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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신앙의 본산, 차 문화의 성지 '해남 대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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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산 장춘계곡 구곡유수 아홉 개 다리 건너 해탈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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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5월 25일(화) 22:03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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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고창신문 | |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해 뜨면 해 뜨는 대로 산사의 시간은 고즈넉하다. 봄에는 왕벚꽃 분홍 꽃비 자욱했을 대흥사는 이제 하늘 덮은 녹음으로 초록의 향연이다. 굽이굽이 계곡의 물소리와 천연스러운 산새들의 자유로움은, 여유 없이 조여드는 시간의 목줄에 매인 인세(人世)의 사람에게도 유전자 깊숙이 잠들어 버린 노매드(nomad) 향수(鄕愁)를 자극한다.
三災不入之處 萬歲不毁之處 宗統所歸之處(삼재불입지처 만세불훼지처 종통소귀지처). 묘향산에서 입적한 서산대사는 대흥사를 삼재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요, 훼손됨이 없는 곳이며, 종통이 이어질 곳이라 하여 제자들에게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해남 두륜산에 보낼 것을 당부한다. 절 마당에 서면 고계봉, 노승봉, 가련봉, 두륜봉, 도솔봉, 연화봉, 혈망봉, 향로봉 등 8개의 봉우리가 서산대사의 말을 전하듯 탑돌이한다. 대흥사는 사천왕을 세우지 않았다. 사방에서 보호하는 산에 있기에 풍수적으로 완벽하여 그렇다는 말을 비로소 알겠다.
그네의 궤적을 그리듯 부드럽고 아름다운 능선은 서로의 손을 맞잡아 장엄하면서도 온화하게 대흥사를 가호한다. 신심이 깊은 사람들은 절마당에서 보이는 봉우리 정상의 바위에서 부처 얼굴과 수인(手印)을 본다. 바위의 형상은 한 손의 검지를 다른 손으로 감싸고 있는 비로자나불의 수인, 지권인이라고 한다. 오른손은 법계를 뜻하고 왼손은 중생을 뜻하는 지권인은 법으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부처와 중생이 같음을 의미하는 손모양이다.
대흥사는 인간의 건축으로 가둘 수 없는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는 셈이다.
한때는 대둔사 또는 한듬절이라고도 불린 대흥사는 2009년에 사적 제508호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으로나 학술적으로 중요한 유적지이다. 창건연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고려 시대에 이전에 창건되었다는 주장에는 이견이 없다.
대흥사가 위치한 두륜산 일원이 2009년에 명승 제66호 지정되었고 대흥사 주변에는 1966년에 천연기념물 제173호로 지정된 왕벚나무 자생지가 있어 빼어난 풍광 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대흥사의 입지는 계류형 다원식으로 계류형이란 경내 중앙으로 계곡수가 통과하여 이원적 구성을 이루고 있는 형태를 의미한다. 대흥사 경내 중앙으로 금당천이 흘러 작은 계곡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대흥사가 원래 금당천 북쪽에 자리 잡았다가 남쪽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북원, 남원, 별원으로 구분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금당천 북쪽 지역인 북원에는 대웅보전과 응진당이 자리하고 있고 남원은 천불전, 용화당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서산대사의 사당인 표충사와, 초의선사가 제주도에 유배 중인 추사 김정희의 방면을 기원하며 중건한 대광명전과 동국선원은 별원으로 분류한다.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대흥사만의 독특한 특성은 가람(伽藍)의 입지뿐만이 아니다. 대흥사는 석가신앙을 기본으로 한 호국신앙의 본산이며 그 중심에 서산대사가 있다. 유교 형식의 사당인 표충사에서는 매년 서산대사를 받드는 제례와 추모행사를 거행한다는 점도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또한, 다성(茶聖)으로 추앙받은 초의선사가 머문 도량으로서 차문화의 성지로 불리운다.
대흥사가 선암사나 송광사와 견줄만한 지위로 부각된 것은 서산대사의 영향이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서산대사(1520-1604)는 입적 후 의발(衣鉢)를 대흥사에 전할 것을 당부한다. 이는 서산대사의 법통을 이을 사찰로 대흥사를 지목한 것이다. 정조 12년에 임금은 대흥사에 서산대사의 사당 건립을 명하고 표충(表忠)’이라는 편액을 하사하며 세금을 면제하는 특혜도 내린다.
서산대사의 호국사상이 부각되다보니 대사가 선종과 교종을 하나라고 본 ‘선교일치 사상’을 주장한 불교이론의 대가라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서산대사의 유지는 일주문 뒷면 “禪林敎海滿華道場(선림교해만화도량)”이라는 현판에도 드러나있다. 이처럼 서산대사로 인하여 대흥사는 13대종사와 13대강사를 배출하는 선교양종(禪敎兩宗)의 대도량으로 조선 후기 불교 중흥의 산실이 된 것이다.
대흥사는 서산대사의 문도(門徒)와 법손(法孫)인 13대종사와 13대강사 등 뛰어난 스님을 배출하였는데 13대종사의 한 사람인 초의선사(1786~1866)는 대흥사의 상징 같은 인물이다. 초의선사는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다도를 확립하고 크게 일으켰으며 불문에 몸담은 선사(禪師)이지만 유학, 도교 등 당대의 여러 지식을 섭렵하여 다방면에서 재능을 나타내었다. 학문적 경계를 초월하여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학자들과 폭넓게 사귀었고 남도종화의 대가 소치 허유는 초의의 제자이다. 추사와의 우정이 깊어 귀양살이하는 김정희를 만나러 제주도에 다녀오기도 했고 추사가 10년 먼저 세상을 뜨자 제문을 지어 저세상에서도 다시 만나자고 하였다고 한다. 초의에게 차를 선물 받고 추사가 써 준 휘호(揮毫), ‘명선(茗禪)’은 초의선사의 또 다른 호가 되었는데 그 글씨는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초의선사는 39세인 1824년에 번거로움을 피해 두륜산 자락에 단출한 일지암을 짓고 40여 년간 은거하며 차와 더불어 수행하였다. 81세인 1866년 일지암에서 입적하여 대흥사 비전(碑殿)에 묘탑을 봉안하였다. 차의 성지, 일지암은 초의선사 입적 후 화재로 소실되어 방치되던 것을 1979년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뜻을 모아 복원하였다.
일주문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승탑밭은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지만 70여기가 넘는 승탑과 탑비 사이에서 보물 제1347호로 지정된 서산대사탑과 초의선사의 탑을 찾아보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 가장 섬세하고 아름다운 승탑이 서산대사탑이고 초의선사의 묘탑은 ‘초의탑’이라는 글씨를 담 밖에서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자를 탄 문수동자와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가 맞아주는 해탈문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금당천 너머 대웅보전이 있고 천불전이 있는 남원구역은 맞은편 중앙으로 보인다. 표충사와 대광명전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대웅보전의 대문 격인 침계루를 지나면 정면에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왼쪽에 백설당과 명부전, 오른쪽에 대향각과 응진당 등 다수의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대웅보전에 모셔진 석가여래삼불좌상이 2015년 지정된 보물1863호이다. 석가모니 부처를 주불로 좌측에 약사여래불, 우측에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대웅보전 현판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로, 초의와 교분이 깊었던 추사의 타박에 떼었다가 8년 뒤 유배에서 풀린 추사가 돌아가는 길에 원교의 편액을 찾아 다시 걸라고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추사의 ‘무량수각’ 글씨는 대웅보전 바로 옆 백설당에 걸려 원교에게 화해를 청하고 있는 듯하다.
응진당 옆에는 보물 제320호 삼층석탑이 있다. 대흥사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석가의 사리를 모신 사리탑이라 한다. 1967년 보수공사 때 기단 안에서 높이 12㎝ 금동여래좌상 1구가 발견되어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북원에서 남원으로 오는 길목에는 서로 뿌리를 이은 채 500년 넘게 살고있는 느티나무 연리근이 있어 소중한 인연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
남원의 중심건물인 천불전은 천불(千佛)을 모신 전각으로 1811년 화재로 소실되어 1813년 다시 지었다.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 정방형의 건물로 다포계의 팔작지붕을 얹어 화려하고 섬세하며 사랑스럽다. 2013년 보물 제1807호로 지정되어 대흥사의 건물 중 유일한 보물이다. 이곳의 천불은 경주 옥돌로 조성하여 1817년 배로 옮기는 도중 태풍으로 일본까지 표류했다가 다음 해인 1818년 대흥사로 돌아와 봉안되었다. 천불전 중앙의 어간문 양쪽 주련 위 황룡과 청룡의 용머리가 산신령 눈썹을 하고 있어 친근해 보인다. 건물 밖으로 내민 친근한 용머리만큼이나 건물 안의 꼬리는 귀엽다. 법당에 다는 용머리는 중생을 극락정토로 실어나르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 한다. 천불전을 화려하게 장식한 것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꽃살문이다. 중앙에는 빗살 교차점에 수직으로 장살을 넣은 솟을빗살문에 연꽃을 돋을새김하여 얹은 솟을빗연꽃살문으로, 양쪽에는 수직 장실이 없는 빗모란꽃살문과 빗국화꽃살문으로 부처에게 꽃 공양을 하였다.
대흥사 본전에서 1.4㎞가량 떨어진 봉우리에 있는 북미륵암에는 국보 마애여래좌상과 보물 삼층석탑이 있다. 암벽에 조각된 고려시대 마애여래좌상은 연화좌에 결가부좌로 앉아 왼손은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을 하였다. 좌·우·위·아래로 천인을 거느리고 두광과 신광 밖으로 불꽃무늬 염광(焰光)을 발하여 위엄과 세련미를 갖춘 부처다. 2005년 국보 제308호로 지정되었다.
북미륵암 여래불의 신비한 미소를 친견하려면 시간과 발품의 공양이 필요하다. 북미륵암에 오르는 세 갈래 길 중 급경사의 바윗길은 부서질 듯 아픈 다리의 통증과 숨넘어갈 듯 거친 호흡의 공양이다. 하지만 북미륵암에 올라 발아래 엎드리는 녹음 덮인 봉우리들과 아스라이 반짝이는 바다를 내려다보면 그 과정이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멀리 땅끝에서 바다는 시작하고 있었다. 끝은 시작이 되고 시작은 다시 끝이 된다. 모든 것들이 무시로 변하는 무상한 시간의 흐름은 덧없음의 허무가 아니라 오히려 바른 희망을 직시하는 용기라고 여래불은 그렇게 제행무상의 가르침을 전한다.
대흥사에는 국보 1좌를 비롯하여 11점의 보물,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이 각 1곳 지정되어 있고 그 외에 8점의 전라남도유형문화재가 있다.
▲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2005년 지정, 국보 제308호)
▲ 탑산사명 동종(1963년 지정, 보물 제88호)
▲ 북미륵암 삼층석탑(1963년 지정, 보물 제301호)
▲ 대흥사 삼층석탑 (1963년 지정, 보물 제320호)
▲ 대흥사 서산대사탑(2002년 지정, 보물 제1347호)
▲ 대흥사 서산대사 유물(2002년 지정, 보물 제1357호)
▲ 대흥사 금동관음보살좌상(2008년 지정, 보물 제1547호)
▲ 대흥사 영산회 괘불탱(2008년 지정, 보물 제1552호)
▲ 서산대사 행초 정선사가록(2010년 지정, 보물 제1667호)
▲ 대흥사 천불전(2013년 지정, 보물 제1807호)
▲ 대흥사 석가여래삼불좌상(2015년 지정, 보물 제1863호)
▲ 묘법연화경 목판(2017년 지정, 보물 제1959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 사진 유석영 조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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