운 꽃들의 혼을 빼앗아갔다. 의혈의 넋 188명은 고이 잠이 들고 수천 명의 부상자는 병원 신세를 졌다.
전시민은 그들의 무덤에 화한을 올렸고 또한 열을 지어 병원문을 두들기기를 잊지 않았다. 이젠 전세계 우방각국의 대찬사의 평가와 더불어 『쓰레기통에 장미가 피는 격이라』는 것을 귀담아듣지 않아도 좋았다. 나는 솔직히 털끝만큼한 정의감에 아니 군중심리에 휩쓸려 따라다닌 것이 어쩌다 그들에 연행되어 고통을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비굴해지는 것 같기에 그 때의 회고담을 늘어놓고 싶지 않으나 결코 실망하거나 불명예스럽게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이 우굴거리던 부패와 독재의 온상을 태울 수 있는 불꽃과 기름이 되기에 충분했던 우리가 현실을 실망하고 불신하여야 할 오늘이 있기에 슬프다.
이제 새삼스럽게 나는 그때의 참상을 상기하고 싶지는 않으나 오늘에 이것을 이야기할 수 있고, 또 새로운 신념을 갖는 뜻에서 그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으랴. 총개머리에 맞아 덜렁덜렁한 힘없는 어깨를 마치 그들이 서부활극의 쌍권총명수 인양 『나의 투쟁』에서 보는 유대인들을 고문실로 혹은 가스실로 끌고가던 나치스 당원처럼 생철권총, 칼빈개머리 판, 살찐 궁둥이에 찬 경찰봉, 쏙싹주머니의 포승줄, 반짝반짝 빛나는 구둣발들, 그 어찌 골수에 사무친 추억이 아니겠는가?
그것도 교대로 생포부대처럼 쓰러져 가는 목덜미를 겨누며 암흑의 고문실로 끌려가던 밤,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눈물겹고 몸서리친다. 『이 새끼 어느 학교 다녀.』, 『중앙대학교입니다.』, 『아, 중앙대학교! 잘 됐어. 아주 열렬한 새끼들이야. 네 놈의 새끼가 앞장서서 모 신문사와 모씨 집에 불 질렀지!』, 탁탁! 『아닙니다. 평화적 데모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무시무시하고 징그러운 말투에 침을 내뱉을 생각이 들었으나 어떻게 두들겨 맞았던지 이제는 어디를 때리는 조차도 몰랐다. 악에 받친 목소리로 『당신은 동생도 자식도 없습니까?』, 『아- 이 자식 봐라. 입은 살아있구나』, 『아닙니다. 치지 말고 법대로 처리하시오.』, 『응- 정치과, 벌써부터, 뭐, 법대로?』, 『이게 정치연습이냐? 정치협상인 줄 아니』, 산 송장 알몸뚱이에 물바께쓰를 뒤집어씌워 맥을 짚어보던 그들. 그들 자신이 조작한 서약서에 『이 새끼 지장 찍어. 이것 한방이면 알지.』, 『너 같은 건 아깝지 않은데 처치 곤란이야.』, 차라리 더 고통을 주지 말고 그 총으로 쏘아달라고 애원한 내가 데모대의 주동자로서 열성 공산당원이 된 것처럼 취급당한 것은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다행히 4월 혁명의 승리가 없었더라면 필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지가 저세상으로 갔으리라. 생각하면 이젠 이토록 무자비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들이 오히려 불쌍하고 동정이 갈 뿐이다.
『너는 바보천치니까 부상을 당했지.』라는 농담조의 친우들의 말에 웃어 넘길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혀지지 않는가. 그것은 현정부와 사회를 실망하고 불신하는데서 오는 솔직한 표현의 징조인지 모른다. 실로 현정부의 왜곡된 구체적인 예는 그만두더라도 우리들이 피를 흘리면서 제2공화국에 바랐던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머니, 우리의 피가 참되고 보람이 있을런지? 여하튼 이번 4월 혁명은 프랑스 혁명이나 신해혁명 못지않게 한국적인 특수성을 가진 비약을 가져온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는 혁명이나 개혁이란 단어에 구미를 당기고 있다. - 후략 -
<중앙대학교 신문(4월 12일자) 4·19혁명 60돌 기념 기사 중에서>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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