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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 역사•문화의 본향, 아산면 삼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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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선운사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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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7월 06일(화) 17:36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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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고창신문 | | 고창군의 서쪽에 있는 삼인리(三仁里)는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이다. 누구에게나 선운사가 있는 곳 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삼인리이다.
이 곳은 고창군 대표적 관광지이자 가장 많은 군민과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 1번지로서 그 위상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에서” 시를 보자.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처럼 조용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산골을 연상하게 한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선운사 일대의 관광지개발이 시작되면서 오늘날 상전벽해와 같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선운사, 선운산도립공원 등 빼어난 자연생태자원과 함께 선운산자연생태숲과 삼인자연학습원, 템플스테이, 소금 전시관, 주차장을 조성하고, 유스호스텔, 선운산우체국수련원, 펜션, 숙박•음식업 등을 유치하면서 관광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삼인(三仁) 마을의 형성은 선운사의 창건 역사와 관련이 있다. 백제 위덕왕 24년에 검단선사가 선운사를 창건할 때 모여든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점차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선운사 입구의 장년촌이라는 마을은 40호 이상 거주하며, 사찰 답을 경작이나 절 일을 도와주면서 생활하였으나, 1940년경 폐촌 되었다. 삼인동 주민들은 닥나무를 활용하여 한지를 생산하며 생활하였다. 석상(石床) 마을도 삼인과 함께 생겨났으며, 마을 뒤에 있는 평상바위의 이름을 따서 석상이라 하였다. 중촌(中村)은 스님이 많이 산다 하여 부르게 되었고, 1981년 삼인에서 분리되었으며, 선운사와 선운산도립공원이 소재한 마을이다.
삼인리는 조선시대에 무장현에 속했으나 말기에는 무장군 탁곡면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삼인, 석상, 중촌 일부를 병합하여 삼인리라 하고, 고창군 석곡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3월 1일 도령 제1호에 따라 아산면에 편입되었다,
행정분리는 2개로 삼인과 석상마을이 있으며, 삼인, 석상, 중촌 등 3개 자연부락에 총 144세대, 249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삼인리의 자연환경을 보면 선운사 입구는 서해의 바닷물이 들고 나가는 인천강과 연결되어 있고 이곳에는 고창군대표 먹거리인 풍천장어가 서식하고 있다. 또한 마을 서•북쪽에 펼쳐진 개이빨산과 경수산 사이에 해발 334.7m의 선운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산악이며, 산을 따라 해리면과 심원면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또한 백제시대 5대 가요중 하나인 “선운산가”는 가사는 전해지지 않으나, 정역나간 남편이 만기가 자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남편을 그리워하며 부른 것으로 그 내용만 전해지고 있다.
선운산은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는 명승지로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곳곳에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수려한 자연경관은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선운사 입구에서 개울을 따라 올라가면 템플스테이 체험장이 있다. 우측으로 쭉 올라가면 장사송과 신라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이 나온다. 건너편에는 선운산에 침입하는 마귀를 방어하는 신장역할을 하는 봉두암, 그 위 산등성이에는 도솔천에 들어오는 마귀를 방어하는 사자암, 바로 위로 올라가면 도솔암, 위쪽의 바위계단을 오르면 높은 절벽 위에 도솔천 내원궁이 있다. 이곳에서 우측 암벽바위틈을 비집고 올라서면 만월대가 있고, 신선이 학을 타고 내려와 놀고 갔다는 선학암이 있다. 다시 내려와 나한전의 좌측에는 깎아지른 듯한 암벽에 도솔암 마애불이 있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용문굴, 좌측으로 돌아서 오르면 낙조대가 있다. 바로 옆에 천마봉이 있고, 발아래에 명승지인 도솔계곡의 비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곳이다.
선운사는 불교 조계종 24교구의 본사인 선운사는 검단선사와 신라 진흥왕이 창건하였다는 두 개의 설이 전해지나, 당시 신라와 백제는 치열한 세력다툼을 했을 때로 검단선사 창건 설이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창건하고, 대참사(현 참당암)는 진흥왕의 왕사인 의운국사(義雲國師)가 창건하였다. 창건 설에 따르면 본래 선운사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으며, 용을 몰아내고 이 곳을 거의 메꿔 나갈 때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그런데 못에 숯을 한가마 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 나아지자 이를 신기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숯과 돌을 가져와 금방 메꿔졌으며, 그 자리에 선운사를 세웠다.
검단선사는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물면서,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 선(禪)의 경지를 얻는다하여 절 이름을 선운(禪雲)으로 지었다고 한다.
창건 당시에 이 곳은 전쟁 난민이 많았다. 검단선사는 이들을 불법으로 교화하고, 소금을 구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선운사와 가까운 심원면 검단(현 사등마을)에 정착하면서 이들은 검단선사의 은덕에 보답하고자 봄과 가을에 소금을 싣고 선운사에 바치면서 이 소금을 ‘보은염’이라 하였다. 보은염 이운행사는 오늘날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선운사는 오랜 역사와 함께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다. 우리나라의 역사, 예술, 학술 방면에서 가치가 큰 것으로 보존, 관리, 전승을 위해서 문화재로 지정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보기 드물게 선운사만의 독특한 문화를 인정받아 총 26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보물은 8점으로 선운사금동지장보살좌상, 도솔암금동지장보살좌상, 선운사대웅전, 참당암대웅전, 동불암지마애여래좌상, 소로비로자나삼불좌상, 참당암석조지장보살좌상, 선운사만세루 등이 있다. 도솔암 일원의 뛰어난 경치는 명승 제54호로 등록되어 그 가치를 더해 주고 있다.
천연기념물은 3점으로 매표소 옆부터 선운사 뒤편에 있는 동백나무 숲, 선운산농협마트 앞 하천변 절벽에 있는 송악, 진흥굴 앞에 있는 장사송이 있다. 전라북도유형문화재는 11점은 석씨원류경판, 영산전목조삼존불상, 육층석탑, 범종, 백파율사비, 참당암동종, 선운사사적기, 대웅보전신중도, 석상암산신도, 참당암석조지장보살살삼존상과 권속 및 복장유물, 영산전이 있다. 전라북도문화재자료는 3점으로 나한전, 도솔암 내원궁, 석상암 칠성도가 있다.
선운사의 산내 암자로는 도솔암, 참당암, 석상암, 동운암이 있지만, 옛날에는 89암자, 189요사로 골짜기마다 들어섰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도 내장사, 내소사, 개암사, 강천사, 문수사 등 60여개의 말사를 두고 있다..
선운사는 긴 역사만큼 훌륭한 스님들이 배출되어 우리나라 불교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대표적으로 조선시대 화엄학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설파 상언스님(1707∽1791), 조선시대 선문의 중흥주로 추앙받고, 추사 김정희가 찬한 백파율사비의 주인공인 백파 긍선스님(1767∽1852), 한말 화엄대교 선양과 엄격한 계율을 실행한 환응 탄영스님(1847∽1929), 근대불교의 선구자적 역할과 불교개혁운동에 앞장섰던 석전 정호스님(1870∽1948) 등이 있다.
이 처럼 삼인리에 있는 소중한 것들은 잘 지키고 보전하여 자연 상태 그대로 후손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조재길 시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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