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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 바라고 배려하는 나눔의 행복론, 오종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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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첫수도 고창포럼’ 학교에서 안 가르치지만 꼭 필요한 덕목 예의·배려·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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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5월 25일(화) 21:58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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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첫수도 고창포럼 _ 오종남 교수> | 
| | ⓒ (주)고창신문 | |
적게 바라고 배려하는 나눔의 행복론, 오종남 교수
‘한반도 첫수도 고창포럼’ 학교에서 안 가르치지만 꼭 필요한 덕목 예의·배려·염치
수많은 청중을 집중시켜 반응을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유튜브 조회수 백만 뷰 기록을 훌쩍 뛰어넘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오종남 교수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았다. 한 시간이 넘게 이어진 강의 동안 강사의 질문에 아이처럼 소리 내어 대답하고 있는 자기 모습에 스스로 놀란 청중도 있을 것이다. 어느새 빠져들어 소통하고 교감하도록 청중을 이끄는 힘이 명강사의 능력임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5월 20일 고창군 동리국악당에서는 ‘한반도 첫 수도 고창포럼’ 두 번째 시간으로 ‘학교에서 안 가르치지만 꼭 필요한 덕목, 예의·배려·염치’라는 주제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강사로 나선 오종남 교수는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자신의 불효를 조금이라도 감면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번 강연을 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어린 시절,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서두를 꺼냈다.
6·25전쟁으로 1953년 아버지가 전사하면서 한 살 아이는 아버지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유복자나 다름없이 자라야 했다. 한학자의 따님이었던 어머니는 아들에게 ‘아비없는 자식이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각별히 행동을 조심하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씀하셨다. 어머니 스스로가 그 부분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조심하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 당시 석곡초등학교를 졸업한 100명의 졸업생 중 중학교에 진학한 학생은 불과 10명. 대부분의 학생이 집안 형편 때문에 상급 학교로 진학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힘든 집안 형편 속에서도 어머니는 아들의 상급학교 진학을 1순위로 생각하였고 철없었던 아들은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도 모르고 도시로 나가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떼를 부렸다고 한다.
오종남 교수는 지금까지 ‘이만하면 잘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면 그 바탕에 어머니의 교육열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혼자 몸으로 평생 ‘아들 잘 키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신 어머니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고 감사함을 표현하였다.
고향에 와서 강의를 하는 아들의 모습을 하늘에서 지켜보시며 아들 키운 보람을 조금이나마 느끼신다면 자신의 불효를 조금 깍아주시지 않겠느냐고 말하며 오늘의 이 강의는 어머니께 사죄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오종남 교수의 이번 강의는 어머니를 향한 사모곡(思母曲)인 셈이다.
오종남 교수는 1952년 고창 아산면 죽산부락에서 태어나 석곡초등학교와 고창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하여 서던메소디스트 대학(Southern Methodist University)에서 경영학 석사와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75년에 행정고시로 공직을 시작하여 경제기획원과 재정경제원에서 주로 경력을 쌓았고 청와대에서 대통령 비서관으로서 주로 건설교통분야, 산업통신과학분야, 재정경제분야, 정책분야 등에서 대통령을 보좌하였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청와대에서 일하는 것이 교도소의 담벼락에서 일하는 것 같았다고 하면서 바람만 잘못 불어도 감옥 안으로 떨어질 것 같아 통계청장을 자원하였다고 한다.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한국인 최초로 IMF 상임이사로 활동하는 등 더욱 자유롭게 다양한 분야에서 두드러진 행보를 보이고 있는 오종남 교수는 현재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직함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직함으로는 JA KOREA 회장,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서울대학교 과학기술혁신 최고과정(SPARC) 명예주임교수, SC제일은행 이사회 의장 등이 있다. 『한국인 당신의 미래』, 『은퇴 후 30년을 준비하라』 등 저술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오종남 교수는 고등학교 이후에는 타지에 나가 생활하였지만 어린 시절의 친구들을 비롯하여 고향의 선후배와 돈독한 유대를 맺으며 항상 고향을 응원하고 있다.
강의가 무르익으면서 오종남 교수는 우리나라 발전의 역사와 현주소, 그리고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소개하였다. 한 세대가, 끼니를 걱정하던 빈곤의 상황에서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뀐 것은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지만 급속한 경제발전의 뒤안길에는 자살률 세계 최고라는 오명이 남았고 예의·배려·염치가 사라져 행복감을 느끼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고 우리나라의 아픈 현실을 꼬집었다.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소득증가가 행복 증대로 이어질 수 있지만 일정 시점이 지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도는 더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미국 경제학자 이스털린의 이론, ‘이스털린의 역설’을 예로 들면서 우리나라는 이제 예전처럼 경제 성장과 발전만으로는 행복이 증대되기 어렵고 행복하려면 ‘밥’ 이외의 뭔가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고 말했다.
기본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던 60년대의 빈곤한 상태에서는 경쟁과 성장을 통해 성취하고 소득을 높이는 것이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었겠지만 어느 순간 우리 사회는 그것이 행복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고 하면서 이제는 멈추고 비우며 주변을 배려하는 가운데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을 때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행복지수는 ‘성취한 것(what I have)/바라는 것(what I want)’이라고 말하면서 원하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가지거나 이루는 성취감을 통해서 행복해지기도 하지만 적게 바라고 기대수준을 낮추는 것도 행복지수를 높이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적게 바라고 기대 수준을 낮춘다는 것은 결국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고 상대방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것이 될 것이다.
가족관계에서도 아내가 남편에게, 또는 남편이 아내에게 바라는 것이 많다면 그 가정이 편할 수가 없을 것이다. 가정이 편하려면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고 상대방을 잘 파악해야 하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배려해야 하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이 많아지는 것은 결국 자기 입장에서 상황을 판단하고 자신의 욕심만을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을 싫어하는 식물에게 날마다 물을 주면서 ‘잘 자라라’고 한다면 그 식물은 잘 자랄 수 없는 것처럼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자기 욕심대로 행동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제대로 배려하려면 그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하고 그 상대의 입장이 되어서 도와야된다고 말한다.
오종남 교수는 꼰대와 멘토는 서로 사촌이라면서 꼰대와 멘토는 젊은 세대들에게 옳은 이야기로 가르쳐주고자 한다는 점에서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다만, 상대가 물어볼 때 가르쳐주면 멘토이지만 묻지도 않는데 가르치려고 하면 꼰대가 된다고 예를 들었다.
가정에서도 이처럼 관심과 소통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도와준다면 우리가 물질적으로만 성장하면서 잃어버렸던 소중한 정신적 가치인 효도, 우애, 우정, 협력 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종남 교수는 곧 평균수명 90인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30년은 부모 슬하에서 산다면 30년은 부모 노릇을 하면서 사는 시기이고 그렇게 살고 나서도 30년의 여생이 남는다고 90년 삶의 공식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소득이 줄거나 혹은 없는 30년의 여생을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는다면 장수가 곧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오종남 교수는 장수가 축복이 될 수 있도록 주제 파악을 잘 해서 분수를 지키고 살면서 삶의 보람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나이들었다고 배우지 않으면 손자에게 무시당하는 꼰대가 된다면서 행복해 지려면 ‘비교하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통해서 끊임없이 배우고 열심히 생활하여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을 추구하되, 위만 쳐다보면 목디스크 걸리니까 아래를 살피면서 삶에 대해 감사하고 가진 것을 나누는 본을 보이자고 말했다.
오종남 교수는 강의 내내 듣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번호를 매기고 정리하는 등 청중들의 반응을 수시로 확인하며 때때로 노래와 시로 분위기를 돋우고 청중과 소통하면서 명강사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유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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