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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의 대표적 지장성지, 선운사

빼어난 명승과 유적으로 중생과 소통하며 중생제도의 손 내밀어

2021년 05월 13일(목) 22:02 [(주)고창신문]

 

우리나라 불교문화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수한 유산으로서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해인사장경판전과 석굴암, 불국사를 비롯하여 2018년에는 한국의 전통 산사 7곳이, 동일한 유형의 여러 유산을 묶은 연속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등재된 7곳은 해남 대흥사, 안동 봉정사, 양산 통도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영주 부석사로 우리 고장의 선운사가 포함되지 못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본지는 선운사를 필두로, 7곳의 산사에 대한 취재를 통하여 불교 관련 문화유적을 재조명하고 우리 지역의 사찰, 선운사에 대한 관심과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특히 코로나19로 심신이 지친 현대인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 속에 자리한 고즈넉한 산사와, 종교의 경계를 초월한 보편적 깨달음의 진리를 소개함으로써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와 치유의 힘을 느끼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주)고창신문




고창 선운사(高敞 禪雲寺)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

한국불교의 대표적 지장성지, 선운사
빼어난 명승과 유적으로 중생과 소통하며 중생제도의 손 내밀어

동백꽃 다 지고 꽃무릇 아직 멀리 있어도 5월 햇빛 다정하게 맞아주는 선운사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2009년에 명승으로 지정된 도솔계곡 일원에는 흐드러지게 핀 층층나무 흰꽃이 계곡을 따라 산을 오르며 지상에서 천상으로 오르는 계단을 만들었고, 흐르는 듯 나르는 듯 구름은 와불처럼 누운 도솔산의 부드러운 능선을 고요하고 평화롭게 감돈다. 구름과 산과 물은 탐욕도 성냄도 어리석음도 떨쳐버린 선운(禪雲)의 경지를 눈앞에 펼치며 무념무상으로 미래불 미륵보살의 정토인 도솔천(兜率天)을 현생에 구현한 듯하다.

선운사로 들어가는 걷기 길은 오른편으로 조성된 생태숲을 사이에 두고 자동차 진입로가 따로 있다. 일주문 지나 선운사 경내로 들어서기 전, 자동차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연의 소리와 풍광으로 몸과 마음을 정화하라는 배려로 느껴진다.
자랑거리가 많은 선운사인지라 일주문을 향하는 걸음을 떼자마자 선운천 너머 절벽을 타고 오르는 천연기념물 ‘송악’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송악은 두릅나무과 상록수 덩굴식물이다. 수백 년에 걸쳐 높이 15m가 넘는 절벽을 점령한 송악의 규모도 규모려니와 북방한계선에 가까운 내륙에서 드물게 자란 경우라 1991년 11월 27일 천연기념물 제367호로 지정되었다.
선운사에는 송악과 더불어 1967년 제184호로 지정된 동백나무 숲과 1988년 제354호로 지정된 도솔암 장사송이 천연기념물 삼인방을 이룬다. 선운사의 주불전인 대웅보전을 화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조성된 동백숲은 방화림이라는 실용성을 넘어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다양한 작품에 등장함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미당 시비와 선운산가비가 다시 발길을 잡는다.
‘선운사 동구’에서 목쉰 육자배기 가락을 실은 미당 서정주의 시에 허망한 세월이 잠시 멈춘다. 특출한 시인의 시공을 초월한 예술혼마저 그의 친일반민족행위에 묻히는가 싶어 그 가락이 더 슬프다.
도솔가라고도 하는 ‘선운산가비’는 고려사악지에 전해오는 백제의 5개 가사 중 하나로 정확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고 전쟁터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망부가라는 추정에 근거하여 미당이 시로 지은 것을 새겨 세웠다.

선운사 경내로 들어가기 위해 일주문을 마주한다. 단청이 화려하여 시간의 깊이가 없어 보이는 와중에 ‘도솔산 선운사’ 편액이 점잖다. ‘임자(壬子) 맹동(孟冬)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낙관이 눈에 띈다.
일주문 지나 오른쪽으로 좁게 뻗은 오솔길 끝에는 낮은 돌담을 좌우로 거느리고 독특한 구조의 앙증맞은 출입문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서니 선운사 고승들의 사리탑과 비가 정연하고 엄숙하게 줄지어 맞는다.
비(碑)중에는 1986년 전북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선운사백파율사비가 있다. 조선시대 고승 백파선사 입적 후 추사 김정희가 쓴 비문으로서의 가치도 있으려니와 추사가 이 비문을 쓰게 된 숨겨진 이야기가 대중에게 흥미롭게 다가온다. 추사는 백파와 선(禪)논쟁을 벌였던 초의와 교유하는 사이로 백파를 심하게 비난한 전력이 있다. 하지만 비문에서는 ‘華嚴宗主 白坡大律師 大機大用之碑 (화엄종주 백파대율사 대기대용지비)’라고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있다. 원숙한 깨달음으로 자유자재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의미하는 ‘대기대용’은 율사에게 최고의 찬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제주도 유배라는 역경을 겪으면서 인격적으로 무르익은 추사의 변화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더욱 짙어진 선운천의 물빛은 우거진 나뭇잎이 햇빛을 가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도토리나무, 상수리나무, 참나무과의 낙엽 등에 함유된 타닌 성분이 녹아들어 검게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질오염이라는 오해를 우려하는듯 친절한 설명이 세워져 있다. 물위에 드리운 단풍의 작은 손바닥은 아직 푸른데 프로펠러 단풍 씨앗은 바람타고 날아오를 새로운 여정에 대한 기대감으로 빨갛게 물이 들었다. 화랑을 거닐 듯, 선운천을 화폭삼아 나뭇잎과 바람과 햇살이 그려내는 그림에 빠져들다보면 어느새 천왕문으로 안내하는 극락교에 이른다.
극락교 건너기 전 펼쳐진 녹차밭은 수준높았던 선운사 녹차의 영화를 이어가고 있다.

극락교를 건너면 천왕문, 만세루, 대웅보전으로 일맥하는 선운사의 정수를 만나게 된다.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선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로 내소사, 내장사, 개암사, 문수사와 기타 56개의 말사를 거느리고 있다. 한때는 89개의 암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참당암, 도솔암, 동운암, 석상암을 대표적인 암자로 꼽을 수 있다.
천왕문에 들어서면 만세루와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오른편으로는 관음전, 지장보궁, 성보박물관 등이 있고 왼편으로는 영산전, 산신각, 팔상전, 조사전, 명부전, 범종각, 정와 등이 자리한다.

이층 누각의 외연을 갖춘 천왕문은 원래 범종이 있는 종루를 겸한 건물이었으나 1970년 새로 지으면서 높은 천장의 단층으로 사천왕상을 모신다. 절에 들어가기 앞서 사천왕의 심사를 받듯 성찰하는 기회를 준다. 천왕문의 편액은 조선 후기 명필 원교 이광사의 글씨로, 나르는 듯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선운사에는 원교 이광사의 글씨가 두 점 걸려있다. 천왕문(天王門) 현판과 정와(靜窩) 현판이다. ‘고요한 움집’이라는 의미의 정와는 원래 승방으로 사용하던 관음전에 걸려 있었으나 승방을 관음전으로 고친 지금은 주지스님의 처소로 옮겨졌다.
선운사의 사천왕상은 독특하여 흥미롭다. 화려한 보관을 쓴 사천왕은 각각 엄숙하거나 포효하거나 인자하거나 해학적인 표정을 지으며 탐관오리, 음녀 등을 지배하고 있다. 빨갛게 입술을 칠한 음녀의 표정이 묘하여 보는 이마다 각기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천왕문을 지나면 바로 보이는 정면 9칸의 듬직한 맞배지붕 건물이 만세루이다. 부처님의 영원한 진리를 표현하는 만세루는 루(樓)라고는 하지만 넓고 낮게 탁트인 단층 누각으로 지금은 누구나 차를 마시며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방되었다. 2007년 선운사 최연소 주지스님으로 부임한 법만 스님이 창고로 쓰이던 만세루를 개방한 것이라고 하니 스님의 안목이 돋보인다. 2020년 보물 제2065호로 승격된 만세루는 대웅보전에 곧바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호위무사처럼 막아선 느낌이다. 단청재료인 붉은 흙, 석간주와 초록 암석, 뇌록으로만 가칠하여 깔끔하고 강렬한 남성적인 느낌을 준다. 대웅보전을 마주 보며 기둥만 있고 문도 없이 개방된 형태는 이곳이 설법을 위한 강당의 용도로 지어졌음을 보여준다. 선운사를 짓고 남은 목재로 지어졌다는 설명을 읽고 들여다보니 장엄한 외관과는 달리 휘어지고 굵기도 제각각에, 이어 붙여진 것까지 온전한 것을 찾기가 오히려 어려울 지경이다. 쓰고 남은 목재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자연스럽고 소박하며 우직한 하모니는 세파에 날 선 마음을 달래는 힘이 있다.

만세루에 앉아 바라보면 6층 석탑을 비켜 세우고 뭉게뭉게 일어난 동백숲을 뒤로 거느린 대웅보전이 석축 기단 위에서 우아하게 미소짓는다. 1963년 보물 제290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백제 위덕왕 때인 577년 검단 선사가 창건한 이후 정유재란 때 불에 타 광해군 때 1610년 다시 건축하고 그 뒤 수차례 수리되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에 맞배지붕을 얹고 그 아래 공포를 다포식으로 꾸며 레이스 옷을 입은 듯 화려하고 섬세하다. 문 위 창방의 단청은 흘러간 시간과 함께 빛이 바랬지만 청룡의 역동적인 용틀임과 형형한 눈빛, 구름과 노니는 봉황의 날개짓 등 세련된 감각을 드러낸다. 평방 위 공포와 공포 사이에 수줍게 숨은 별화(別畵)는 빈틈없이 꼼꼼한 예술가의 손길을 느끼게 한다.

대웅보전은 건물도 보물이지만 모셔진 3구의 불상,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이 2012년 제1752호로 지정된 보물이다. 대좌 밑면에 불상 조성과정에 대한 상세한 묵서명이 발견되면서 삼불좌상이 1633년에, 17세기 대표 조각승 무염의 주관으로 조성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삼존불의 존명도 비로자나, 약사, 아미타라고 적시하고 있어서 많은 연구에 기준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시지만 선운사 대웅보전은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서방 극락정토 주인인 아미타여래불과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불을 모신다. 보통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주불전은 대적광전이라고 하는데 선운사의 경우, 부처의 육신이 아닌 진리의 모습인 비로자나불과 석가불을 일체로 보는 사상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대웅보전으로 명명한다.

선운사는 한국불교의 대표적 지장성지라 불린다. 본사 지장보궁에 모셔진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제279호)을 비롯하여 도솔암에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 참당암에 석조지장보살좌상(보물 제2031호)을 모셔 모두 3구의 지장보살을 모신 곳으로 국내에서 유일하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까지도 구원하고자 몸소 지옥에 머물며 죄지은 중생들을 구제하는 지옥의 부처이다. 머리에 두건을 두른 형태로 명부전에 모셔진 경우가 많다.
1963년 보물 제279호로 지정된 금동지장보살좌상에는 불상의 영험함을 보여주는 일화가 전한다. 이 불상은 일제 강점기에 도난을 당해 일본으로 반출되었으나 여러 번 바뀐 불상 소유주의 꿈에 수시로 나타나 자신이 본래 고창 도솔산에 있었으니 그 곳으로 돌려보내줄 것을 요구한 끝에 1938년 반환되었다고 한다.

대웅보전 맞은 편 멀리 오른편으로 범종각에는 불교 의례에 사용하는 4가지의 법구인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 범종(梵鐘), 즉 사물이 있다. 이승과 저승의 중생 구제를 기원하는 범종, 육지의 동물을 위하여 두드리는 법고, 날아다니는 날짐승과 구천을 헤매는 영혼을 위해서 치는 운판, 물에 사는 짐승을 위한 목어가 있다. 구체적인 생명체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목어는 감성적 울림이 가장 크다. ‘속창 다 빼고’ 먼지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얽매인 집(集)에서 다소간 놓여날 수 있을 것 같다.

지면부족으로, 선운사의 빼어난 면면을 담지 못하는 아쉬움은 보물 목록 소개로 달랜다. 선운사에는 아래 소개한 8건의 보물이외에도 3건의 천연기념물, 1건의 명승을 비롯하여 10건의 도유형문화재와 3건의 도문화재자료가 등재되어 있다.
▲ 금동지장보살좌상(1963년 지정, 보물 제279호)
▲ 도솔암 금동지장보살좌상(1963년 지정, 보물 제280호)
▲ 대웅전(1963년 지정, 보물 제290호)
▲ 참당암 대웅전(1984년 지정, 보물 제803호)
▲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1994년 지정, 보물 제1200호)
▲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2012년 지정, 보물 제1752호)
▲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2019년 지정, 보물 제2031호)
▲ 만세루(2020년 지정, 보물 제2065호)

유석영 기자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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