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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진신사리 모신 불보사찰 '통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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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숲길 '무풍한송', 금강처럼 보배로운 계(戒)를 받는 '금강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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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6월 04일(금) 11:27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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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고창신문 | | <기획취재_ 산사의 하모니>
고창군 도솔산 선운사
해남군 두륜산 대흥사
양산시 영축산 통도사
안동시 천등산 봉정사
보은군 속리산 법주사
공주시 태화산 마곡사
순천시 조계산 선암사
영주시 봉황산 부석사
<순서는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한평생 전쟁터를 누빈 노장의 주름처럼, 연륜 깊을수록 소나무의 갑옷에는 위엄이 서린다. 용오름하듯 이리저리 휘어지고 솟구치는 소나무의 기상은 보는 이에게 충만한 기운과 카타르시스를 준다.
산책 걸음으로 20분가량 통도사 일주문을 향한 걷기 길은 양산천 계곡과 나란히 흐르는 소나무 숲길이다. ‘무풍한송(舞風寒松)’이라는 이름의 이 길에는 서슬푸른 무사춤을 추는 소나무들이 무뚝뚝하지만 듬직한 동행을 한다. 이름도 멋스러운 이 경관은 통도사의 경치 중 으뜸으로 꼽힌다. 2018년 ‘제18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생명상(대상)을 수상한 이 숲길이 있기까지는 일제강점기부터 소나무를 지켜내고 다음 세대까지 보전하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숨어있다. 걷기 길과는 별도로 일주문까지 자동차 도로가 따로 있어서 매표소에서 자동차 도로로 진입하면 이 길은 생략된다.
하마비를 앞세우고 ‘영축총림대도량(靈鷲叢林大道場)’라 새긴 바위가 보이면 통도사에 거의 도착하였음을 알 수 있다. 통도사가 자리한 영축산은 영취산 혹은 취서산으로 불리다가 2001년 양산시 지명위원회에서 영축산으로 표준을 정하였다. 다른 지역에도 영취산이나 영축산으로 불리는 산 이름이 많은 것은 석가모니가 설법을 했던 인도 라즈기르(Rajgir)의 산이 영축산이기 때문이다. 염화시중(拈花示衆) 사자성어의 기원이기도 한 석가모니의 영축산 설법은 수많은 사찰의 영산전 건물이나 영산회상도, 영산회괘불탱 등 다양한 관련 자료의 모티브가 되고 있다.
영축총림대도량이라는 용어는 통도사가 우리나라 8개 총림 중 하나임을 의미한다. 총림(叢林)이란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지칭하는 용어로 현재 영축총림 통도사를 비롯하여 해인총림 해인사, 조계총림 송광사, 덕숭총림 수덕사, 고불총림 백양사, 금정총림 범어사, 팔공총림 동화사, 쌍계총림 쌍계사가 있다.
또한 통도사는 불(佛)·법(法)·승(僧)의 불교 삼보(三寶) 중 불을 상징하는 불보사찰이다. 삼보란 부처(佛)와 부처가 설한 모든 교법(法), 부처의 교법을 믿고 따르며 수행하는 사람(僧)을 일컫는 말로 합천 해인사와 순천 송광사가 각각 법보사찰과 승보사찰이다.
통도사가 불보사찰이 된 것은 통도사의 창건에서 유래한다.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6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 대장경을 봉안하여 창건하였기 때문이다. 교종의 한 종파인 계율종을 창시한 자장율사는 진신사리가 봉안된 자리에 계단(戒壇)을 쌓고 보름마다 불법을 설하였다. 통도사를 계율종의 근본도량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통도사를 적멸보궁이라고도 하는데 적멸보궁이란 석가모니가 설법을 하던 보리수 아래의 적멸도량에서 유래된 말로 오늘날에는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장소를 상징한다. 통도사의 금강계단(金剛戒壇)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기에 적멸보궁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일반적인 불전에 모셔진 불상은 석가모니를 대신하는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적멸보궁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장소이기에 다른 상징물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적멸보궁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통도사의 대웅전도 불상을 모시는 대신 가로로 길게 창을 내어 금강계단을 참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통도사라는 이름이 지어진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승려가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이 계단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의 爲僧者通而度之(위승자통이도지)이다.
금강계단의 계단은 오르내리는 계단(階段)이 아니라 불교에서 계(戒)를 주는 의식이 이루어지는 단(壇)을 의미하며 승려가 되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수계의식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요즘에는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뿐아니라 저마다의 이유로 금강계단에 참배하여 묵언합장 탑돌이를 한다. 끊이지 않는 참배객들을 모두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금강계단의 입장을 통제하고 있다. 입장가능 시간은 매월 음력 초하루에서 초삼일, 음력 보름, 지장재일인 음력 18일, 관음재일인 음력 24일이며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까지 참배가능하고 우천 시에는 들어갈 수 없다.
대웅전과 금강계단은 1997년에 국보 제290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은 신라 선덕여왕 때 지어져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조선 인조 23년(1645)에 다시 지었다. 대웅전이라는 편액을 걸고 진입공간을 마주하고 있는 면은 정면이 아니라 서쪽 측면이다. 보통 대웅전 현판이 걸린 정면은 어간이라 하여 일반인들이 드나들 수 없는데 이곳 대웅전 현판은 서쪽 측면에 걸려있기 때문에 신도들이 이곳으로 드나드는 것이다.
남쪽을 향하고 있는 정면에는 흥선대원군의 글씨인 금강계단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통도사의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5칸으로 측면이 더 넓고 지붕이 T자 형태여서 북쪽에서 보면 팔작지붕처럼 보이나 다른 삼면에서는 팔작지붕의 옆면처럼 보이는 특이한 구성이다. 처마를 받치는 공포를 기둥 사이에도 둔 다포계 양식으로 다포계의 중기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다포계인데다 포작은 출목을 여러 단으로 두어 화려하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서쪽 측면의 중앙에는 국화와 연꽃, 모란을 번갈아 조각한 빗격자꽃살문을 달았고 건물 기단 부분과 돌계단에도 세련되고 아름다운 연꽃을 새겼다.
대방광전 편액을 걸고 있는 동쪽 측면 앞 구룡지(九龍池)라는 작은 못에는 통도사의 창건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자장율사가 현몽한 문수보살에게 물어 찾은 절터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사는 큰 연못이었다고 한다. 자장은 용에게 못을 떠나라고 청하였으나 용들이 말을 듣지 않자 법력으로 다투게 되었다. 싸움에서 패배한 용들은 달아나다가 죽었는데 눈먼 용 한 마리가 남아 통도사를 수호하겠다고 맹세하자 자장이 용이 머물 수 있도록 만든 못이 구룡지이다. 통도사의 가장 안쪽 구역인 상로전에 속해 있으면서 동쪽에는 삼성각, 서쪽에는 대웅전, 남쪽에는 응진전, 북쪽에는 산령각과 금강계단으로 둘러싸인 구룡지는 마음을 차분하고 평화롭게 가라앉히는 고요한 공간이다.
통도사는 곡저형 다원식의 입지를 가진 사찰로 양산천 북쪽면을 따라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드러누운 왕(王)자의 형태로 구역을 나눈다. 진입 초기의 영역을 하로전이라하고 하로전을 지나면 중로전, 중로전 다음을 상로전으로 구분한다. 일주문-천왕문-불이문-대웅전이 王자의 축을 이루고 일주문을 들어서서 불이문 전까지 사이가 하로전이다. 하로전의 중심건물은 영산전이다. 남향하고 있는 영산전 좌우에 서향의 약사전, 동향의 극락보전이 배치되었고 마당 가운데 삼층석탑이 있다. 영산전의 맞은편에는 만세루, 범종각 등이 있다.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2006년 보물 제1471호 지정되었다. 영산전(보물 제1826호)은 건물 자체가 보물일 뿐 아니라 내부벽화인 팔상도(보물 제1041호)와 영산회상탱(보물 제1353호), 견보탑벽화(보물 제 1711호)가 각각 보물로 지정되어 뛰어난 가치를 인정받았다. 범종각의 ‘사인비구 제작 동종-통도사 동종(보물 제11-6호)’는 현재 남아있는 8점의 사인비구 제작 동종 중 하나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독창적인 종을 만든 장인으로서 그가 만든 동종을 일괄하여 2000년에 보물 제11호로 지정하였고 각각의 종에 하위번호를 부여하여 관리하고 있다.
불이문부터는 중로전 영역이다. 남쪽을 향하여 관음전을 앞세우고 용화전, 대광명전이 그 뒤로 일렬종대하고 있다. 귀한 보물을 숨기듯 가장 뒤로 배치된 대광명전은 중로전의 중심법당으로 보물 제1827호이다. 대웅전만큼이나 아름다운 건물로 1725년(영조 원년)에 중수하였으나 1756년에 화재로 불탄 후 1758년에 중건되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아래 다포형식으로 섬세하고 균형잡힌 조각이 아름답다. 단청은 지워지고 순수한 나무색이 고스란히 드러나 화장기없는 고운 민낯을 보는 듯하다. 중앙의 어간문 양쪽 기둥의 용머리를 비롯하여 건물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용머리는 조형미가 뛰어나고 마치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듯 역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광명전 내부에는 보물 제1042호인 대광명전삼신불도가 모셔져 있다. 물론 모든 문화재의 진품은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불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모사품이다. 용화전 앞에 독특한 모양의 탑이 보물 제471호인 봉발탑이다. 용화전은 미래불을 모신 전각으로 미래불인 미륵불이 용화수(龍華樹) 아래 태어날 것이라는 설에서 이름의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봉발탑은 석가모니의 옷과 그릇을 받들어 둔 곳이라 하여 일명 의발탑(衣鉢塔)이라 한다. 불교에서 의발을 전하는 것은 불법을 전하는 상징으로서 미륵불을 모신 용화사 앞에 봉발탑을 세운 것은 미륵불이 석가여래를 이어 중생을 제도할 미래불임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알 듯 모를 듯한 높이차를 두고 상로전 구역이 펼쳐진다. 앞서 언급한 국보 대웅전과 금강계단, 구룡지와 그 주변 건물들이 상로전을 구성하고 있다.
통도사에는 17개가 넘는 암자들이 있는데 그 중 자장암은 ‘금와보살 설화’의 출처이며 통도사 8경 중 하나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현재 통도사의 지정문화재로는 국보 1점, 보물 18점, 시도유형문화재 50점, 문화재자료 19점, 등록문화재 1점 등 총 89점이 전해지고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사진 유석영 조창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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